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수미산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다르첸이라는 수미산 코라 순례길의 전진기지이자 관문이 되는 곳입니다. 카일라스!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꿈꿔온 오랜 로망이자 꿈이며 소원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실현을 곧 눈앞에 앞두고 있다는 설레임과 흥분으로 인해 너무나 가슴 벅차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신산(神山) 카일라스에서 내 사랑하는 벗인 당신께 소식을 전합니다.

새벽인데도 수미산의 남쪽 모습은 구름에 가린 채 좀처럼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단번에 보려는 우리가 욕심이 많은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수미산의 허공과 구름과 바람에서 또 다른 나의 님, 은사이신 인곡당 법장 대종사의 영혼과 마주합니다. 가만히 눈과 귀를 기울이노라면 우리 스님의 자비하신 음성과 미소를 접할 수가 있을 것만 같습니다. 금방이라도 “진광아, 잘 지내지? 중노릇 잘 하거라”라고 말씀 하실 듯 합니다. 스님은 내 가슴과 히말라야 가운데 영원하리라 믿고 있으니까요.

다르첸 마을을 떠나 버스로 4km를 달려 수미산 코라 순례길이 시작되는 입구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인지 수미산 전체가 확연히 드러낸 채 우리를 맞이해 줍니다. 실로 처음부터 수미산 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가 있다는 것은 희유하고도 기적과도 같은 놀라운 일입니다. 아마도 대중 스님들의 오랜 염원과 신심, 그리고 원력 때문이겠지요.

수미산을 배경으로 오색 타르쵸가 바람에 흩날리는 입구에서 영진 스님과 80여 순례대중 일동은 수미산과 부처님께 코라 순례를 알리는 고불식을 가졌습니다. 예불을 드리고 반야심경을 봉독하고는 법성스님의 축원과 일진 스님의 간절한 발원문을 낭독 하였습니다. 예불을 드릴 적에 바로 옆의 비구니 스님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는지라 나도 모르게 감격에 젖어 감사와 행복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뒤이어 사방으로 둘러 고요히 정좌한 채 잠시 입정을 하였습니다. 5~7분의 입정 순간은 마치 한 생을 다 살아버린 느낌이었습니다. 내 안에 수미산을 간직한 채 오랜 세월을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치며 벅찬 감격과 희열이 함께하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아마 그건 일종의 행복의 충격이자 섬광과도 같은 깨달음의 찰나이며 순간에서 영원으로의 회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수미산의 허공과 바람과 구름이 전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에 귀와 마음을 기울여 보았습니다. 문득 겨자씨 하나에서 삼천대천세계인 수미산을 보는 것입니다. “수천수만의 히말라야 연봉들이여, 수천수만의 연꽃으로 피어남이라. 수천수만의 연꽃마다 수천수만의 부처일레라! 설산과 연꽃과 부처 사이에 내가 있어라”

고불식을 마치고 작은 탑 안의 종을 울리며 수미산 코라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서쪽면의 카일라스를 바라보며 거대한 협곡사이로 완만한 오르막의 순례길이 긴 선을 그리며 까마득하게 뻗어있습니다. 말과 야크와 걍이라는 동물들이 지나고 협곡 좌우에서는 크고 작은 빙하 녹은 폭포수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듯이 흘러내립니다. 코라 순례길 뿐만이 아니라 이곳 수미산까지 이르는 긴 여정 자체가 고행의 순례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삶과 수행의 여정 그 자체가 순례이자 고행길 이겠지요. 여정, 그 자체가 보상인 셈입니다.

주위 풍경에 취해 두어 시간 걷자 오른쪽 바위 봉우리 사이로 성산 카일라스가 살며시 얼굴을 내밉니다. 단단하고 둥그스름하게 생긴 검은 암석의 거대한 봉우리에 만년설이 덮여있어 더욱 신비스러운 느낌입니다. 세상의 중심인 카일라스의 바람은 우주의 숨결로 호흡을 통해 영적인 기운을 주고 받는 듯 합니다. 내 안에 카일라스를 담아 숨을 내쉬면 바람에 흩날리는 타르쵸처럼 온 세상으로 수미산의 기운과 내 마음이 함께 전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카일라스는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뵌뽀교의 성지로 지구상에서 가장 신비하고 신성한 곳입니다. 티베트에서는 ‘소중한 눈의 보석’이라는 의미로 강린포체(岡仁布齊)로 불립니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카일라사 파르바타로 이것이 영미권으로 전해져 ‘카일라스(Kailas)'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불교에서 세상의 중심으로 일컫는 수미산이 바로 이 카일라스인 것입니다. 카일라스는 주위에 250개가 넘는 빙하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카일라스의 빙하가 녹은 물은 브라마푸트라강, 인더스강, 수틀레지강과 갠지스강의 지류인 카르날리강의 발원지가 됩니다. 이곳 카일라스는 등정이 금지돼 아직 미답의 처녀봉이기도 합니다.

수미산 외곽을 도는 카일라스 코라 순례길은 총 52km이고, 이 길의 안쪽에는 거리가 짧은 난코르라는 내부 순례길이 있습니다. 카일라스 코라는 다르첸(4,5675m)에서 시작해서 돌마라고개(5,640m)를 넘는 여정으로 한 바퀴 도는데 보통 2박 3일이 걸리는 험난한 여정입니다. 티베트 순례자 중에는 하루만에 도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오체투지로는 족히 열흘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순레길에서 만나는 오체투지하는 티베트 사람들의 모습은 숭고하고 아름답기만 합니다. 진흙투성이의 고무로 된 소가죽 앞치마와 옷은 닳고 닳아 구멍이 뚫리고 이마에는 혹 같은 굳은살이 박힌 채 영락없는 고행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얼굴은 밝은 미소와 자비가 깃든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입니다. 마치 살아있는 진정한 보살인 듯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경외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티베트 인들은 조캉사원이나 카일라스를 오체투지로 순례하는 것을 일생일대의 소원이자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카일라스를 걸어서 한 바퀴 돌면 일생동안 지은 죄를 씻고, 10번 돌면 한 겁(劫)에 걸쳐 쌓인 업장을 씻을 수 있고, 108번 순례하면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하물며 오체투지로 순례를 한다면 그 공덕은 능히 하늘에 닿을 것입니다. 이렇듯 수미산과 이곳에서 수행한 밀라레빠를 비롯한 많은 이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한 인간의 영혼의 위대함과 크기는 필설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숙소는 해발 5,210m의 다라푹 사원 근처의 새로 지은 롯지입니다. 말이 롯지이지 화장실도 없는 그냥 여인숙 수준입니다. 그래도 이곳이 바로 코라 순례길 중에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카일라스의 북면을 한눈에 바라볼 수가 있는 최고의 전망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숙소가 바라보이는 마지막 언덕에 올라 숙소 키를 받자마자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정말 힘들고 험난한 여정을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대로 쓰러진 채 잠이 들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로금풍에 진면목을 온전히 드러낸 카일라스 북면의 장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그 순간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습니다. 이대로 그의 품 안에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숙소에 여장을 풀고 뒷편 카일라스 전망대에 올라 온전히 카일라스 북면을 마주하면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마치 숨이 멎을 것만 같습니다. 카일라스의 신령한 기운과 혼을 내안에 가득 채우고 나는 그대로 카일라스가 되는 듯합니다. 카일라스여, 내 영혼이자 내 전부와도 같은 나의 님이여, 내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