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된 구게왕국… 무상함을 배우다

조계종 교육부장 진광 스님은 지난 822일부터 95일까지 조계종 해외연수 순례 일환으로 영진 스님과 함께하는 티베트 수미산 순례를 다녀왔다. 진광 스님은 80여 스님과 함께 했던 여정을 서간문 형식으로 보내왔다. 이에 본지는 스님의 순례 서간문을 인터넷에 순차적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내 사랑하는 벗이여! 카일라스 코라길 순례를 무사히 마치고는 우리는 신비의 왕국이라는 구게(古格)왕국을 보기위해 자다(札達)마을로 향했습니다. 자다마을은 구게왕국 유적지와 토림(土林)으로 유명한 곳으로 아리(阿里)지구에서 가장 낮은 해발 3,500m에 위치한 곳입니다. 보통 여행객들은 수미산만 보고 가지만 우리는 구게왕국을 꼭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구게왕국으로 가는 길은 이른바 창탕고원이라 불리는 고원인지라 산허리를 둘러가는데 어느 혹성을 지나는 그런 느낌입니다. 자다마을 거의 다 와서 보이는 곳이 바로 자다토림(札達土林)입니다. 말 그대로 흙산이 만든 거대한 흙의 숲인데 나무 하나없는 진기한 풍경으로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퇴적암층의 기괴한 절경을 자랑합니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에 버금가는 자연의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질경관 15경 중에 첫번째로 꼽히는 절경으로 신과 자연의 합작품이자 흙이 빗은 조각전시장과 같습니다.

이곳은 지구가 태어날 때 직경 500Km가 넘는 호수였다고 합니다. 지각변동과 함께 히말라야가 융기하면서 호수바닥에 있던 암석과 진흙이 수면 위로 올라와 오랜 세월 비바람에 침식되고 풍화되면서 오늘의 토림이 형성된 것이지요.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와 아름답고 기묘한 자연의 경이로움에 연신 탄성을 짓게 됩니다. 자연보다 위대한 작품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입니다.

드디어 자다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자다는 아리지구의 자다현 현청 소재지로 앞으로는 수트레이 강이, 뒤로는 거대하고 기묘한 흙산줄기가 버티고 있는 아늑한 분지마을입니다. 구게왕국 시대의 수도였던 차파랑(현 구게왕국 유적지)에 이어 제2의 도시였던 톨링(托林)이라는 옛 도시가 지금의 자다입니다. 자다로 들어오면서 보니 마치 천혜의 요새와 같습니다.

어쩌면 사막의 신기루 도시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특히 저녁 석양이 질 무렵의 풍경은 단연 압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발이 1000m 이상 낮아진 덕분에 모처럼 편안하고 행복한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날 새벽 구게왕국 유적지를 향했습니다. 아침 일출시의 구게왕국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구게왕국은 자다마을에서 18Km 떨어진 자부랑 마을 위쪽에 있습니다. 사방이 그랜드 캐니언 같은 거대한 흙산이 끝없이 병풍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협곡은 다와쫑이라는 달의 계곡으로 달밤에 보는 경치가 환상이라고 합니다. 또한 4월 보름이면 달의 계곡에 길이 나타나는데 그것을 따라가면 이상향인 샴발라라는 곳에 갈 수가 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유적 입구에서 마을을 지나 1Km정도 왼쪽 계곡을 올라가면 범상치 않은 바위산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것이 바로 사라진 구게왕국의 유적지입니다. 올려다보니 무너져 내린 구게왕국의 유적이 아침 햇살을 받아 붉은 황토색에서 금빛으로 변하며 찬연히 빛나고 있습니다. 구게왕국 유적지는 산맥으로 다른 산과 연결이 안된 외봉우리 흙 같은 바위산성으로 절벽을 기어오르지 않고는 침입이 어려운 천혜의 요새와 같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듯 나타나 불같이 융성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신비의 왕국, 7백년이 넘게 우수한 불교문화를 꽃피우고 서부 티베트 고원을 지배하며 호령했던 왕국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습니다.

