여행할 때 그대는 변화하리라

조계종 교육부장 진광 스님은 지난 822일부터 95일까지 조계종 해외연수 순례 일환으로 영진 스님과 함께하는 티베트 수미산 순례를 다녀왔다. 진광 스님은 80여 스님과 함께 했던 여정을 서간문 형식으로 보내왔다. 이에 본지는 스님의 순례 서간문을 인터넷에 순차적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내 사랑하는 벗이여, 이제 성호(聖湖)인 마나사로바 호수에서 이번 순례를 마감하며 마지막 편지를 보냅니다. 그동안 실로 소중하고 의미있는 행복한 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제 평생의 소원을 이룬 꿈같은 시간이었으니까요. 당신과 함께할 수가 없어 아쉽지만 정말이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은사스님 14주기를 며칠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이곳의 허공이나 바람으로 항상 하시는 스님을 만날 수 있어 더욱 행복한 시간 이었습니다.

먼저 귀호(鬼湖)라 불리는 락샤스탈 호수로 향했습니다. 성호라 불리는 마나사로바 호수에 비해 염호(鹽湖)로서 물고기 하나 살지 못하는 죽은 호수라는 의미입니다. 마나사로바가 양을 상징한다면 락샤스탈은 음을 상징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직접 호수를 보고 싶었습니다. 직접 와보니 바람도 없는데 불결 파도가 일어나고 음산하며 칙칙한 풍경이 괴기스럽기만 합니다. 행복이 있으면 불행이 함께 잇기 마련이고 양이 있으면 음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이 호수도 무언가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마나사로바 호수에 도착하니 구름 사이로 내리 쏟아지는 강렬한 햇빛과 감청색의 짙푸른 호수가 우리를 맞이합니다. 히말라야의 한 줄기로 마나사로바 호수를 품고있는 나이모나니산(7,694m)이 구름속에 몸을 감춘채 호수를 감싸고 있습니다. 마나사로바 호수는 해발 4,586m에 자리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담수호입니다. 이 호수는 카일라스의 우주의 중심혹은 우주의 기둥이라 불리는데 비하여 우주의 자궁이라고 불립니다.

마나사로바 호수는 힌두교의 주신인 시바신의 부인이 목욕했다는 전설과 함께 마야부인이 이곳에서 목욕재계를 한 후에 태몽을 꾸었다는 설화가 전해내려 옵니다. 뵌뽀교에서는 카일라스를 아버지, 마나사로바 호수를 어머니로 숭배한다고 합니다. 근래에는 자이나교 신자인 인도의 국부로 추앙받는 마하트바 간디의 유헤가 그의 유언에 따라 이곳에 뿌려졌다고 합니다.

마나사로바 호수에도 카일라스산처럼 순례코스인 코라가 있어 많은 순례객들이 호수를 돌며 자신의 죄업을 호숫물에 씻는다고 합니다. 100Km 넘는 호수둘레를 한 바퀴 도는데 4-5일 가량 걸린다고 하며 중간에 5개의 사원과 몸을 씻는 성소가 네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인도 힌두교도들이 700여명이나 와서 난리법석의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먼저 파드마 삼바바가 은거하여 기도수행을 했다는 동굴로 유명한 치우곰파로 향했습니다. 마나사로바 호수의 전경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입니다. 치우곰파 밑으로는 두 개의 호수를 연결해주는 좁은 강인 강가추가 태극문양으로 흐르고 드넓은 평원이 펼쳐집니다. 오르막 계단을 올라 사원 입구에 다다르니 머리위로 타르초가 바람에 흩날리며 아우성을 치는 듯 합니다. 오색의 타르초가 춤을 추고 노래하는 푸른 하늘과 바람, 그리고 바위 봉우리가 어우러져 묘한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듯 합니다.입구를 들어서자 곧바로 파드마 삼바바가 1,300년 전 칩거 수행했던 기도동굴이 나옵니다. 파드마 삼바바의 발자국 자국이라는 흔적 주위에는 손때로 인해 반질반질 합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 닳고 길들여진 화석과 같습니다.

이렇듯이 어느 한 수행자의 수행과 전법으로 인해 한 나라, 혹은 한 대륙 전체가 그 영향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것은 수행과 서원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렇게 이역만리를 순례하는 것도 그렇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치우곰파 정상의 본전에 올라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합송하고는 담장 너머로 펼쳐진 마나사로바 호수의 전경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마나사로바 호수는 그 날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여기에 있음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 그런 수많은 인연과 사람들에게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치우곰파를 내려와 언덕위의 마니석과 마니차, 그리고 타르초가 펄럭이는 곳에 올랐습니다. 고요히 그 가운데 정좌한채 마나사로바 호수를 바라보며 은사스님을 추억하고 추모하기 위함입니다. 나는 스님께서 이곳 카일라스산과 마나사로바 호수의 허공과 바람 그리고 해와 달과 별과 꽃으로 영원히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당신을 만나러 온 이 길에서 당신과 함께할 수가 있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부디 그것들과 더불어 여여 하시기를.

조금 더 마나사로바 호수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호숫가로 내려 갔습니다. 이미 인도 힌두교도들이 목욕을 하고 물을 마시며 의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성지중의 성지일 것입니다. 특히 온통 흰옷을 차려입은체 기도삼매 중인 인도 여인네의 모습이 압권입니다. 나도 마나사로바 호숫물로 머리와 몸을 씻고 이어서 한 모금 마셔보고는 온갖 정성을 기울여 간절한 기원을 올려 봅니다. 그리고는 인도 사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나사로바 호수와 마지막 작별을 고한채 뒤 돌아선채 떠나 왔습니다.

다시 왔던 길을 이틀간 달려 시가쩨로 돌아 왔습니다. 그곳에서 이번 순례의 마지막 평가회를 가졌습니다. 한분 한분이 이번 순례에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모두가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점을 진솔하고 담백하게 이야기한으데 그를 통해 의미있고 소중한 깨달음과 함께하는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기서 나는 한국불교의 진정한 희망과 미래를 봅니다. 우리 모두의 이 작은 순례의 발결음이 곧 한국불교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초석이 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아주 오랫동안 이번 순례의 감동과 환희, 그리고 소중한 깨달음들을 결코 잊지는 못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터키 수피즘의 성자이자 위대한 시인인 잘랄루딘 루미의 여행이란 시를 모두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여행은 힘과 사랑을/ 그대에게 들려준다./ 어디를 갈 곳이 없다면/ 마음의 길을 따라 걸어가 보라./ 그 길은 빛이 쏟아지는 통로처럼/ 걸음마다 변화하는 세계/ 그 곳을 여행할 때 그대는 변화라리라.”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