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보개회향(普皆廻向)

결정된 마음이란 머물러 있고

방일치 않고, 여실수행하기에

발심은 믿음을 성취한 것이다.

믿음을 닦아 실천·행동하며

경험 살려 나아가면 ‘회향’

 

南無至心歸命禮西方彌陀佛(一拜)

所有與我同行者 於一切處同集會

身口音業皆同等 一切行願同修學

我此普賢殊勝行 無邊勝福皆廻向

普願沈溺諸衆生 遠往無量光佛刹

願共諸衆生往生安樂國

 

보개(普皆)는 이제까지 말한 것 모두 ①, 예경제불(禮敬諸佛)에서 ⑨, 항순중생(恒順衆生)까지 거쳐 오면서 얘기한 것 모두라는 뜻.

회향(廻向)은 향방을 바꾸어서 나아간다. 회(廻)는 회전, 굴려서 돌린다, 돌이킨다. 향(向)은, 취향(趣向), 처음에 나무(南無)한 것처럼 나아가서 향한다. 어디로 나아가며, 무엇을 굴려서 돌리느냐, 돌이키느냐? 제가 닦은 선(善)을 돌이켜 보인다. 향(向)은 삼처(三處), 세 곳으로 향한다. 축원할 때 뇌는 회향삼처실원만(廻向三處悉圓滿)하는 삼처인데 이는 실제(實際)·보리(普提)·중생의 세 가지다. 실재는 실지로 있는 것, 이것이 원 주되는 것이고 본체다. 실제에서 무엇을 알고 어떤 일을 한다, 이것이 보리이다. 깨쳐 나간다는 그것이 실제의 상(相)이다. 제중생(諸衆生)은, 즉 모든 중생에게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덕을 베푸는 용(用)이다. 이렇듯 체상용(體相用)의 세 가지의 큰 것이 삼처가 된다.

회향이란 앞으로도 또 설명하겠지만 상당히 복잡하다. 이는 마음이 좁고 용렬한 데에 꽉 막혀 있는 것을, 그것을 제거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용렬하고 좁은, 협열(狹劣)한 생각을 낳게 한 장애(障碍)를 제거한다는 것은 광대한 선을 내도록 한다는 뜻이다. 이는 아주 중대한 일이다. 회향이랑 우리로 하여금 결국 방향을 잡아 나아가게 한다는 그런 뜻인데 이를 발취도상(發趣道相)이라고 한다. 마음을 발하여 부처들이 모두 증덕(證德)한 도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또 대도(大道)를 밟아 나가는 거룩한 보살(菩薩)들이 발심(發心)하여 수행한다는 뜻이 있다. 그런데 발심이란 아주 중요한 말이다. 발심이 있어야만 회향이 되어진다. 회향은 그 중심이, 마음을 발하여 나아간다는 발심에 있다. 원효대사의 소년 시절의 작품으로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달리 발심의 내용을 캐어 본다면 첫째는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 둘째 해행발심(解行發心), 셋째 증발심(證發心)으로 되어 있다.

신성취발심이란 무엇인가? 믿음은 모든 것의 원 토대다. 믿음이 튼튼히 서고, 튼튼히 곽 섰다는 것은 확실하게 믿어졌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의 머무른다는 것은 십주(十住)다. 확실하게 믿어졌다는 것, 믿음이 굳어졌다는 덕은 머무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십주의 수행 단계에 가서 서 있다. 십신위(十神位) 중에서, 즉 믿음을 닦아 나가는 절차 중에서 신심(信心)이 성취되면 자연스러이 이미 결정된 마음을 낸다. 결정된 마음이란 머물러 있고, 방일치 않고, 여실수행(如實修行)하기 때문에 이에 이르렀을 때는 그 발심은 믿음을 성취한 것이다.

둘째의 해방발심이란 오수(五修)의 십회향(十廻向)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된다. 믿음을 닦아나가는 실천적 행동을 돌리어 더욱 경험을 살리고, 더 잘되게 해 보자는 것이 회향이다. 회향은 십행(十行)에서 얻어진다. 그런데 이 회향의 지경에 이르면 내가 무엇을 해야만 된다든가, 내가 아는 것이 옳다든가, 나라는 것이 있어야겠다던가 하는 것, 그것을 진리라고 법(法)이라고 한다면 그런 것이 비어져 공(空)해진다. 자타(自他)의 관념이 없어져 내가 하든 남이 하든 마찬가지다, 그럴 바에는 내가 봉사해야겠다하는 능해법공(能解法空)을, 그러니까 진리가 공(空)된 것임을 알게 된다. 이에 이르렀을 땐 또 이 우주의 대사회, 즉 법계(法界)애 수순(隨順)을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수순이란 굉장한 것이다. 법계에 수순한다는 것은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고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반야(般若)가 순숙해져 회향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이룩하는 것이 해행발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행하는 것을 해행(解行)한다고 한다.

셋째번의 증발심은 초지(初地)에서 십지(十地)에 걸친 지경의 발심을 이른다. 초지와 십지 또는 십주(十住) 등이 따로따로 떨어져 이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설명의 한 방법일 것이고, 실상은 다 하나의 것이라고 앞에서 말한 바 있다. 신(信)이 굳어진 것이 곧 지(地)의 지경이고, 지는 신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 지경에 있어서 신성취(信成就)한 발심(發心)과 해행(解行)한 발심의 이 두 가지를 상사발심(相似發心)이라고 한다. 상사(相似), 즉 근사하다는 것인데, 그것은 아직 진짜는 아니라는 뜻이다. 발심해서 옳게 마음을 낸다, 근사하다, 이런 말이다. 진짜 발심은 증득법신발진심(證得法身發眞心)이라고 하는데 이는 진리의 몸둥이를 우리가 스스로 자체로써 체득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자기 자신이 바로 그 자리에 들어간 것을 말한다. 이것이 증발심(證發心)이다. 그런데 실상은 해행발심(解行發心)이나 증발심은 나중에 일이지만 우리에게 가장 요긴하고 중요하며 문제되는 것이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이다.

이 발심의 내용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직심(直心)이다. 원효대사는 또 이를 불곡(不曲)이라 하였다. 구부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정념(正念眞如法)이다. 둘째에는 심심(深心)이다. 이는 궁원지의(窮源之義), 아주 깊은 궁극의 연원에까지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 원류(原流)를 꿰뚫었다. 궁극하여 다달았다. 여기 이르면 제선행(諸善行)을 참집(參集)하게 된다.

셋째는 대비심(大悲心)이다. 일체 중생의 고(苦)를 없애주어야겠다 하는 욕발일체중생고(欲拔一切衆生苦)다. 일체 중생이 괴로워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직심(直心)·심심(深心)·대비심(大悲心)의 셋으로써 신성취발심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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