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 불상 조성한 17세기 전반 대표 조각승
현진 스님·응원 스님 계보와 공동 작업도
구례 화엄사·완주 송광사 대형 불상 조성
영색·법현·현윤·원택 스님이 계보 이어
임진왜란 이후 17세기 전반 명산대찰인 보은 법주사, 구례 화엄사, 완주 송광사 등의 중심 전각에 나무와 흙으로 초대형 불상을 만든 대표적인 조각승은 청헌 스님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청헌 스님이 젊은 시절 보조화승으로 작업했을 당시의 문헌이 발견되지 않아, 스승이나 선배가 누구였는지 알 수 없다. 일부 연구자는 청헌 스님과 청허 스님을 같은 인물로 여기지만 아직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각승 청헌 스님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1626년 음력 3월부터 7월 말까지 보은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을 조성할 당시의 것이다. 이 시기 청헌 스님은 부화승으로 참여했으며, 당대 최고의 조각승 현진 스님의 계보에 속한 조각승들과 함께 조성했다.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장대한 체구에 두꺼운 옷 주름의 표현 등이 임진왜란 후 새로운 조형을 보여 주는 기념비적 유물이다.
그 후 청헌 스님은 수화승으로 1627년 전주 불정사 대웅보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도 유형문화유산)을 만들고, 1634년 음력 3월부터 1635년 음력 8월까지 구례 지리산 화엄사 대웅전에 봉안된 대좌를 포함해 총 3m가 넘는 대형불인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국보)을 응원인균 스님 계보와 공동으로 제작했다.
삼신불 가운데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싼 지권인(智拳印)의 본존불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우협시불인 석가불(釋迦佛)은 청헌 스님이, 상품중생인(上品中生印)을 취한 좌협시불인 노사나불(盧舍那佛)은 응원인균 스님이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당시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을 역임한 벽암각성(碧巖覺性, 1575~1660) 스님의 주관 아래 선조의 여덟 번째 아들 의창군을 비롯한 다수의 왕실 상궁 등 1,320명이 시주자로 참여했다.
청헌 스님은 1639년 음력 8월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四)보살상(보물)을 승일(勝日) 스님, 영색(英賾) 스님, 현윤(賢) 스님, 응혜(應惠) 스님, 희장(希藏) 스님 등과 제작하고, 1641년 음력 6월 5m 크기의 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을 법령(法靈) 스님, 현윤(賢允) 스님, 혜희(惠熙) 스님 등과 조성하였다.
또한 청헌 스님은 1643년 음력 5월 진주 응석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을, 1647년 음력 2월부터 5월까지 영주 영전사 목조보살좌상과 여수 달마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제작하였다.
이와 같은 문헌을 중심으로 청헌 스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스님은 1580년대 태어나 수련기와 보조화승을 거친 후, 1626년 조각승 현진 스님이 제작한 보은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을 부화승으로 협업했다. 1627년 수화승으로 전주 불정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시작으로 1647년 영주 영전사 목조보살좌상과 여수 달마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을 같이 만들었다.
청헌 스님의 조각승 계보는 청헌(淸憲·淸軒, 이하 활동 시기 1626~1647)→영색(英賾, 1626~1649)→법현(法玄, 1634~1643)현윤(賢允·賢, 1637~1653)원택(元澤, 1634~ 1648)으로 이어져 17세기 전반과 중반을 대표한다.
영주 영전사 목조보살좌상과 여수 달마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1647년에 제작한 청헌 스님의 마지막 작품으로 최근 조사에서 밝혀졌다. 두 불상은 제작 연도가 같아 나한전에 봉안한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의 석가와 미륵보살임을 알 수 있다. 이 두 불상이 원래 조성된 사찰은 알 수 없지만, 조성 이후에 현재 사찰로 각각 이운됐다.
영전사 목조보살좌상은 높이 84.0㎝의 중형 보살상으로, 몸체에 무릎을 붙인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의 접목식(接木式)을 따르고 있다. 보살상은 천의(天衣)를 입고, 귀와 손목에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다. 이러한 장신구들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보살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얼굴은 네모지고 가늘고 긴 눈은 내리뜨고 있다. 녹색 양 눈썹에서 코끝까지 ‘T’자 모양으로 날렵하게 조각한 코는 오뚝하고, 콧방울은 짧은 음각선으로 표현했다. 인중은 짧고, 입가는 위로 살짝 올라가 미소 짓고 있다.
보관에는 화염문, 구름문, 보상화문을 따로 조각하여 부착하고, 보관 본체에도 다양한 문양을 음각으로 새겼다. 보관의 좌우 측면에는 바람에 날리는 형태로 관대(冠帶)를 조각했다.
보살좌상의 보발(寶髮)은 머리 뒤쪽까지 빼곡하고, 양쪽 귀를 감싸며 늘어져 둥그렇게 땋아 세 가닥으로 나뉘어 양어깨에 흘러내리고 있다. 보살상이 양어깨에 걸친 천의는 길게 늘어져 오른 손목과 왼 손목을 감싸며 흘러내리고 있다.
하반신에는 군의(裙衣)를 착용했고, 군의를 고정하기 위해 명치 아래에 끈을 묶어 그 위를 연잎 모양으로 조각했으며, 하반신을 덮은 군의 자락은 크게 다섯 개의 주름이 접혀 있다.
청헌 스님이 만든 불상은 얼굴에서 풍기는 온화한 인상이나 착의법 및 수인(手印) 등의 표현에서 공통된 특징을 보이며, 이러한 양식은 그의 제자인 현윤 스님 등에게 계승됐다.
▶한줄 요약
청헌 스님은 17세기 전반 구례 화엄사, 완주 송광사에 국보급 초대형 불상을 만든 조각승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