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에 첫 발을 내딛다

조계종 교육부장 진광 스님은 지난 822일부터 95일까지 조계종 해외연수 순례 일환으로 영진 스님과 함께하는 티베트 수미산 순례를 다녀왔다. 진광 스님은 80여 스님과 함께 했던 여정을 서간문 형식으로 보내왔다. 이에 본지는 스님의 순례 서간문을 인터넷에 순차적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조계종 교육원은 8월 22일부터 9월 5일까지 영진 스님과 함께 하는 티베트 수미산 순례를 다녀왔다. 사진은 첫 일정인 삼예사원서 입재식 후 기념촬영 모습. 사진= 조계종 교육원

내 사랑하는 벗이여! 지난 822일부터 95일까지 조계종 교육원 해외연수 순례의 일환으로 영진스님과 함께하는 티베트 수미산 순례80여명의 스님들을 모시고 다녀왔습니다. 이번 순례는 초유의 역사적이고 기념비적인 순례라 할 것입니다. 순례의 첫 기착지인 라싸에서 소식을 전합니다.

822일 인천공항에 모인 순례대중은 중국 사천성의 청뚜(成都)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는 다음날 티베트 라싸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비행기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순백의 설산 봉우리가 우리를 반깁니다. 이번 순례가 아무 장애 없이 불보살님의 가피로 잘 원만회향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드립니다.

삼예사서 순례 고불 입재법회 봉행
드디어 해발 3,600m에 위치한 티베트의 관문인 라싸(拉薩)의 궁가공항에 도착 했습니다. 마치 은하계의 어느 혹성에 착륙한 그런 느낌이었지요. 눈이 시리도록 강렬한 햇빛과 푸른 하늘과 구름들, 그리고 황량한 민둥산에는 오색의 타르쵸 깃발들만이 바람에 펄럭이며 우리를 맞이합니다. 우리는 지금 오래된 미래의 장소에 드디어 첫 발을 내딛은 것입니다.

우선 티베트 불교의 초전법륜지이자 최초의 사찰이며 794년 인도승 카밀라 실라와 중국 선종의 마하연 스님의 삼예논쟁으로 유명한 삼예사(桑耶寺)로 향했습니다. 8세기말 티송데첸왕에 의해 불교가 국교가 되면서 인도 나란다 대승원의 장로인 산타라크시타와 간다라에서 파드마 삼바바가 들어와 인도 오단타푸리대승원을 모방해 조성한 사원이이지요. 하늘위에서 보면 전체 사원이 하나의 만다라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신라 정중무상 선사가 그의 선법을 바세와 세르난에게 전한 곳으로서의 역사적 의미가 있답니다.

순레 대중은 가사장삼을 수한채 대전에 들어가 우리가 티베트와 수미산을 순례하러 왔음을 고하는 입재식을 했습니다. 우리말 의식과 미리 준비한 정중무상 선사와 신라출신의 천축구법승 추모제도, 현수막을 펼친 채 기념사진조차 찍을 수가 없었지요. 2014혜총스님과 함께하는 티베트불교 성지순례당시에 현수막 문제로 공안과 한바탕 싸우는 바람에 몇 년간 여행허가가 나오지 않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자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수미산 코라길 순례에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불필요한 일을 벌일 수가 없었지요. 그 곳, 수미산에 다다를 때까지는 최대한 참고 인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입재식 후에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진 회랑을 돌며 정성껏 마니차를 돌리는 티베트 불자들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에 의해 파괴된 벽화가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문명과 야만은 실로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에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기어코 살아남아 역사를 증언하고 미래와 희망, 그리고 자비와 진리의 승리를 옴 몸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마침 한족 불교신자 몇 명이 우리에게 10위엔을 보시하며 활짝 미소짓습니다. 저 마음이 있는 한 불교는 역사와 민중 속에 영원할 것입니다.