거대한 바위산 전체가 하나의 왕국으로 궁궐이자 백성들의 주거지이며 생활터전이었습니다.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인구 20만명 규모의 거대한 왕국이 오랜기간 어떻게 번성할 수가 있었을까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곳 사원의 법당 안에는 불상과 금박으로 된 화려한 불화와 벽화가 몇 백년의 세월을 견딘채 선명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금으로 칠해진 벽화는 인도 후기 탄트라 불교의 전통과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잇어 불교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중국, 한국, 일본은 물론 티베트 벽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구게왕국의 불교는 나라의 기초를 쌓은 2대왕 코레가 왕위를 버리고 불경번역, 사원건축 등의 불국토 건설에 나서면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인도의 유명한 학승인 아티샤가 왕의 초청으로 구게왕국에 와서 최초의 사원인 토링사원을 짓는 등의 사원건축과 불경번역, 그리고 불교중흥에 나선 것도 이즈음 입니다, 이때 티베트 불교에 이상향인 샴발라의 전설도 생겨납니다.

조사에 의하면 구게왕국의 유적지에는 1천여 개의 토굴과 445칸의 건축물, 58개의 요새와 28기의 불탑, 4갈래의 비밀통로를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규모로 볼 때에 과연 왕궁다운 규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토굴은 백성들의 주거지, 기도를 하는 수행장소, 창고, 감옥 등으로 쓰이는 주요 생활공간 이었습니다. 당시의 암벽굴착 기술이나 물을 끌어 올리는 취배수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왕국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9세기 토번왕조가 붕괴하면서 마지막 왕 랑다마가 암살당한 뒤 손자 지더니마 왕자가 서쪽 변방인 아리지역 포랑 근처로 도피해 새로운 왕국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는 뒤에 세 명의 왕자에게 왕국을 나눠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라다크왕국과 푸란왕국, 그리고 구게왕국 입니다. 셋째 왕자인 더짜오가 세운 구게왕국은 700여 년간 16명의 왕이 통치했으며, 한때는 서쪽으로 카슈미르 일대와 지금의 파키스탄 일부까지도 지배하는 거대 왕국으로 번성했다고 합니다. 당시 구게왕국은 중국, 티베트, 인도, 파키스탄과 이슬람 상인들이 몰려와 사금, , 소금, 보석, 낙타, 말등 다양한 상품으로 교역을 해 부를 축척했다고 합니다.

서부 티베트의 맹주였던 구게왕국이 어느 날 갑자기 연기처럼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것은 하나의 미스터리 입니다. 천재지변설, 이슬람등의 외부침공설 등 여러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설왕설래할 뿐입니다. 그 와중에 1630년 인근의 라다크 왕국의 침입으로 왕국의 수도인 차파랑이 무너지면서 전멸을 당해 전설 속의 왕국이 되었다고 전해 집니다. 1992년 한 양치기 목동이 비를 피하러 동굴에 들어 갔다가 우연히 화려한 석굴벽화를 발견하여 통가석굴군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석굴이 1,150개에 이르고 그중 20여개의 석굴에는 화려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구게왕국을 돌아보고는 자다 마을로 돌아와 점심공양 후에 구게왕국 최초의 사원인 톨링(托林)사원에서 이번 순레의 회향식을 가졌습니다. 톨링사원은 1042년 인도의 고승 아티샤가 이곳에 와서 겔룩파의 요체인 보리도등론을 저술한 유서깊은 도량입니다. 이번 영진 스님과 함께하는 티베트 수미산 순례를 회향하는 자리로는 제격이라 할 것입니다. 모든 순례대중 스님네들도 환희스럽고 행복한 눈빛과 미소로 원만한 회향을 부처님께 고하고 새로운 서원과 발원을 하는 소중하고도 의미있는 시간 이었습니다. 우리 안에 자비와 친절의 사원을 하나씩 세우고 부처님의 진리를 구하고 중생들을 위하는 자비보살행을 실천할 것을 서원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금 다르첸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린 후의 초원에 나타난 선명하고 아름다운 무지개의 출현에 대중 모두가 감동과 환희의 순간을 만끽 하였습니다. 마치 우리 순례의 원만회향을 축복하는 것 같아 더욱 감격하고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참으로 희유하고 신비하며 행복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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