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이번 생도 잘 부탁해’(2023)
윤회와 환생 소재로 한 드라마
육신·정신 뒤섞인 상태가 정체성
윤회한들 각각 삶이 내 삶 아니야
〈옹고집전〉이란 고전소설이 있다.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마음 씀씀이가 인색하고 어머니에게 효도할 줄 모르는 옹고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도술에 능통한 도사가 짚더미로 만든 가짜 옹고집에게 밀린 진짜 옹고집이 집에서 쫓겨나 고생하다가 잘못을 참회하고 새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못된 옹고집이 가족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대목이 무척 통쾌한데, 정작 저 도술을 부린 이가 스님이라는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옹고집전〉의 하이라이트는 짚더미로 만든 가짜 옹고집과 진짜 옹고집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인지를 가리는 대목이다. 누가 진짜인지 판단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사람과 나만 아는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다. 겉모습을 똑같이 만들 수 있다 해도 ‘기억’까지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의 주인공 반지음(배우 신혜선)은 19회차 인생을 살고 있다. 대체로 전생의 기억은 여덟 살에서 열두 살 사이에 갑자기 떠오르는 편이다.
17회차의 삶에서 반지음은 1956년생 서커스단 단원 김중호(배우 이재균)로 살다가 어린 조카 애경을 남기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18회차에는 부유한 집에서 1986년생 윤주원(배우 김시아)으로 태어났는데, 세 살 어린 엄마 친구의 아들 문서하와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로 열두 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19회차 인생을 맞아서 전생의 기억이 떠오르자마자 서하가 살아 있는지가 제일 궁금한 지음. 무작정 서하의 집을 찾아가 서하가 무사함을 확인하고는 ‘윤주원의 기억을 가진 반지음’으로서 문서하(배우 안보현)에게 서서히 다가간다.
18회차 인생에서는 서하가 주원보다 세 살 어린 동생이었지만 19회차 인생에서는 지음이 서하보다 한참 어릴 수밖에 없다. 이번 생에서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력에 시달리던 어린 지음은 집을 도망쳐 나와 17회차 인생의 조카 애경(배우 차청화)에게 의지하며 인생을 ‘리셋’한다. 그리고는 전생의 능력치를 총동원해 ‘스타퀸’ 만능 소녀로 유명세를 얻고 대학 조기 입학과 졸업으로 MI모비티에 입사해 서하와 가까워지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그런데 어느덧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된 전전생의 조카 애경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지음의 모습이 마치 〈옹고집전〉의 하이라이트를 보는 듯하다. 지음은 자신이 중호의 환생임을 입증하기 위해 애경만 알고 있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열 살 남짓한 아이가 나타나 삼촌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애경은 자신의 기억을 직접 본 것처럼 말하는 아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전생의 동생 초원(배우 하윤경)에게 자신이 전생의 언니였음을 알릴 때도 마찬가지이다. 초원과 주원 둘만이 알고 있는 기억을 맞춰봄으로써 초원은 지음이 언니 주원의 환생임을 받아들인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나’를 드러내는 것이 겉모습인 육신이 아니라 영혼 또는 정신이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불교에서 사람을 설명하는 용어는 오온(五蘊)이다. 사람은 누구나 물질적인 부분[色], 감각 부분[受], 연상(聯想) 부분[想], 의지 부분[行], 인식 부분[識]의 다섯 가지 덩어리로 되어 있는데, 이 다섯 가지 덩어리를 굳이 나누자면 물질적인 부분, 즉 육신인 색(色)과 정신적인 부분인 수상행식(受想行識)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을 육신과 정신으로 구분해서 설명하는 방식이 워낙 일반적이기 때문에 이 오온이라는 설명도 비슷하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온의 핵심은 ‘화합(和合)’이다. 다섯 가지 덩어리가 그저 찰흙 덩어리처럼 뭉쳐 있는 것이 아니라, 설탕을 물에 녹인 것처럼 서로 완전히 섞여 낱낱을 구별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육신과 정신이 정확하게 구별되어 어느 한쪽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뒤섞인 그 상태 그대로가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말이다.
반지음이 전생을 기억하는 이유는 첫 번째 생과 관련이 있다. 지음의 첫 번째 생은 신물(神物)인 무령(武靈)의 매듭이 될 천을 만드는 ‘수’였다. 수는 하나뿐인 혈육이자 몸이 약한 언니 ‘설’을 살리기 위해 신당의 무령을 훔쳐 도망갈 계획을 꾸몄지만, 신관 ‘천운’에게 들켜 그만 ‘설’이 목숨을 잃고 만다. ‘수’까지 죽이려는 ‘천운’을 ‘한야’가 막아 간신히 목숨을 건진 ‘수’는 결국 ‘천운’을 상대로 언니의 복수를 시도하다 ‘천운’의 군사들에게 첫 번째 생을 마감한다. 이때 “백년이고 천년이고 잊지 않고 다시 태어나 반드시 복수할 것”이라는 ‘수’의 다짐 때문에 천 년 동안 전생을 기억하는 삶을 이어온 것이다.
반지음의 첫 번째 생에서 만났던 인물들은 마지막 19회차에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외모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언니인 ‘설’은 17회차의 동생 초원의 모습으로, ‘한야’는 문서하의 모습으로, 지음이 복수를 다짐했던 ‘천운’은 애경식당 아르바이트생 민기(배우 이채민)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식이다.
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는 윤회와 환생을 소재로 한 흥미로운 드라마이지만, 한 가지 의문을 던진다. 내가 열아홉 번을 윤회한들 그 각각의 삶이 과연 나의 삶일까? 드라마처럼 아무리 기억이 유지된다고 해도 이름이 다르고 외모가 다르며 경험치가 다르니 같은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쉽게 내가 윤회한다고 말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윤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윤회는 있지만 윤회하는 자는 없다고 한다. 끊임없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 변화 자체가 바로 윤회이다.
육신과 정신을 이야기하는 자리이니 한 가지만 더. ‘심신미약’이라는 법률용어가 있다. 이때 심신은 몸과 마음의 ‘심신(心身)’이 아니라 정신상태인 ‘심신(心神)’을 말한다. 한마디로 정신에 문제가 생겨 어떤 일을 판단하거나 의사 결정하기 어려운 상태라면 행동을 책임질 능력이 떨어진다고 보고 처벌을 가볍게 한다는 것이다. 행위한 사람의 주인인 정신이 정상이 아니므로 그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셈이다.
하지만 불교의 오온의 시선으로 보면 온전한 정신의 상태나 온전하지 않은 정신의 상태나 모두 나를 이루고 있는 다섯 가지 덩어리가 화합한 상태이기 때문에 어느 경우에서든 내 행동은 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때는 술에 취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핑계가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술을 마시고 운전하면 반드시 처벌하면서, 술에 취했다고 범죄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