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인 상실감 ‘마음케어’…반려동물 ‘왕생 기원’
“사랑하는 이 잃은 슬픈 마음 읽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우리 OO이가 조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49재 어떻게 하는 거죠 스님?”
새벽 2시 반, 고요한 산사의 정적을 깬 전화기 너머로 한 여성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 세상을 떠난 반려묘가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는 마음에 시간도 확인하지 않은 채 무작정 전화부터 한 것. 스님은 반려동물 49재 절차를 차분히 설명했다. 전화기 너머 여성이 현재 겪고 있을 상실의 큰 슬픔을 다독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국 최초 반려동물 위한 ‘축생법당’
반려동물의 죽음을 알리는 새벽 전화는 경북 영천 천룡정사 주지 지덕 스님에게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천룡정사에는 전국 어디에도 없는 법당이 있기 때문. 생을 마감한 반려동물의 명복을 비는 법당, 바로 ‘축생법당’이다. ‘축생법당’ 내외부는 여느 법당과 다르지 않다. 전통 전각 양식의 법당에 들어가 보면 누군가의 명복을 비는 촛불과 위패, 불 밝혀진 영가등, 한쪽 벽면을 채운 탱화가 있다. 이곳이 ‘축생법당’ 임을 단숨에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영정 사진에 있다. 사람이 아닌 개와 고양이 등 동물들 사진이다. 사진 밑 영단에는 다양한 동물 사료와 채소들이 올려져 있다.
천룡정사 주지 지덕 스님은 2019년 5월, 전국 최초로 경내에 ‘축생법당’을 조성했다. 주인 곁을 떠난 반려동물의 명복을 전문으로 비는 이 법당에서 지난 5년간 49재를 지낸 동물들이 100여 마리에 달한다. 지덕 스님은 “기존 법당에서 반려동물 천도재를 지내니 거부반응을 보이는 신도가 더러 있어 어려운 살림을 쪼개 ‘축생법당’을 마련했다”면서 “반려동물 천도재를 통해 일체의 생명은 평등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람과 같은 절차…2시간 내내 울음바다
‘축생법당’에서의 반려동물 49재는 사람의 49재와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영혼을 불러내 영단에 모시는 시련(侍輦)에 이어 영가에게 앞으로 진행할 일을 부처님 법에 따라 올바르고 경건하게 치르겠다고 약속하는 대령(對靈)이 진행된다. 영가를 목욕시키며 업장을 씻겨주는 관욕(灌浴) 후 영가와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린다. 영혼이 음식을 먹으면 명복을 빌어주고 위패를 모신 영단에 세 번 절한다. 49재에 함께한 반려인들과 발원문도 낭송한다. 발원문에는 금생의 인연에 감사함을 표하고 내생에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모든 의식이 끝나면 반려동물이 사용했던 다양한 물품을 용선에 실어 불태운다. 모든 의식은 2시간쯤 소요된다.
지덕 스님은 “의식 내내 이어지는 울음소리도 사람의 49재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같고 다음 세상에 더 좋은 세상에서 태어나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도 매한가지라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다양한 사연에 뭉클…‘마음케어’ 돕는 법문도
지덕 스님은 지난 5년간 다양한 사연을 접했다고 말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한 가족은 왕복 8시간이 걸림에도 7주 동안 모든 재에 참석했다. 오직 하나, 반려견의 왕생극락을 위해서다. 16년을 함께한 반려견을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려다가 49재를 알고 찾아온 학생도 있었다. 반려동물뿐만이 아니다. 젊은 시절 사냥했던 노루가 마음에 걸려 뒤늦게 법당을 찾은 70대 노인, 마을에 번진 전염병으로 소를 살처분하고 다녀간 축사 주인, 시민의 안전을 위해 살다가 경찰견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찾은 경찰도 있다.
지덕 스님은 반려동물을 잃고 상실감(펫 로스 증후군)에 빠진 반려인들이 49재 후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법문에 신경을 쓴다. 한마디로 ‘마음케어’ 시간이다.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인연법에 대해 차분히 설명한다. 다양한 사연에 성심껏 귀 기울여 주는 것에 이어 반려동물이 육도윤회를 벗고 천상환생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시간을 갖도록 돕는다.
“가족 같은 반려동물을 잃은 이들에게는 위로가 절실합니다. 세상 이치에 따라 반려동물을 보낼 수 있도록 마음 청소를 많이 하라고 조언합니다. 둥글게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발원하는 것은 덤이죠.”
사찰이 상처 치유 안식처되길
반려인 1500만명 시대, 지덕 스님은 불교계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가 강조했다. 반려동물도 불성을 지니고 윤회하는 중생으로 본다면 ‘축생법당’ 같은 법당을 따로 짓지 않더라도 반려동물을 기리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 같은 반려동물을 잃은 이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목탁치고 염불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치유 해줘야죠. 아픔은 제각기 다르기에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덕 스님은 “시대가 변한 만큼, 불교도 변화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펫 로스 증후군 치유 프로그램과 템플스테이 연계, 사찰 내 산책로 확보 등 반려동물과 반려인을 위한 불교계 역할은 이제 시대적 요청”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교계에서 독경하면 좋은 경전이나 불단에 올릴 음식 등 표준화된 반려동물 천도재 의식이나 의례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반려동물 49재는 포교의 한 방편
반려동물 49재가 포교의 한 방편이 될 수 있다고도 말한 지덕 스님은 “지금껏 천룡정사 반려동물 49재를 지낸 100여 명의 반려인 중 불자는 반수도 채 되지 않는다”면서 “많은 반려인들이 49재를 위해 사찰을 찾았다가 자연스럽게 불교를 알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휴머니즘을 넘어 모든 생명이 중시돼야 한다는 불교의 이상을 실현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반려동물을 추모하는 문화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며 “포교 외연 확장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