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 등운 스님, 8월 4일 프로젝트 공개
그린피스·환경연합 등 전문가팀 꾸려
야생동식물 자연생태 변화 추적조사
“산림 정책 패러다임 전환 계기” 기대
지난 3월 경북 지역에 발생한 대형 산불로 전각과 사찰림 약 98%를 잃은 의성 고운사가 사찰림의 자연복원을 결정했다. 광범위한 사찰림의 자연복원은 첫 사례로, 국내 산림 관리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고운사는 8월 4일 경내에서 불교환경연대,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안동환경운동연합, 서울환경연합 등과 ‘고운사 사찰림 자연복원 프로젝트’에 대한 브리핑을 갖고 자연복원을 위한 본격적인 현지 생태계 조사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자연회복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한다는 계획이다.
고운사는 대형 산불로 사찰림 전체 면적 248.87ha 중 약 97.61%인 242.92ha를 잃었다. 이는 산불 피해를 입은 국내 사찰림 중 가장 큰 규모다. 고운사 사찰림은 보호지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생태적 가치가 높아 안타까움을 더한 가운데,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은 산불 피해지를 기존 방식인 인공복원이 아닌 자연복원을 결정한 바 있다.
이번 고운사의 결정은 사찰림 자연복원을 공식 선언한 최초 사례로 나무줄기까지 피해인 수관화를 입은 광범위한 산림 지역에서 실시되는 최초의 본격적 복원이다. 현지 생태계 조사는 이규송 강릉원주대 생물학과 교수 연구팀과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연구팀이 맡았다. 이규송 연구팀은 산불 피해 강도 분석, 현존식생도 작성, 토양 침식 평가 등 식생 회복탄력성 평가를, 한상훈 연구팀은 카메라 트랩과 초음파 장비를 활용한 중대형 포유류 및 박쥐류 조사 등 야생동물 서식지 조사를 담당한다.
이규송 교수는 이날 브리핑에서 “산불피해지역 복구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이 식생의 회복탄력성 평가와 토양침식을 줄일 수 있는 토양안정성 평가”라고 설명했다. 한상훈 박사는 야생동물 조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반달가슴곰, 노루, 멧돼지 같은 대평 포유류부터 흰럽적다리붉은쥐 등 소형 포유류와 어치 등 조류가 도토리 같은 식물 종자를 널리 퍼뜨리는 숲의 관리자”라며 “야생 동물은 숲 회복을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고 전했다.
이날 브리핑 참가자들은 이번 자연복원 프로젝트가 국내 산림 관리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최태형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인공복원으로는 반복되는 기후재난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음이 명확해지고 있다”면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자연 회복이 가능할 뿐 아니라 더 효과적임음 검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 그간 산림청은 산불로 피해를 입은 나무를 제거하고 새 나무를 식재하는 방식의 인공복원을 반복해왔다. 인공복원 과정에서 산불에 취약한 침엽수를 심는다는 점과, 기준 숲을 베어 내 산사태 등의 추가 피해가 발생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에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산림 관리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것을 지시하며 산림산업의 전면적 재검토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날 브리핑 참가자들은 고운사 사찰림을 둘러보며 사찰림이 산불 피해 이후 약 4개월간 이미 자연복원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음을 공개하기도 했다. 침엽수는 대부분 소실됐지만 활엽수 대부분은 생존해 빠르게 새싹을 틔웠으며 다양한 야생 조류도 숲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것. 실제 현장 주사에서 너구리와 박쥐, 등줄뒤 등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전문위원은 “이미 현장에서는 자연복원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 꾸준히 추적관찰, 의미 있는 조사 결과가 나올 수 있길 기대한다”면서 “환경단체와 민간 전문가, 고운사가 협력해 추진하는 첫 자연복원 프로젝트가 산불 피해를 입은 다른 사찰림 복구 계획에도 참고할만한 의미있는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의 중간보고서는 오는 9월 중, 최종 보고서는 올해 말 발표될 예정이다. 연대체는 이번 조사 결과를 국내 산림 관리 정책의 새로운 지침 마련을 위한 근거 자료로 활용하고 2026년 초부터는 이를 토대로 정책 제안과 자연복원 유도 활동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은 “과거의 모습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현재 조건에서 가장 지혜로운 방식으로 숲을 재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소나무 숲의 옛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자연이 선택하는 새로운 숲의 모습을 기대하겠다”고 자연복원의 의미를 밝혔다.
이날 브리핑 후에는 산불로 희생된 모든 생명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추모의식도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발원문에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이웃들과 가축들, 뭇생명들을 위해 마음 모아 기도하며 다시는 비참한 일이 일어나기 않길, 모든 영가들이 원망하지 않고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발원했다.
임은호 기자 imeunho@hyunb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