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3보개회향

근본·부처·법·승

네가지 믿는 신심은

보시로 들어가는 문

기쁜 마음으로 나누고

베풀고 난 후에는

미련 없이 애착 버려야 한다

믿음은 이렇듯 아주 중요한 것이므로 신은 모든 부처가 돌아가는 바며 일체의 모든 행동이 비롯하는 바탕이라고 하여 신은 근본이라고 일컫는다. 이 믿음, 신심(信心)을 설명할진대 대략 네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근본을 믿는 일인데, 근본은 진리이며, 이 신근본(信根本)이란 진리를 사랑하고 이에 귀의하여 늘 생각하고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과, 이것이 모든 부처의 돌아갈 바이며 갖가지 행동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믿는다.

둘째는 부처를 믿는다. 부처를 믿으면 무량한 공덕이 있다. 우리가 왜 부처를 믿느냐 하면 그는 선근(善根)을 일으키는 원 토대며 또 일체의 모든 지(智)를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의 진리를 믿는, 그러니까 옳은 것은 모두 옳다고 하는데서 그 중에도 특히 부처를 믿는다는 것은 선택행위이다.

셋째는 법(法)을 즉 부처님의 말씀을 믿는다. 앞의 것은 불보(佛寶)이고, 이 법보(法寶)를 믿으면 큰 이익이 있으며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수행하여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승(僧)을 믿으면 수행을 바르게 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유리할 뿐만 아니라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신승능정수행(信僧能正修行)이다. 승이란 부처님의 말씀을 받들어 수행하는 사회단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믿음을 네 가지로 나누었는데 그렇다면 이 신심(信心), 보시로서 들어가는 문이다. 누가 와서 구하는 것이 있으면 그의 사정을 이해하여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여 그의 구하는 바가 이루어지도록 베풀어 준다. 기쁜 마음으로 간탐 없이 보시해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이 액난을 당하여 공포에 떨고 있을 때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난처한 지경에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보시다. 남에게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또는 몸소 실천하는 행동으로써 큰 힘을 주되 조금도 겁을 내거나 아끼지 말고 베풀어야 한다. 그 밖에도 다른 사람들이 와서 내게 진리와 지식, 또는 좋은 말씀을 들려 달라고 할 때 자신이 아는 대로 일러 주는 것이며 그것도 방편(方便)을 써서 순서를 따라 정도에 맞추어 알아듣도록 간곡히 말해 주어야 한다. 보시(布施)는 흔히 우리가 시쳇말로 자선사업(慈善事業)이라고 일컫는 것과 같은 것이지만 이것이 위선(僞善)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할 일이며, 무엇보다도 자기가 베푼데 대하여서는 미련스런 애착은 아예 갖지 말고 상대방이 아마 고마워하고 있으려니 하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는 계문(戒門), 계로서 들어가는 문이다. 이른바 죽이지 말고, 도둑질 하지 않고, 음란치 않고, 양설(兩舌)을 하거나 거짓말 않고, 악구와 망령된 소리 하지 않고 비단결처럼 발라 맞추거나 하지 말고, 탐(貪)과 치(癡)를 멀리 하고, 남을 기만하거나 첨곡하거나 성을 내거나 삿되거나, 삿된 견해를 가지거나 그런 짓을 하지 않는 것이다. 또 출가(出家)한 사람은 번뇌를 끊어버려야 하며 멀리 시문(市門)의 시끄러운 데서 떠나, 항상 정적(靜寂)한 곳에서 스스로의 수행을 한다. 자기 자신의 몸가짐을 늘 이렇게 가다듬어 늘 공부하는 이로써 족한 것을 알아야 한다. 항상 마음에서 공포를 몰아내고 참괴(懺愧)를 가져, 회개하며 그러므로서 여래(如來)에 가까운 덕행(德行)을 늘 본뜨고 여래가 마련하신 모든 제도를 잘 지켜 이에 대해서는 자기기만(自己欺瞞)을 경계하고 또 중생으로 하여금 망령된 허물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한다.

셋째는 인문(忍門). 참는 길. 문은 길. 참는 길이란 어떤 것일까? 모든 것을 우리는 참아내야 한다. 먹고 싶고, 하고 싶고, 입고 싶고, 자고 싶고, 이래 가지고는 남에게 떳떳이 무슨 할 말이 있을 턱이 없다. 좀 배고픈 것도 참을 수 있어야 되고, 자고 싶은 것도 덜 자서 참고, 입고 싶은 것도 남을 위해 자기는 입지 말고 참아야 되고, 하고 싶어 이리 저리 허둥대는 그런 것도 안 해야 되고, 이렇듯 우리는 참아 나가는 것인데 이는 오로지 부처님께 봉공하는 뜻으로 참는 것이지, 아끼고, 참고,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써 내가 남에게 칭찬을 받는다든지, 명예를 얻는다든지 하는 그런 데다 목표를 둔다는 일은 삼가야 되는 것이다.

넷째에는 진문(進門)이다. 정진하고 나아가는 문이다. 우리는 노력을 해야 된다. 노력을 하는 데는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되고, 성스러운 뜻이 있어야 하고, 비겁한 생각을 떠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마음과 몸에 큰 고통을 느끼며 살고 있지만 만일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우리에게 아무런 이익도 주지 않는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본다. 우리가 애써 정진하고 얼마간 비축을 해 놓으면 우선 경제적으로 별 궁색이 없는데 만일 비축하는 그런 정진성이 없으면 단박에 물질로 크게 궁핍해질 것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부지런히 공덕을 닦고, 자신의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이익이 되고 동시에 남을 이익하게 하는 사람이 되도록 크게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중생을 저 고해(苦海)로부터 건져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모자라는 점이 있다. 물질적으로 정진을 게을리 하면 가난뱅이가 되고 정신적으로 학문 같은 것을 부실히 하여 정진이 모자란다면 낙후되어서 늘 남의 뒷 꽁무니만 따라다니게 되다. 이러다간 한번 남을 가르쳐 보진 못하고 늘 상 배우다가 볼 일 다 본다. 그러므로 진문(進門)을 깊이 헤아리고, 이 문을 늘 두드려 노력을 함으로써 우리가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고 나아가 지도할 수 이 있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를 이겨 나갈 수 있다. 장애의 극복, 이것이야말로 육시(六時)의 행원(行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경(禮敬)하고, 성심으로 참회(懺悔)하소, 근청(近請), 수순(隨順)하고, 회향(廻向)해야 된다. 그리하여 모든 장애(障碍)를 물리쳐 자꾸만 선근(善根)이 증장되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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