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의 ‘미(彌)’는 하나의 큰 것 믿는다는 의미 자신이 깨치고 그 다음에 남을 깨치도록 돕는다. 궁극적으로는 이를 행동으로 성취시켜 나가는 것이다. ? 13-3. 보은게(報恩偈) 이런 사상은 그가 선을 너무 편협하게 생각한다는 것과 세상에는 집단적인 악이 존재한다. 뚜렷한 사실과 또 스케일이 큰 광범위한 선의 참 모습을 그가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므로 이 점은 우리가 퍽이나 생각해 볼 문제다. 이에는 신라 화랑(花郞)의 대종장(大宗匠)에 얽힌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백결(百結)선생이라는 분도 훌륭하였지만, 백결 선생이 자기의 스승으로 성인으로 받들어 모시던 물계자(勿稽子)라는 어른이 있었다. 물계자는 국가가 위태로울 때 우리는 나아가서 전쟁을
우리는 부처님 사랑받고 불제자 돼 중생구제 원력은 대승보살의 자격 대자대비 베푸는 것은 불법 가르침 부모가 지극정성으로 자식 돌보듯 이웃도 애틋한 마음갖고 살펴야 돼 은혜를 느낀다는 일이 중요한데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는 이 은혜에 대해서 그렇다면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것이 곧 보은(報恩)하는 것, 즉 은혜 갚는 것이 된다. 부처님의 커다란 사랑을 받은 이상 이를 보은해야 되겠지만 그것은 부처님에게 갚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에게 은혜를 갚는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는 부처님의 사랑을 받고 불제자가 되었다. 부처님의 후계자로서 대승보살이 되었다. 대승보살(大乘菩薩)이 된 그 자격을 무엇으로 보느냐? 그것은 중생을 건진다는 것, 그러니까 뭇사람을 위
자비는 어머니의 사랑과 같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니 바라는 바도, 받을 것도 없다 ? 십중대은(十重大恩) 갚음은 불은(佛恩)을 갚는 동시에 중생 은혜를 갚는 것이다. ? 13. 보은게(報恩偈) 끝까지 불쌍히 여겨 주는 이런 은혜다. 언뜻 부모들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었느냐는 생각이 든다. 그런 때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조목 조목을 들어 보면 마침 부처님 은혜도 꼭 이와 같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께서 우리들 자신의 뱃 속에다 넣고 얼마나 수호하시는가. 우리를 이걸 하나 키워서 발양하려고 얼마나 부처님의 제자 만들기에 고생을 하시느냐. 또 마침내 부처님 제자가 되었을 때는 얼마나 기뻐하실 건가. 부처님 제자 되기 위해서 염불은 어떻게 해야 되고 신앙은 어째야 되는가. 앞에서 온갖
헌신하며 보살펴 주는 부모님과 같은 부처님 은혜 스스로 믿고 타인에게 믿음주며 중생 제도하는 것이 ‘보은’ ? 넷째, 당수대고(當受代苦). 나 자신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대신 감당해 나간다. 다섯째, 내 몸뚱이가 튼 고기가 되어 모든 사람을 배불리 먹인다. 널리 중생에게 이익을 베푼다 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여섯째에는 우리가 큰 원을 가져 모든 고에 당하고, 중생이 나와 같이 진리를 사랑하고 다 같이 원을 이루어 나가자는 것. 일곱째는 내 몸뚱이가 발심하고 내 자신이 행동하는 것이 바로 법(法)이므로 이 세상 끝 다 하는 데까지 해나간다는 말. 자기의 몸뚱이가 법계(法界)로서, 결코 상대적으로 그가 이러므로 나는 이렇다. 그가 저만큼 하니 나도 이만큼 하는 그런 좁은 생각을 말 것.