수미산에서 발원한 알롱창포강을 따라 라싸 시내로 향합니다. 저 멀리 찬연히 빛나는 반야용선을 닮은 붉고 흰 고색창연한 포탈라궁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드디어 테베트의 심장이자 구심인 라싸 시내에 다다른 것 입니다. 마치 고향의 어머니 품에 다시 안긴 듯한 느낌입니다. 영원의 어머님이신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와 사랑의 너른 가슴에 안긴 듯 행복한 마음입니다. 나도 모르게 옴 마니 반메 훔진언을 되 뇌이며 님에게로 달려 갑니다.

조캉사원에서 만난 티베트 불자들. 오체투지의 모습에서 신심을 느낄 수 있다. 사진= 조계종 교육원

그리운 티베트 인연들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조캉사원(大昭寺)으로 참배를 갔습니다. 티베트 불교의 총본산으로 송쩬감뽀왕이 647년 창건했는데 중국 당나라 문성공주가 모셔온 12세 모습의 조오 석가모니 불상을 봉안하여 그 영험함을 받드는 순례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전 티베트의 불자들이 오체투지로 순례를 행할 적에 마지막 목적지가 되는 곳이 바로 조캉사원입니다. 사원 둘레의 바코르 순례길은 마니차를 돌리며 순례를 하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조캉사원 앞에는 하루종일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 불자들의 신심어린 모습으로 인해 환희롭고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이 사원의 옥상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금동당번과 티벳불교를 상징하는 녹원전법의 금동상 사이로 보이는 포탈라궁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단연 압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 라싸에 1달여 체류할 적에 만난 조캉사원 앞에서 티베트 경문을 파는 할머니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친어머님처럼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셨는데 이제는 연로해 장사를 안하시는 듯 합니다. 만약 계셨다면 찾아뵙고 큰절이라도 했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당신의 한국 아들이 사실은 스님이고 이리 많은 스님들을 모시고 수미산 순례를 왔다고하면 정말 뿌듯하고 행복해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명물로 매양 찾아가 망중한을 즐기던 광명차관이란 찻집도 문을 닫아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갑자기 해발 3,600m 이상의 고원에 내려 하루 종일 무리하게 움직인지라 저녁이 되자 고산병을 호소하는 대중들이 줄을 잇습니다. 사람의 몸은 정직해서 고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중의 힘, 곧 신심과 원력으로 순례를 하는 것이니 차츰 적응하다보면 곧 나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원서 만나는 티베트인 삶과 신심
다음날에는 라싸 인근의 드레풍사원(哲蚌寺)으로 향했습니다. 5,200m의 감뽀위쩨산에 세워져 있는 드레풍사원은 1416년 겔룩파의 시조인 쫑카파의 지시로 잠양초제가 창건하여 5대 달라이라마가 증축하면서 포탈라궁이 완성될 때까지 이곳에서 통치를 하였다고 합니다. 드레풍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볏집더미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양을 뜻합니다.

한때는 1000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400여 명이 수행 중입니다. 특히 안거가 끝나는 날에는 쇼툰제(雪頓祭)가 열리는 데 60m의 대형 불화가 걸리며 티베트 불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합니다. 정말 장관이겠지요.

108개 기둥으로 이루어진 대전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은 단연 압권이거니와 후원 공양간을 방문했을 때의 감동과 희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우리 총림의 공양간을 보는 듯 했습니다. 그곳에서 티베트 스님께 얻어먹은 참파(티베트의 주식인 보리가루 으깬 것)와 수요우차의 맛은 가히 일품 이었습니다.

사원 옆의 바위에 지은 작고 아담한 토굴은 어느 생이고 꼭 한번은 살아보고 싶은 그런 곳입니다. 그 위의 바위에 쫑카파 등을 그린 암벽에 앉아 불현듯 언젠가 한번은 이곳에서 살며 수행 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하지 않고서야 이리 친근하고 생생할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다음은 라싸 북쪽 3Km에 있는 세라사원(色拉寺) 입니다. 쫑카파의 제자인 사캬에쉐가 1419년에 창건하여 한때는 5000여 명의 스님이 수행하던 곳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300여명의 스님이 있을 뿐입니다.

