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님 주름진 얼굴엔 티베트 현대사가

조계종 교육부장 진광 스님은 지난 822일부터 95일까지 조계종 해외연수 순례 일환으로 영진 스님과 함께하는 티베트 수미산 순례를 다녀왔다. 진광 스님은 80여 스님과 함께 했던 여정을 서간문 형식으로 보내왔다. 이에 본지는 스님의 순례 서간문을 인터넷에 순차적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타쉴훈포 사원의 모습. 한눈에 바라보이는 광장에서는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과 집단무를 추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벗이여, 어둠을 이겨낸 자에게 새벽은 다가옵니다. 태양은 낮에 뜨는 밤의 달빛인지도 모릅니다. 태양이든 달이든 매 순간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닐까요?

라싸(拉薩)의 라(Lha)는 천신을, (sha)는 땅을 의미합니다. ‘신의 땅혹은 천신의 땅이라는 뜻이 됩니다. 북쪽으로는 단라 산맥이 동서로 뻗어있고 남쪽으로는 온골리 산맥이 동서로 굽이친 가운데 남북 8km, 동서 60km의 장방형의 분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운데 끼추강이 흐르고 있는 해발 3,650m의 라싸는 티베트 천년 도읍지로 손색이 없는 길상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원래는 해발 4,794m의 캄팔라 고개를 넘어 티베트 4대 성호(聖湖) 가운데 하나인 푸른 보석같은 호수 얌드록초(碧玉湖) 호수를 보고 커뤄라빙천(5560m)을 조망하고는 간쩨를 거쳐 시가쩨(西喀則)로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고산 사이클대회가 열려 길이 통제되는 바람에 알룽창포강을 따라 시가체로 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길과 사람은 내 마음대로는 안되는가 봅니다.

알룽창포강을 따라가는 길은 마치 섬진강변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듯이 그림같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사실 해발 4000m 가까운 곳인데도 풍경에 취한 나머지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조금 고개를 오르면 숨이 턱 막히는 것이 이내 , 이곳이 고원이지하고 자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이렇듯 간사합니다. 산소의 중요성을 고원에 와서야 비로소 절실하게 느끼니까요.

강변에 오색의 타르초가 휘날리고 바위에 하얀색 사다리 모양이 그려져 있는 곳은 대개 수장(水葬)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어린아이나 제 명에 죽지 못한 이들을 장례하는 곳입니다. 그런 까닭에 티베트인들은 고기를 먹지 않는답니다. 제 조상일 수도 있거니와 한 번에 여러 생명을 죽여야 하기 때문이지요. 티베트인들이 주로 조장(鳥葬) 혹은 천장(天葬)을 하는 것도 시체가 잘 썩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시신마저 보시하고 천상에 오르려는 간절한 염원과 자비심의 발현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알룽창포강 너머로 멋진 사원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공양 후에 볼일을 보러 찾아간 화장실이 압권입니다. 남녀가 구분되어 있기는 하지만 지붕이 없는 구조로 앉은 자리에서 티베트의 풍광을 조망하기에 그만인 곳입니다. 밤이면 이곳에 와서 쏟아질 듯한 수많은 별들의 향연을 바라보기에도 최고의 장소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후에는 간쩨라는 도시를 들렸습니다. 이곳은 티베트 제3의 도시로 중국·인도·네팔·부탄을 잇는 대상무역로의 관문으로 천축구법승이 오고간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신라승 5~7명이 이곳을 통해 천축을 오고 갔으며 오진(梧眞)스님의 경우에는 천축구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 나투라고개 인근에서 입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안타까움을 더하는 곳입니다. 1904년 영국과 네팔 연합군에 의해 간쩨종 요새가 함락되는 비운의 역사도 간직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원나라의 비호를 받으며 창건한 사카파의 사찰인 펠코르체대(白居寺)가 있는데 후에 카담파와 겔룩파가 중수하면서 지금은 3개의 종파가 사이좋게 공존하며 조화와 관용의 미를 보여 줍니다. 또한 하늘에 닿을 기세로 우뚝 서 있는 37m 높이의 9층대탑인 쿰붐스투파는 설역고원에 남아있는 유일한 네팔식 불탑으로 일명 십만불탑이라 불립니다.