지금에야 착한 일을 닦아 안락인(安樂因)을 마련하리니 죽음에 닿아 엎드렸을 때 낱낱 인연이 눈에 보인다면 아미타불 얼굴 우러르고 싶다. 부처님 본원으로 큰 생명 굽이치니 아미타불이시여! 눈물 흘리고 당신 앞으로 걸어나갑니다.?? 수호품(守護品)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망면 되게 나니 남이니 하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어 내가 해야만 된다고 여기거나, 둘째는 안으로 자기 마음에는 번뇌를 꽉 채웠고 밖으로는 모든 악취(惡聚)를 만날 경우, 이런 때는 내가, 내 아성(我性), 나라 하는 이것이 매우 증대(增大)해 있는 것이다. 셋째는 안팎이 이미 달라져 있는 때, 좋은 생각도 멸해지는 경우다. 그러면서 좋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남 잘하는 것을 보고 좋게 여져기기 않을 뿐더러 부러워하는
행동으로 과오 범할 때 ‘차계’(遮戒)라고 하고 마음으로 지은 죄를 성계(性戒)라고 한다. 십악업을 극복해 나가고 참(慘)을 행해 바로 잡으면 십선업이라고 한다.? ? 11. 보위사승부모급선지식법계중생단제삼장동득왕생아미타불국귀명참회 (普爲師僧父母及善知識法界中生斷除三障同得往生阿彌陀佛國歸命懺悔) ? 至心懺悔 南無懺悔十方佛 願滅一切諸罪根 今將久近所修善 廻作自他安樂因 恒願一切臨終時 勝綠勝境悉現前 願覩彌陀大悲主 觀音勢至十方尊 仰願神光蒙授手 乘佛本願生彼國 至心歸命阿彌陀佛 懺悔廻向發願已 ? 이제까지는 보현십원(普賢十願)이었고 이것은 별원(別願)이다. 특별히 원을 세우고 참회한다는 뜻이다. 보현십원은 보통 일반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별원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분들, 널리 스승
관을 닦아 선근을 일으켜 악에 애착하는 버릇 버리고 좋은 일하면 힘차게 나가야 이치에 순합하는 지와 관 한 쌍의 수레바퀴 이루어 한가지로 수행해 나가자 다섯째는 지관문(止觀門)이다. 앞에서 지(止)와 관(觀)을 말한 바 있다. 그런데 먼저 이 지를 닦아 나가는 방법으로 기시론(起信論) 같은 데서는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고요한 곳에 한가롭게 있어야 된다. 둘째는 지계(持戒)가 청정해야 되다. 셋째는 의식이 구족해야 된다. 입을 것, 먹을 것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그런데 정신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어 그칠래야 그쳐지지 않는 것이다. 넷째는 좋은 스승님, 선지식(善知識)을 얻어야 한다. 다섯째는 모든 속무(俗務)를 쉬이 버려야 된다. 인연 되는 사무, 그러니까 모든 신상 사무를 걷어치
근본·부처·법·승 네가지 믿는 신심은 보시로 들어가는 문 기쁜 마음으로 나누고 베풀고 난 후에는 미련 없이 애착 버려야 한다 믿음은 이렇듯 아주 중요한 것이므로 신은 모든 부처가 돌아가는 바며 일체의 모든 행동이 비롯하는 바탕이라고 하여 신은 근본이라고 일컫는다. 이 믿음, 신심(信心)을 설명할진대 대략 네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근본을 믿는 일인데, 근본은 진리이며, 이 신근본(信根本)이란 진리를 사랑하고 이에 귀의하여 늘 생각하고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과, 이것이 모든 부처의 돌아갈 바이며 갖가지 행동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믿는다. 둘째는 부처를 믿는다. 부처를 믿으면 무량한 공덕이 있다. 우리가 왜 부처를 믿느냐 하면
