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찾아가는 험난한 고행길

조계종 교육부장 진광 스님은 지난 822일부터 95일까지 조계종 해외연수 순례 일환으로 영진 스님과 함께하는 티베트 수미산 순례를 다녀왔다. 진광 스님은 80여 스님과 함께 했던 여정을 서간문 형식으로 보내왔다. 이에 본지는 스님의 순례 서간문을 인터넷에 순차적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샤카사원에서 티베트 승려들이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랑하는 벗이여! 당신의 존재가 내 삶의 이유로 충분하듯이, 시가체는 타쉴훈포 사원과 판첸라마의 존재만으로도 의미있고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매일 그것을 우러르며 마음속에 간직한 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시가체를 떠나 다르첸에 이르는 3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해발 4000~5000m에 이르는 창탕고원의 험난한 여정입니다. 수미산을 찾아가는 어렵고 험난한 여정이지만 님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이 또한 즐겁고 행복한 여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는 차가 출발하면 곧 예불문과 반야심경을 합송하고 법성 스님의 축원과 제가 작성한 발원문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금은 귀찮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의식을 하면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지는 느낌입니다. 중국 사찰에서 의식을 못하게 하니 이렇게라도 하며 신심과 원력을 다지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먼저 샤카(薩迦)라는 곳에 있는 샤카사원(薩迦寺)으로 향합니다. 알룽창포강을 따라 고원 곳곳마다 노란 유채꽃이 마치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아름답습니다. 또한 청보리(靑?)가 파릇하니 자라나 들녘 가득 결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를 수확해 티베트인의 주식인 참파와 청과주를 만들어 먹는다고 합니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티베트인의 심성과 기질이 마치 청보리를 닮은 듯 순수하고 아름답습니다.

샤카사원은 1071년 당시 세력있는 콩 체갈 포가 세웠다고 합니다. 샤카사원의 원장은 다른 사원들이 전 원장의 환생라마를 사원의 우두머리로 삼는 것과는 달리 세습제이며, 콩가문의 자손들에 한해 승계된다고 합니다. 몽골 점령기에는 직접 쿠빌라이 칸을 방문해 국사에 준하는 지위를 획득해 티베트 전역을 관장하면서 번영을 구가했다고 전해집니다.

샤카사원은 마치 하나의 큰 요새와 같아 보입니다. 검은색 성벽과 같은 우람한 형태로 보는 이를 압도하듯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건물을 좌측으로 돌아 빙 둘러가야 비로서 성문 같은 것을 지나 본전에 다다를 수가 있습니다. 티베트나 부탄의 사원은 일종의 요새 역할을 함께하는 (요새)’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곳도 샤카사원과 샤카종의 복합형태로 종교와 장치군사적인 면이 결합된 형태인 것입니다.

이곳은 특히 우리와도 연관이 있어 고려 충선왕이 유배를 왔던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몽골의 수도 카라코람에서 이곳 티베트 샤카까지의 유배 여정과 고독한 유배생활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기만 합니다. 그는 이곳 척박한 이국의 사원에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드디어 이곳 샤카사원에서 그동안 삼예사원이나 여타 사원에서 하지 못했던 추모재를 올렸습니다. 티베트에 선을 처음으로 전파한 해동 정중무상 선사와 그의 선법을 이어온 바세와 세르난 화상을 기리고, 아리타발마·혜업·현태·현각·진오 스님 등 신라 출신의 해동 천축구법승들을 추모하는 자리입니다. 이에 더해 고려 국왕인 충선왕까지 함께 정성스레 위패를 봉안하고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의 위법망구의 구도열과 전법교화의 행적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아울러 그들의 행적에 부끄럽지 않는 후학으로서 살아가기를 서원하는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샤카사원에서 순례단 스님들이 정중무상 선사와 천축구법승, 충선왕을 기리는 추모재를 봉행하고 있다.