층마다 빼곡이 들어찬 법당의 수가 77, 드나드는 문만 108개이며 법당에 불보살과 역대조사들의 소상과 벽화가 남아있는데 그 숫자가 무려 10만존에 이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탑의 상층부가 시작되는 사면에 3의 눈인 혜안(慧眼)이 인상적입니다.

조계종 교육원은 8월 22일부터 9월 5일까지 해외순례 일환으로 티베트 수미산 순례’를 다녀왔다. 타쉴훈포 사원에서 순례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간쩨에서 시가쩨로 가는 중에 길거리에서 수박을 파는 노점에 들러 수박 한 덩어리를 사서 함께 대중공양을 하였습니다. 조그맣고 둥그런 수박을 반으로 자르면 잘 익은 붉은 수박이 나타나는 것은 언제 봐도 천지개벽과도 같은 놀랍고 신선한 경험입니다. 덕분에 모두들 한입씩 베어물고 저마다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됩니다. 수박 파는 티베트 소녀의 맑고 맑은 눈동자와 미소는 덤이지요.

드디어 판첸라마와 타쉴훈포 사원이 있는 해발 3,900m에 위치한 티베트 제2 도시 시가체에 도착했습니다. 사원 옆의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공양 후에 어느 카페에 모여 좌담회를 가졌습니다. 어떻게 이번 순례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순례에 임하는지 등을 서로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많은 스님들의 사연과 서원을 접하면서 이번 순례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소임자로서 막중한 책임감과 함께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순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은 대중 스님들 모두의 신심과 원력으로 7년이나 해외순례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순례에 동참해준 스님들 한분 한분께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곳 호텔의 모닝콜은 압권입니다. 2014년 티베트 순례 때에는 아침에 청소하는 티벳 아주머니들이 방마다 문을 두드리며 헬로우, 모닝콜!”을 외치는 겁니다. 은근히 그걸 기대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데 전화로 헬로우, 모닝콜!”이라고 한마디 하고는 끊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기계로 듣는 것보다 직접 목소리로 듣는 것이 훨씬 정감이 있고 좋으니까요.

아침 9시경 타쉴훈포 사원으로 향했습니다. 타쉴훈포 사원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광장에서는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과 집단무를 추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2014년에는 이곳에서 50여 대중 스님들이 아침예불을 올렸던 기억이 새롭기만 합니다. 얼마나 신심나고 장엄한 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중하고 타쉴훈포 사원으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이곳 타쉴훈포 사원은 중국 정부에서 추대한 제11대 판첸라마가 주석하고 있는 사원으로 티베트 서부를 총괄하는 정치, 종교의 중심입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사원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이곳은 겔룩파의 창시자인 쫑카파의 제자인 겐덴드루프가 1447년에 창건하였습니다.

5대 달라이라마가 자신의 스승이자 이 사원의 원장을 아미타불의 현신으로 인정하면서 위대한 철학자라는 뜻의 판첸라마 칭호를 부여하면서 티베트 불교 제2의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제10대 판첸라마가 대중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합니다. 11대 판첸라마는 지금 베이징 모처에 있다고 합니다.

이 사원에는 장대한 미륵불이 모셔져 있고 10대 판첸라마의 영묘탑과 수려한 본전 건물이 압권입니다. 모든 대중이 한 곳에 모여 독경하고 공양하는 모습도 너무나 위엄있고 장엄하다는 느낌입니다. 대전 뜰 앞에서 조용히 정좌한 채 좌선을 하며 생각하니 전생 언제인가 한번은 이곳에서 수행을 하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왠지 건물과 스님들이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어느 비구니 스님이 노모를 모시고 성지순례를 온 듯한 모습이 정겹습니다. 먼저 하늘로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도 생전에 이곳에 한번 모시고 왔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티베트 어머님의 모습이 참 곱고 거룩하며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우리 어머님을 보는 듯 합니다. 아니 그대로 관세음보살의 화현인 듯 한 느낌입니다.

티베트 노스님들의 주름진 얼굴에는 티베트 현대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아 숨쉰다는 것 자체가 바로 기적이고 희망이며 깨달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원 곳곳의 향풀이 오랜 세월을 버티면 고목이 되듯이, 끝끝내 살아남아서 무언가 증언할 것이 있다는 듯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전에 보았던 티베트와는 단호한 이별이어야 합니다. 다시 첫 마음으로 수미산을 향해 나아갈 때입니다. 다음에는 수미산이 바라보이는 다르첸 마을에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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