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호텔 델루나’(2019)
전설 속 신 등장·죽음 매개 이야기 담겨
2019년판 ‘전설의 고향’ 리메이크인 셈
시대·근기 따른 불교 진리 리메이크 기대
우리의 신화와 전설을 잘 담아낸 드라마로 ‘전설의 고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현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후세계를 거쳐 다음 생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그 사후세계로 이끌어 주는 저승사자가 숱하게 등장했다.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타난 처녀 귀신들의 한을 풀고자 하는 염원이 있었고,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구미호의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그렇게 ‘전설의 고향’은 우리 문화 속에 살고 있던 캐릭터를 TV에 구현해낸 훌륭한 SF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가 구현하는 이야기는 〈삼국유사〉나 〈조선왕조실록〉이나 〈연려실기술〉 같은 고전에 실린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드라마로 고전을 리메이크한 셈이다. 리메이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전의 것을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상황에 맞게 얼마나 설정을 제대로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호텔 델루나’는 무척 흥미롭다. 다른 이의 목숨을 빼앗은 벌로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죽지도 못하고 나무에 영혼이 묶여 사는 주인공. 마냥 애잔하기만 할 것 같은 그는 온갖 사치를 즐기면서 화려하게 사는 호텔 사장님이다. 더욱이 이제 막 호텔에 도착한 신규 고객에게서 이승에 남겨둔 재산을 서비스 요금으로 뜯어내는 능수능란한 인물이기도 하다. ‘찬란하고 쓸쓸하신 도깨비’가 그랬듯이 이 드라마는 전설 속에나 있을 법한 캐릭터를 이 시대에 맞는 개성 넘치는 인물로 훌륭하게 리메이크했다.
1300여 년 전 고구려 유민 출신의 무사 장만월(배우 이지은)은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유품을 관에 담아 끌고 다니며, 죽은 이들의 영혼을 쉬게 한다는 객잔을 찾아다니다가 마고신(배우 서이숙)을 만난다. 마고신이 건네준 월령주를 마시는 순간, 만월의 검인 만월검이 월령수에 꽂혀 흡수되면서 만월은 불로불사의 존재가 된다. 그와 동시에 달의 객잔의 주인으로서 죽은 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해야 하는 벌이 시작된다.
한편 달의 객잔은 13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다가 지금은 호텔 델루나가 되었다. 이곳은 죽은 이들을 위한 호텔이지만 현실 세계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살아있는 사람이 지배인 역할을 해줘야 한다. 평생 만월을 위해 일한 지배인의 수명이 다해가는 상황에서 바통을 이어받은 새 지배인은 하버드대학교의 MBA를 수료한 초엘리트 호텔리어 구찬성(배우 여진구). 이들 외에 500년째 일하고 있는 바텐더 김선비(배우 신정근), 200년째인 객실장 최서희(배우 배해선), 70년째인 프론트맨 지현중(배우 표지훈) 등이 호텔을 찾아온 다양한 죽은 이들을 맞이하여 사신(배우 강홍석)이 저승으로 인도하도록 돕는다.
만월과 찬성은 갖가지 사연으로 호텔을 찾아온 이들의 억울함이나 한을 풀어주고, 때로 마고신이 나서서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살아있는 자에게 응당의 처벌을 내리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호텔 델루나는 ‘전설의 고향’의 2019년판 리메이크라 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호텔 델루나이기 때문에 드라마에는 그동안 잘 모르고 있던 ‘마고신’부터 너무도 익숙한 ‘사신’, 그러니까 ‘저승사자’까지 전설 속의 다양한 신들이 등장하고, 죽음을 매개로 신들을 만나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대 배경은 달라도 ‘전설의 고향’에서 본 듯한 인물의 상황과 에피소드들, 전하려는 주제도 분명하다. 매회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생에 제대로 못 살면 세세생생을 거쳐 그 과보를 반드시 받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달과 관련한 유명한 게송이 있다.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보신(報身)을 달에 비유한 ‘보신송’이다.
달이 은하수를 오가면서 점점 둥글어지니
(月磨銀漢轉成圓)
하이얀 달빛 대천세계를 밝혀 주네
(素面舒光照大千)
성성이가 팔을 이어 부질없이 그림자 잡으려 하나(連臂山山空捉影)
둥근 달은 본래 청천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네.
(孤輪本不落靑天)
초승달을 매일 은하수에 갈아서 희게 만드는 일이 수행이고, 수행이 완성되어 보름달이 되면 둥근 달빛이 세상을 환히 비친다는 내용이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면 그 수행의 공덕을 삼천대천세계 모두가 누린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강에 비친 달을 본 성성이는 그곳에 달이 있는 줄 알고 팔에 팔을 이어 달을 건지려 한다. 하지만 달은 강에 내려온 적이 없이 항상 하늘에 있으니 어쩔 것인가.
사실 달은 강에 내려온 적도 없지만 둥글어지거나 검어진 적도 없다. 우리 눈에는 초승달, 반달, 보름달 등으로 보일 뿐, 달의 본래 모습은 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게송은 보름달로 나타난 보신이나 강에 비친 화신(化身), 변하지 않는 애초의 달인 법신(法身)이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임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장만월이 이끄는 달 객잔의 근본적인 역할은 죽은 이들이 쉬다가 편안하게 저승길로 나서게 하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만월당에서 만월관으로, 또 호텔 델루나까지 이름과 모습을 바꿀 뿐이다. 달의 속성 또한 그렇다. 매일매일 우리가 보는 달의 모습이 바뀔 뿐 애초의 달은 변한 적이 없다. 불교의 진리 역시 변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지만 시대와 사람의 근기에 맞게 팔만사천 가지 불교로 ‘리메이크’할 수 있어야 한다.
장만월은 1300년을 월령수에 묶여 있었으니 원효 스님과 의상 스님이 활약하시던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지나는 길에 만월(滿月)이를 만나셨다면 ‘보신송’ 한 구절 전해주셨을 텐데. 그랬다면 만월도 훨씬 일찍 자신을 묶어두었던 속박에서 벗어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