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최선일의 불모열전 시즌2] 8. 성수(性修, 性守) 스님

무염 스님 법맥 이어 완성도 높인 불상 조성

1630~50년대 전북 중심 활동 조각승
지역 대표 사찰 대웅전에 불상 조성
선운사 목조비로자나삼불좌상 제작도

17세기 중반 무염 스님 계보 이어
해심 스님과 선후배, 경성 스님 스승
1650~1654년 수화승으로 불상 조성

성수 스님이 만든 고양 원각사 목조지장보살좌상(1650년) 사진제공=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와 이홍식
성수 스님이 만든 고양 원각사 목조지장보살좌상(1650년) 사진제공=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와 이홍식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후 30여 명의 조각승들이 1600년부터 1630년대까지 명산대찰(名山大刹)의 중심 전각인 대웅전이나 극락보전, 고승대덕(高僧大德)이 거주한 암자에 주도적으로 불상을 조성했다. 이후 배출된 수십 명의 제자들이 1640년부터 1660년대까지 명산대찰의 부속 전각인 명부전(冥府殿)이나 나한전(羅漢殿, 靈山殿),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의 대웅전에 불상 제작을 주도했다. 

이들 가운데 성수(性修, 性守) 스님은 무염 스님의 계보를 계승하면서 미적 완성도가 높은 불상을 만든 조각승이다. 성수 스님은 고양 원각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바닥에 적힌 조성묵서(造成墨書)를 통해 주요 활동이 밝혀졌다. 

이 지장보살좌상은 1650년에 화주(化主) 덕인(德忍) 스님이 발원해 성수 스님과 경성(敬聖, 敬性) 스님이 제작했다. 또한 이 조각승들은 1650년 6월에 덕인 스님이 발원한 무주 관음사 목조관음보살상(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을 같이 조성했다. 따라서 고양 원각사 목조지장보살좌상과 무주 관음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화주와 조각승이 같아 동시에 제작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덕인(德忍) 스님은 1649년 대둔산 묘련암 목조관음보살좌상(남양주 불암사 봉안, 보물), 1650년 고양 원각사 목조지장보살좌상과 무주 관음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안심사 목조비로자나불좌상(대전 비래사 봉안, 보물) 조성에도 화주(化主)로 참여했다. 덕인 스님은 남양주 불암사 봉안 보살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원컨대 내가 임종에 들거든, 모든 죄와 장애를 소멸해 주고 더불어 서방의 아미타부처님께 가기를 바랍니다. 금색 빛이 비치는 가운데 수기를 받고 장차 중생제도를 다하여 다함이 있는 허공이 다함 없기를 바라니 시방 여러 부처님께서 증명해 주기를 바란다”라고 쓴 것을 보면, 대둔사 묘련암과 관련 있는 스님으로 보인다.

조각승 성수 스님과 관련된 가장 빠른 기록은 1633년에 제작된 고창 선운사 대웅보전 목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이다. 이 불상은 무염(無染) 스님과 천언(天彦) 스님 등 총 12명이 제작한 대형 불상으로, 화원 중에 성수 스님이 네 번째 언급된 것을 보면 1630년대 불상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년 후인 1635년에 영광 불갑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도 무염 스님을 도와 조성에 참여했다. 

무주 관음사 목조관음보살좌상(1650년). 사진제공=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와 이홍식
무주 관음사 목조관음보살좌상(1650년). 사진제공=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와 이홍식

성수 스님은 1649년에 무염 스님이 제작한 남양주 불암사 목조관음보살좌상(대둔사 묘련암 조성)에 부화승으로 참여하고, 1650년에 수화승으로 무주 관음사 목조관음보살좌상과 고양 원각사 목조지장보살좌상을 만든 후, 1654년 수화승 해심 스님이 고창 문수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과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보물) 제작에 부화승으로 참여했다. 

따라서 성수 스님은 1600년 전후에 태어나 1610년대 후반에서 1620년대까지 불상 제작에 보조 화승으로 참여한 후, 1630년대 전반 조각승 무염이 만든 불상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1640년대 중반 불상 제작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스님은 수화승으로 1650년부터 1654년까지 여러 사찰에 봉안할 불상을 조성했다. 성수 스님의 조각승 계보는 행사 스님(1606~1648, 이하 활동 시기)→무염 스님(1633~1656)→해심 스님(1633~1654)성수 스님(1633~1654)→경성 스님(1648~1653)으로 이어진다. 무염 스님의 제자인 성수 스님과 해심 스님은 활동 시기와 집단 내 위상 등을 고려하면 사제지간(師弟之間)이 아니라 선후배로 보인다.
 

1650년경 성수 스님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부여 정각사 목조보살좌상. 사진은 2007년 촬영본.
1650년경 성수 스님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부여 정각사 목조보살좌상. 사진은 2007년 촬영본.

고양 원각사 목조지장보살좌상은 높이 45㎝의 중소형 불상으로, 민머리의 성문비구형(聲聞比丘形)이다. 지장보살은 머리와 상반신을 앞으로 조금 내밀고, 불신(佛身)과 따로 제작된 양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지장보살은 신체에서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고, 머리에 비해 어깨가 좁지만 다부진 느낌을 주며, 무릎 높이가 낮고 폭이 넓어 안정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대의는 목 뒷부분이 살짝 접혀 있고, 어깨에는 대의를 걸친 조선후기 전형적인 착의법을 따르고 있다. 

다만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온 대의자락이 목에서 허리로 반원을 그리며 흘러내리지 않은 것은 다른 조각승이 만든 불상과 차이가 있다. 그리고 한 벌의 대의를 더 걸쳐 보살상 뒤쪽에 왼쪽 어깨에 앞에서 넘어온 대의자락이 엉덩이까지 길게 흘러내리고, 그 안쪽에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허리까지 대의자락이 대각선으로 늘어진 점은 17세기 전반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요소이다. 

조각승 성수 스님이 만든 불상은 대의가 양 어깨를 덮은 통견식과 대의 안쪽에 부견의를 입은 변형편단우견식이 남아 있고, 통견식의 대의 처리는 조선후기 제작된 불상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착의법이다. 조각승 성수 스님이 만든 불상의 인상이나 착의법 등이 유사한 불상은 부여 정각사 목조보살좌상과 제주 본태박물관 목조여래좌상이 있다. 

▶한줄 요약 
성수 스님은 무염 스님의 계보를 계승하면서 미적 완성도가 높은 불상을 만든 조각승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현대불교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