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보살은 뭇사람 위해 자비 베푼다
대승보살은 뭇사람 위해 자비 베푼다
  • 최범술 스님
  • 승인 2014.09.12 1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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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보은게(報恩偈)

우리는 부처님 사랑받고 불제자 돼

중생구제 원력은 대승보살의 자격

대자대비 베푸는 것은 불법 가르침

부모가 지극정성으로 자식 돌보듯

이웃도 애틋한 마음갖고 살펴야 돼

은혜를 느낀다는 일이 중요한데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는 이 은혜에 대해서 그렇다면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것이 곧 보은(報恩)하는 것, 즉 은혜 갚는 것이 된다. 부처님의 커다란 사랑을 받은 이상 이를 보은해야 되겠지만 그것은 부처님에게 갚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에게 은혜를 갚는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는 부처님의 사랑을 받고 불제자가 되었다. 부처님의 후계자로서 대승보살이 되었다. 대승보살(大乘菩薩)이 된 그 자격을 무엇으로 보느냐? 그것은 중생을 건진다는 것, 그러니까 뭇사람을 위해 뭇사람에게 대자대비를 베푼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번번히 일컫는 바 대사회(大社會)의 건설이며 대사회의 사명 의식 대사회의 목적 등을 아는 그런 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우주, 전 인류를 복지 사회로 이끌어 나아가며 이것이 건설되기를 바라는 큰 비원을 이른다. 그런데 이것이 꼭 무엇과 같으냐 하면 우주를 통틀어 대사회로 볼 때 이러한 대사회에 제 가끔의, 개개의 생명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라 친다면 마치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 잉태되어 그동안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어머니 뱃속에 잉태되어 있다는 그것이 얼마나 어머니로 하여금 많은 심혈을 자아내게 하는 것일까. 또한 이렇듯 심혈을 자아내다가 드디어 우리가 대생명을 원할 때에는 하늘과 땅이 찢어지는 큰 고통을 느낀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귀중한 생명체가 이윽고 하나의 독립된 인격을 갖추어 탄생할 것을 요구할 때에는 우주의 모든 조건이 결합되어야 할 것이므로 그런 것이다.

이를 자연과학의 물리적 현상으로 보더라도 역학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커다란 생명체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원심력의 영향 아래에서 스스로 구심력을 일으키어 우주의 모든 조건이 이리로 집중될 때, 유형 무형의 대사건들이 일어난다. 큰 고통이 든다. 이것을 일컬어 그 생명을 받을 때 큰 고(苦), 괴로움이란 이를테면 커다란 노력으로서 우리가 이러한 대생명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대생명을 우리가 받고 각기의 개체가 완전한 생명체를 구성하였을 때는 우주의 모든 사람들은 퍽이나 환희를 느낀다. 지금도 바야흐로 이 귀중한 하나의 생명체가 독립되어 대사회를 위해, 우주를 위해 큰 사명감을 가지고 나아간다. 그러한 자기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큰 환희를 느끼고, 이제까지의 내포한, 그리고 고통을 받던 일이란 이를테면 그 생명체를 완전히 독립시키는데 이르기까지의 홍역을 치루고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제는 그런 것을 다 잊어버려 커다란 환희를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은 은중경(恩重經)에서는 생자망우(生子忘憂)라고 한다. 어머니가 애기를 낳고 나서는 온갖 걱정을 싹 잊어버리고 튼튼한게 얼마나 반가운가 하는 그런 환희를 말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가령 우리가 한낱 생명이 있다고 보는 난초 한 포기라거나 꽃밭에 있는 장미 한 그루라거나 심지어 작은 봉선화 같은 화초일지라도 그것이 움이 터 좋은 자리에 심어 두고, 온갖 정성을 기울여 기른다는 것은 흡사 우리 인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쓴 것을 자신이 삼키고 단 것을 토해서 자식의 입에 넣어, 아끼는 것과 꼭 같은 심정이다. 봉선화 하나라도 잘 가꾸려면 좋은 거름 될 만한 것을 주어 길러 낸다. 소중한 난초 포기를 기를 양이면 또 얼마만한 주의 정성이 드는 것일까. 비료 주는 것이라든지 손을 보아 가꾸는 것이라든지, 벌레가 달라들지 못하게 한다든지, 또 벌레가 붙었을 경우에는 이를 제거하는 약을 친다든지 하여 길러낸다. 이는 흡사히 따뜻한 데 있어서 안 되고, 너무 찬 데 놔두어도 안 되고 이러는 것이 우리 부모가 자녀들에게 하는 노릇과 같아 회건취습(廻乾就濕)이 된다. 진자리에, 오줌 똥 싸서 더러워지고 추하게 한 데는 자신이나 앉고 마른 자리에 깨끗한 좋은 자리에는 아들 딸을 눕히는 것과 같다. 식물이건 사람이건 다를 바 없으며 생명체를 완전히 잘 보육하는 데는 역시 같은 현상이다. 또 유포양육(乳哺養育)으로 볼진데 난초잎이 깨끗하지 못하고 부정할 경우엔 이를 말끔히 씻어준다. 잎새에 먼지가 앉았을 때는 뭇으로 쓸어주고 다시 붓을 물에 적셔 닦아주고, 벌레가 먹지 않도록 약물로 씻어준다. 이러는 것이 이를테면 어머니가 애기의 부정을 잘 닦아 내는 것과 같다. 또 애기 젖 먹일 때가 됐는데, 어머니는 이것들이 밥은 어떻게들 먹고 있나, 끼니때가 되었는데 밥을 해 주어야지, 또는 젖을 먹여야지, 기다릴텐데 얼른 가서 배 안 곯도록 해야지 하고 늘 생각한다. 소채를 재배하거나 화분을 가꾸는 데도 철 따라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먼 데 갔다가도 돌아오는 것은 이것이 다 원행억념(遠行憶念)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나쁜 짓까지 해서라도 이를 보호한다. 얼른 듣기에는 그럴싸하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실상 이런 일은 항상 있다. 안중근 의사 같은 이는 역시 자비와 의리를 아는 분으로 인간성으로 볼 때 선(善)을 지녔었다. 이순신 장군도 역시 그렇다. 그러나 제 나라를 위해서나,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되었다. 안중근 의사로서 볼 때 사람 죽이는 일이 어찌 인간으로 차마 할 일이었으랴. 그렇지만 불행한 조국을 위해서는 살인까지도 해야만 되었다. 그래서 하얼빈에서 이등박문을 총으로 쏴 죽였다. 충무공 역시 생명을 아낄 줄 알고 인자하신 분이었지만 자기 국가를 보존하기 위해서나, 자손 만대의 행복을 위해서는 이에 반역되는 것은 모조리 죽이고 항복 받고 하였다. 이런 전쟁의 살육은 자비스러운 생각으로 본다면 악업(惡業)이다. 착한 일이라면 하겠지만 어찌 나쁜 일이야 차마 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다. 불교인 중에도 그런 축이 더러 있지만 침례교나 성결교 가운데 반전사상을 갖고 전쟁은 사람을 죽이는 살생이므로 그런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라고 하는 이가 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또는 부처님의 자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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