세라는 자비로움이 충만한 우박이라는 의미로 이 사원은 공부와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사원입니다. 이곳은 오후에 토론의 정원에서 펼쳐지는 학승들의 과도한 몸짓과 치열한 논쟁을 하는 변경(辨經) 장면이 특히 유명합니다. 또한 이곳의 마두명왕 보살은 아이들을 보호하고 총명하게 한다고 믿어져 수많은 티베트 불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을 참배하는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세라사원 담장을 따라 중꼬라길을 천천히 걸어보기를 권합니다. 또 다른 매력과 진실하고 소박한 티베트 불교와 불자님들을 마주할 수가 있을 겁니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깊이 사유하고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겁니다. 내려오는 길에 차관에 들려 티베트 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함께 따뜻한 국수 한 그릇과 차를 나눌 수도 있겠지요. 기름에 갓 튀겨낸 감자에 매운 향신료를 뿌린 간식을 사 먹는 것도 좋을 겁니다.

티베트 라싸의 상징 포탈라궁. 주인없이 비어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사진= 조계종 교육원

포탈라궁에 올라가지 않은 이유
마지막으로 티베트의 상징이자 정치, 종교의 중심으로 130m 붉은 언덕위에 세워진 포탈라궁(布達拉宮)으로 향했습니다. 송쩬감뽀왕이 만들기 시작해 중수를 거듭하다가 5대 달라이라마 롭상가초가 새롭게 중건해 그의 사후 12년째인 1694년 섭정 상예가쵸에 의해 지금의 포탈라궁이 완성되었답니다. 정부청사와 사원으로 사용되던 백궁과 홍궁은 총 13층의 높이로 높이 115m, 동서 360m에 이르며 천여개의 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반야용선(般若龍船)’의 형태와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곳을 올라가 둘러보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전에 몇 번인가 참배를 하기도 했지만 주인없는 곳에 가기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무릇 산은 호랑이나 고승이 살고 있어야 비로소 명산이라 일컬어지고, 호수나 바다는 그 안에 용이 살고 있어야 비로소 이름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달라이라마가 존재하지 않는 포탈라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과 시장(西藏)자치구 해방 60주년을 경축하는 붉은색 현수막이 도처에 나부낍니다. 80여개 소수민족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듯 미소짓는 사진위로 한 가족임을 강조하는 문구가 보입니다. 화해와 통합을 강조하는 하나의 중국과 그 비전인 중국몽(中國夢)’도 보입니다. 중국의 하늘위에는 오직 오성홍기(五星紅旗)’만이 유아독존인양 펄럭입니다.

조계종 교육원 교육부장

나는 조용히 눈을 감은채 일제 35년을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장기와 대동아공영, 그리고 황국신민과 교육칙서 등등. 그리고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식민주의 사관과 친일과 부역의 오욕으로 점철된 역사를 말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힘과 거짓으로 잠시 오도할 수는 있을지언정, 끝내 정의와 진실을 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날 밤의 꿈속에서 나는 보았습니다. 하늘의 새(天鳥)들이 날아와 수많은 별의 그물로 포탈라궁을 견인해 입에 물고는 하늘을 가로질러 서방정토로 향해 떠나가는 것을. 라싸와 포탈라궁의 밤은 낮보다 더 아름답기만 합니다!

오늘밤 꿈 속에서는 수미산과 마나사로바 호수, 그리고 그곳의 허공과 바람으로 항상하리라 믿는 우리 스님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매 순간 행복한 나날이기를,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삶이기를 바랍니다. 다음에는 타쉴훈포 사원이 있는 시가쩨에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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