추모재를 마친 대중 스님들의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에서 무언가 새로운 의지와 서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지금의 한국불교는 이렇듯 수많은 선사 스님네의 피와 땀과 열정의 소산입니다. 그렇기에 이를 계승·발전시켜 나갈 책임 또한 우리 저마다에게 있는 것입니다. 위패를 가져나와 소지하는데 구슬픈 가랑비는 마치 님들의 눈물인양 소리없이 흐느끼듯이 자꾸만 흘러 내립니다. 아울러 9614주기를 맞이하는 은사 스님이신 제31대 총무원장 이셨던 인곡당 법장 대종사를 향한 추모의 마음도 함께 하였습니다.

때마침 어느 티베트 승려의 장중하고도 아름다운 티베트 악기의 소리가 울려 퍼져 마치 하늘 끝에 가서 닿는 듯 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소리는 아쉬운 듯도 하고 환희스러운 듯도 하여 내 마음에 기나긴 여운과 향을 남기고 허공 속에 낮고 길게 울려 메아리칩니다.

샤카사원을 떠나 사가라는 마을에서 여장을 푼채 하룻밤 쉬어 갑니다. 이곳 또한 해발 4,500m나 되는지라 숨을 쉬거나 잠을 이루기가 무척이나 곤란한 지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발고도가 높아 산소가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계단 한 층을 오르는데도 한두 번은 쉬어야 오를 수가 있을 정도입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으니 헛된 망상과 꿈같은 것들이 찾아와 도무지 떠나지를 않습니다. 새벽 3-4시가 되어서야 겨우 간신히 잠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또다시 길을 떠나야만 하는 날들의 연속입니다.

다음날도 티베트고원의 끝도 없는 길이 이어지며 마치 꿈속을 헤매는 마치 취생몽사(醉生夢死)의 상태가 이어집니다. 마치 섬진강변이나 변산반도를 드라이브를 하는 듯 하다가도 조금만 언덕을 오르면 해발 5000m에 육박하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곤 합니다. 알룬창포 강도 청보리와 유채꽃밭도 야크와 양의 무리 혹은 타르쵸와 룽다의 물결도 모두가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풍경처럼 느껴집니다. 그럴수록 화두를 하나 잡아 들고는 애써 씨름을 하여 봅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나는 진정 누구인고라고 말입니다.

가는 길에 어떤 호수 가운데를 양떼들이 가로질러 가는 모습을 발견 했습니다. 모두가 차에서 내려 그 멋지고 신기한 광경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수천, 수만의 양떼들이 양치기나 개들의 통제에 따라 호수를 가로질러 건너편 산등성이를 따라 걸어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홍군의 대장정을 보는 듯한 감동과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나도 그 뒤를 따라 걸어 마침내 영원으로 향하고 싶은 그런 심정입니다.

그리고 해발 5000m 가까운 건라산 정상 부근의 고갯마루에서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색의 타르쵸와 룽다 깃발이 바람에 흩날리는 언덕위에는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만발합니다. 그 초원 위로 수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꽃보다 아름다운 행복한 미소와 얼굴로 자리합니다. 비로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를 알 것만 같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초록의 풀밭과 언덕 사이로 어느 비구니 스님의 뒷모습은 차라리 한편의 시이자 그림이고, 노래이자 춤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가 바로 정토이자 불국이며 화장찰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드디어 마나사로바 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올랐습니다. 구름에 가린 나이모나니산(7,694m)의 웅자한 산아래 그림처럼 아름다운 성스러운 호수 마나사로바 호수가 저 멀리 바라다 보입니다. 해발 4,586m에 자리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대형 담수호로 우주의 자궁이라 불리며 마야부인이 이곳에서 목욕한 후 부처님의 태몽을 꾸었다는 설화를 간직한 곳입니다. 날이 좋으면 수미산도 보이련만 아직은 그 신비한 자태를 보여줄 생각이 없는 듯 얼굴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한 시간을 더 달려 드디어 수미산의 관문인 다르첸(4,650m)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다음엔 23일간의 수미산 코라 순레길의 소식을 당신께 전해 드릴 테니 기대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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