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2016)
도깨비 저승사자 등 불멸의 존재 꿈꿔
불교에서 세상 첫 법칙으로 ‘무상’ 꼽아
변화 아는 삶이 변화에 걸리지 않는 삶
저녁 고갯길을 넘어가는 어떤 사람 앞에 장정이 한 명 나타나 씨름을 하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씨름을 하게 됐는데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다. 고개를 넘기 어려워진 이 사람은 꾀를 내어 “어, 날이 새는구나!”라고 말하고 장정이 움찔하는 틈을 타 얼른 쓰러트렸다. 그렇게 씨름에서 이기고는 장정이 정신을 차리기 전 근처에 있는 나무에 꽁꽁 묶어 두고 서둘러 고갯길을 지나갔다. 다음날 해가 뜨자마자 고갯길 나무 밑으로 가 보았더니 장정은 없고 피 묻은 빗자루만 있었다.
이것이 가장 한국적인 도깨비 이야기다. 도깨비라고 하면 뿔이 있는 모습에 산적처럼 거적을 두르고 방망이를 들고 다니며 “금 나와라, 뚝딱!” 하는 존재로 많이 알려졌지만, 지금 보는 것처럼 실은 덩치 큰 장정의 모습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뿔 달린 도깨비는 일본 영향으로 왜곡됐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에서 롱코트를 입은 훤칠한 인물로 그려지는 도깨비는 민속을 잘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려의 무신 김신(배우 공유)은 변방의 외적을 물리치고 도성으로 돌아왔지만, 역적으로 몰려 부하들과 함께 목숨을 잃는다. 시신을 수습하지 말라는 왕명으로 검이 꽂힌 채 20년 동안 버려져 있던 자리에 생전에 김신을 모시던 하인이 손자와 함께 찾아와 이제부터는 손자가 모실 것이라며 눈물을 흘린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성. “너의 백성의 염원이 널 살리는구나. 허나, 홀로 불멸을 살며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아라. 오직 도깨비 신부만이 그 검을 뽑을 것이다. 검을 뽑으면 무(無)로 돌아가 평안하리라.” 그렇게 김신은 도깨비로 부활하여 938년을 살고 있다.
현대의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해 곧 숨이 끊어질 산모가 김신의 자비로 살아나고 그때 태어난 지은탁(배우 김고은)은 도깨비 신부의 운명을 가졌다. 그래서 죽은 이들을 볼 수 있고 삼신할머니나 저승사자도 볼 수 있다. 원래는 태어나지 못할 운명이었기 때문에 저승사자의 표현대로라면 ‘기타 누락자’가 되어 아홉수마다 저승사자를 피해 다녀야 하는 은탁. 엄마의 죽음으로 9살에 마주친 저승사자는 삼신할머니 덕에 피했지만 이제 19살이 된 은탁은 저승사자뿐만 아니라 도깨비까지 만난다.
한번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떤 존재이든지 유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우리는 종종 불멸의 존재를 꿈꾸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신격으로 표현되는 도깨비나 저승사자 같은 존재들이 대표적이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나 할리우드 영화 ‘슈퍼맨’처럼 외계에서 온 존재들이 불멸의 존재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불로장생을 꿈꾸는 종교도 있고, 중국의 어느 왕은 불로불사의 약을 구하려고 이역만리까지 신하를 보냈다고도 한다.
과연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도깨비 김신이나 저승사자처럼 현재의 모습 그대로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살아가는 모습을 바랄 테니 결국 한평생 늙지 않겠다는 말일 것이다. 청춘의 고개를 넘고 나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늙는다’라고 표현하지만, 훨씬 어린 나이일 때는 ‘자란다’는 말을 쓴다. 아기의 상태로는 아무런 일을 할 수 없으니, 온전한 사람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자라야 한다. 그런데 사실은 늙는다는 말이나 자란다는 말이나 본질은 같다.
영원히 살고자 하면 변화하지 않아야 한다.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늘 같은 형태를 유지하든지, 아니면 똑같은 모습으로 재생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몸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다. 세포들은 찰나마다 멸하고 생하는데, 재생의 속도는 점점 더디어 가니 노화의 속도도 빨라진다. 삶 자체가 변화라는 말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세상의 법칙 중의 첫 번째를 무상(無常)으로 꼽는다. 무상하다는 말이 워낙 한탄스럽고 애통한 상황에 쓰이는 경우가 많아서 나쁜 어감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무상이라는 말은 단어 그대로 ‘항상함이 없다’ 즉 변화한다는 말일 뿐이다. 부유하게 살던 사람이 갑자기 힘들어져도 세상 무상한 일이지만 한없이 고생하던 사람이 넉넉하게 살게 되어도 무상한 일이다. 그러니 몸이 늙는다고 한탄한 일은 아니다. 그저 변화일 뿐이다.
그럼에도 천 년 가까이 살아온 경험과 인간관계로 엄청난 부를 누리고 사는 김신을 보며 그것이 바로 영원한 삶의 매력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김신은 자신의 재산을 현실에서 관리할 ‘김 서방’이 끊임없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그 시간 동안 모든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끊임없이 경험하며 겪는 괴로움이 있다. 끝없는 삶이 얼마나 외롭고 허망했으면 견디다 못해 스스로 칼을 뽑아 ‘무’로 돌아가려고까지 할까.
김신을 도깨비로 부활시킨 존재가 “홀로 불멸을 살며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라”고 한 것은 상이 아니라 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김신은 가슴에 꽂힌 칼을 뽑아 주어 ‘무’로 돌아가게 할 도깨비 신부를 긴긴 세월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태어나지 말라, 죽기 괴로우니. 죽지 말라, 태어나기 괴로우니.”라는 <삼국유사>의 유명한 구절이 떠오른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노병사(老病死)의 변화를 겪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이런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사는 것이 변화에 걸리지 않는 삶이다. 더 나아가 그 변화를 벗어나는 것이 진정으로 영원한 삶을 사는 일이다.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는 힘든 삶을 살고 있을 때 누군가 힘이 되어 주는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신적인 존재임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29세가 된 지은탁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선의가 바로 그 사람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 드라마는 도깨비와 저승사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바꾸는 큰 역할을 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도깨비나 저승사자를 뿔 달린 괴물이나 검은 도포에 검은 갓을 쓴 존재가 아니라, 큰 검을 차고 밤길을 걸어오는 배우 공유와 중절모에 펠트 코트를 입은 배우 이동욱을 떠올린다.
사족 하나, ‘도깨비’라는 말을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세종 때 나온 <석보상절(釋譜詳節)>(1447)이 처음이라고 하는데 불교의 천신인 ‘나찰’이나 ‘야차’를 번역한 말이라고 한다. 도깨비는 배우 공유로 변신했는데, 벽화에서 만나는 우리의 나찰이나 야차는 언제쯤 친근하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표현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