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최선일의 불모열전 시즌2] 12. 청허(淸虛) 스님

거창 심우사·상주 남장사 등에 보물급 불상 조성

17세기 초반 원오·현진 스님 등과 불상 작업
원오·각민 스님 계보 이은 당대 최고 장인
법현·현욱·영색·나흠·승호 스님 등이 계승

거창 심우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640년).ⓒ국가유산청
거창 심우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640년).ⓒ국가유산청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서 수화승으로 활동한 조각승 청허 스님은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부터 1640년대 후반까지 활동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청허 스님이 부화승이나 차화승으로 활동했던 1630년대의 구체적 활동은 확인되지 않는다.

조각승 청허 스님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1605년 음력 3월부터 7월까지 논산 쌍계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을 만든 후, 음력 8월부터 11월까지 완주 위봉사 북암에 4구의 목조보살입상(완주 위봉사익산 관음사[보물], 익산 혜봉원)을 조성한 것이다. 이 시기 청허 스님은 수화승 원오 스님과 함께 불상 조성에 참여했고, 당시 참여한 5명의 조각승 가운데 세 번째 언급된 것을 보면 중추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청허 스님은 부휴선수(浮休善修) 스님이 증명(證明)을 맡고, 의암(義庵) 스님과 김문의(金文儀)가 화주로 참여한 완주 위봉사나 그 주변 사찰의 불상(조성발원문만 남아 있음)을 제작했다. 

그 후에도 청허 스님은 1610년 원오 스님과 남원 선원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완주 위봉사 진석당 조성, 보물)을, 1614년 음력 4월부터 9월까지 5개월 동안 각민 스님과 순천 송광사 비로자나불삼존상(한국전쟁 중 소실)을 조성했다.

청허 스님은 1622년 5월에 왕실사찰인 자수사(慈壽寺)와 인수사(仁壽寺)에 현진·응원·수연·법령·인균·승일 스님 등과 비로자나불(2존), 석가여래(3존), 노사나여래(2존), 미타여래(2존), 관음보살(1존), 대세지보살(1존) 등 11존의 불상을 조성했다. 현재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서울 칠보사 목조석가여래좌상(보물),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보물)이 조사됐다. 
 

상주 남장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645년).ⓒ국가유산청


청허 스님은 1640년 음력 5월부터 8월까지 법현(法玄)현윤(賢允)승호(勝浩) 스님과 거창 심우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거창 연수사 조성, 보물), 1644년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보물), 1645년 음력 6월 상주 남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을 조성했다. 

문헌을 중심으로 청허 스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스님은 1580년대에 태어나 임진왜란을 겪고, 1600~1610년대 조각승 원오 스님과 논산 쌍계사, 완주 위봉사 등에 소조불과 목조불을 제작했다. 그 뒤 1620년대 조각승 현진응원수연 스님 등 당대 최고의 작가들과 협업한 후, 1640년대 수화승으로 거창 심우사, 경산 경흥사, 상주 남장사 목조불상을 조성했다. 경흥사 불상 조성발원문에는 청허가 전라도 금산사 화원이라 적혀 있고, 상주 남장사 불상 조성발원문에는 해동화명(海東畵名)으로 적혀 있어 소속 사찰을 포함해 당대 최고의 장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각승 계보는 원오(元悟, 이하 활동 시기 1583~1624)각민(覺敏, 1604~1614)→청허(淸憲, 1605~1645)→영색(英賾, 1626~1649)법현(法玄, 1634~1643)현윤(賢允, 1637~1653)나흠(懶欽, 1634~1657)→승호(勝浩, 1640~1719경) 스님으로 이어졌다.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1644년에 청허 스님이 제작한 대표적인 불상이다. 조성발원문에 따르면, 1635년부터 스님들이 동학산(動學山) 남쪽 기슭에 새로운 사찰을 중건하려는 마음을 모아 시작해서 1644년 영규(靈圭) 스님이 중건 불사를 마무리하고, 수화승 청허(淸虛) 스님을 비롯해 영색(英賾)현욱(玄旭)정혜(淨惠)나흠(懶欽) 스님 등이 제작에 참여했다.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한 삼존불이다.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여래와 보살의 형태적 차이만 있을 뿐 신체 비례와 얼굴, 옷 주름 표현 등이 유사하다. 어깨와 무릎이 넓어 당당하고 안정감이 있으며, 방형의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 단정하면서도 간결한 옷 주름 등이 특징이다.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좌상(1644년).ⓒ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석가여래상은 높이 148㎝의 중대형으로, 몸체에 무릎을 붙인 전형적인 조선 후기 목조불상의 접목식(接木式) 제작 방식을 따르고 있다. 대의 안에 부견의를 입지 않고, 항마촉지인을 결하였으며, 왼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낮은 육계에 중간계주와 중앙계주가 있으며 얼굴 표정은 엄숙하면서도 온화한 모습이다. 

좌우 보살상의 보관에는 화염문, 구름문, 보상화문의 금속판을 오려 만들어 부착하고, 좌우 측면에 날리는 관대(冠帶)를 부착했다. 어깨에 늘어뜨린 머리카락(보발), 부견의를 입은 변형통견식 대의에 수평으로 접은 승각기 상단의 모습은 석가여래와 차이가 있다. 우협시보살은 왼손이 본존과 같은 모습이고, 오른손이 손바닥을 밑으로 향한 채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좌협시보살은 우협시보살과 대칭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청허 스님이 만든 불상은 얼굴에서 위엄이 풍기는 인상이나 착의법 및 수인(手印) 등의 표현에서 공통된 특징을 보이며, 이러한 형태는 그의 제자인 나흠현욱 스님 등에게 계승됐다.

▶한줄 요약 
청허 스님은 1640년대 거창 심우사, 경산 경흥사, 상주 남장사에 보물급 목조불상을 만든 조각승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현대불교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