행동과 선근을 키우고 허물은 멈추고 큰 원을 세워 일체중생 구제해야 수행해서 극락세계의 지경에 이르면 ‘왕생회향’ 즐겁게 노니는 것만이 아니라 정토의 업 보은해야 한다 발심을 하고, 무상보리심을 이룩해 나가는데는 방편(方便)이 필요하다. 방편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방편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근본방편(行根本方便)이다. 자기가 하는 행동, 그러니까 발심하는 행동의 근본이 되는 방법. 둘째는 능지방편(能止方便). 잘못을, 허물을 그칠 수 있는 방법. 셋째는 발기선근방편(發起善根方便). 선근을 발해 일어나도록 하고, 다시 이를 더하고 키워 생장(生長)케 하는 방법. 넷째는 대원평등방편(大願平等方便)이다. 큰 원이란 평등해야 한다. 이를 평등하게 하는 방법. 행근본방편(行根本方便)은
결정된 마음이란 머물러 있고 방일치 않고, 여실수행하기에 발심은 믿음을 성취한 것이다. 믿음을 닦아 실천·행동하며 경험 살려 나아가면 ‘회향’ ? 南無至心歸命禮西方彌陀佛(一拜) 所有與我同行者 於一切處同集會 身口音業皆同等 一切行願同修學 我此普賢殊勝行 無邊勝福皆廻向 普願沈溺諸衆生 遠往無量光佛刹 願共諸衆生往生安樂國 ? 보개(普皆)는 이제까지 말한 것 모두 ①, 예경제불(禮敬諸佛)에서 ⑨, 항순중생(恒順衆生)까지 거쳐 오면서 얘기한 것 모두라는 뜻. 회향(廻向)은 향방을 바꾸어서 나아간다. 회(廻)는 회전, 굴려서 돌린다, 돌이킨다. 향(向)은, 취향(趣向), 처음에 나무(南無)한 것처럼 나아가서 향한다. 어디로 나아가며, 무엇을 굴려서 돌리느냐, 돌이키느냐? 제가 닦은 선(善)을 돌이켜
목숨은 한낱 들숨 날숨에 늘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목숨이 끊어지는 때가 따로 있는 것이라 할 수 없다. ? “죽을 때 위해 모든 장애를 말끔히 씻어 내리라” 아미타불을 우러러 보고 곧 안태한 극락의 지경에 대목적(大目的)만이 있다. ? ? ‘늘상 보현(普賢)의 광대(廣大)한 수행을 닦아 둥글게 가득찬 무상(無上)의 보리심(菩提心」)으로 끝내는 부처를 이룩하리라’ ? 수순은 남의 마음을 맞추어 나간다는 것, 또 앞에서 말한 중도실상(中道實相)의 도리에 순합하는 그것이라고 알았지만 여기서 주의를 환기할 일이 하나있다. 가령 구한말(舊韓末)의 역적배들, 이를테면 이완용 송병준 하는 따위 인물들이 있어 사안(史眼)으로 평한다면 그들은 한 국가의 중신(重臣)으로, 무거운 정치적
내 옳다 주장하면 허하고 ‘空’하다 아상 내세우면 ‘有’ 공과 유의 양 극단을 버려야 한다. 중도에 맞는 견해와 행동 즉 ‘수순’이 필요하다. ? 南無至心歸命禮西方阿彌陀佛(一拜) 我常隨順諸衆生 盡於未來一切劫 恒修晋賢廣大行 圓滿無上大菩提 願我臨欲命終時 盡除一切諸障? 面見彼佛阿彌陀 卽得往生安樂刹 願共諸衆生往生安樂國 ? 참으로 이런 대문에 이르러서는 감격의 눈물이 안 난 달수가 없다. 여기서 수순(隨順)이라는 말이 있다. 수순이란 남의 마음을 맞추어 나간다. 그의 마음을 맞추어 주고 그로 하여금 흡족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해 나간다는 뜻이다. 마음을 맞추어 그가 흡족하도록 받들어 섬긴다는 것이지만 이에는 대별(大別)하여 두 가지의 큰 뜻이 들어 있다. 첫째 명법비무(明法非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