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DIGITAL4.0 BUDDHISM] 디지털 전환 시대와 한국 불교

韓불교, ‘데이터 댐’을 만들자    

사람 있는 곳에 佛法있는 것 당연
시대 맞춤 포교, 교육모델 시급해

디지털 데이터 수집 관리 등 필요
데이터 연계 통한 종책 수립 용이
한국불교만의 ‘데이터댐’ 만들어야

앨런 튜링과 50파운드
지난해 3월, 영국의 런던 중앙은행은 최고액권인 50파운드 지폐에 새겨질 새 인물을 공개했다. 기존 구권 지폐에는 앞면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18세기 증기기관을 발명해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제임스 와트가 새겨져 있었다. 신권의 새 주인공으로 낙점된 사람은 바로 ‘앨런 튜링’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다고 전해진다. 어째서 영국인들은 ‘앨런 튜링’을 자신들이 내세우고자 하는 인물로 선택했을까? 

앨런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난공불락으로 알려진 독일군 암호체계인 이른바 ‘에니그마’를 해독해 낸 인물이다. 당시 ‘에니그마’는 매일 바뀌었고, 문장을 무작위의 글자배열로 변환하면서, 무려 2200만 개의 암호 조합을 만들어 냈다. 앨런 튜링은 영국군 암호 해독반에 소속돼 독일군의 ‘에니그마’를 깨뜨리기 위한 ‘계산기를 만들어 낸다. 오늘날 컴퓨터의 효시이다. ‘튜링 머신’과 ‘튜링 테스트’라는 개념을 통해 인공지능 개발에 최초의 통찰을 제공했다. 한 마디로 인공지능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통해서도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결국 앨런 튜링이 개발한 암호해독기를 통해 독일군 암호체계를 해독해 냄으로써 연합군은 승리할 수 있었다. 훗날 역사가들은 앨런 튜링이 아니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이 2년은 더 계속됐을 것이라고 추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업적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삶은 불행했다. 동성애 혐의로 체포돼 유죄판결을 받고 화학적 거세를 받은 뒤, 1954년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아마도 이런 비극적인 삶 때문이었는지 그의 천재성과 탁월한 업적에 비해 그리 대중적인 찬사를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시절 인연이 도래한 것일까. 인류문명의 새로운 도약을 예고하는 최근 인공지능의 발전은 앨런 튜링을 다시금 우리 앞에 불러내고 있다. 산업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던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를 영국의 상징으로 내세웠듯이, 이제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의 핵심인 인공지능의 창시자, 앨런 튜링을 통해 자부심을 담아내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인류 문명사를 전환시킬 대변혁이 이미 진행되고 있고, 세계 각국은 이 변화에 대응하고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세계,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다
약 2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지구에 호모사피엔스가 생존해왔던 시간을 약 1m의 야구방망이로 환산한다면, 인류가 과학기술을 통한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기 시작한 시간은 방망이 끝 마지막 1mm 정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딥러닝 △빅데이터 △나노기술 △유전자가위 기술 △자율주행 자동차 △블록체인 △메타버스 △사물인터넷(IOT) △NFT 등의 기술이 바로 그렇다. 100년 동안에 이뤄질까 말까 한 기술혁신이 최근 2~3년 사이에 진행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부가 창출되고,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고 있다. 이 기술들은 낙후된 기존 시스템의 운용방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주저 없이 기존 질서를 폐기하고 새로운 가치와 시스템을 받아들인다. 이른바 ‘파괴적 혁신’이다. 

그 실례를 들자면, 인공지능은 딥러닝 기술을 통해서 인간의 개입 없이도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되면서 그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이 딥러닝에 동력이 되는 데이터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에 의해 대규모 수집·저장되고 있다. 특히 구글, 아마존, 텐센트, 카카오 등은 엄청난 양의 디지털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데이터가 곧 돈이고 권력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나노기술의 혁신은 유전공학과의 융합을 통해 의료분야나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크리스퍼’라고 불리우는 유전자가위 기술을 통해 인간이 노화와 질병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기대마저 갖게 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비롯한 그간의 연구들이 축적되면서 인간 DNA 등의 생체정보를 디지털 데이터화함으로써 가능해진 일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자율주행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면서, 현실 물리 세계의 도로 주행 정보들이 모두 디지털 데이터화 되고 저장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디지털 세계에서 데이터 처리를 관장하는 중앙 서버 없이도 모든 시스템 참여자들이 거래 장부를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은 데이터 처리 방식에 있어서 중앙 집중식이 아니라 분산식 데이터 처리를 통해 디지털 공간에서의 거래에 대한 신뢰를 효율적으로 확보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메타버스는 온라인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융합하는 디지털 기술이다. 5G로 대변되는 인터넷 전송 속도의 향상과 데이터 정보량의 급증, 컴퓨팅 능력이 좋아지면서 가능해진 기술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메타버스가 보급되면서 더불어 ‘디지털 휴먼’뿐만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토큰(Non-Fungible Token)’이라는 ‘NFT’도 디지털 자산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상의 첨단 기술을 관통하는 핵심 속성은 무엇일까. 바로 ‘디지털 데이터’다. 이전에는 전혀 디지털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분야조차도 이제 ‘복사와 붙여넣기’가 가능한 디지털 데이터화 되고 있다. 왜냐하면 디지털 온라인 시스템은 현실 세계로부터 더 많은 데이터가 공급돼야만 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딥러닝부터 메타버스, NFT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현실 세계의 사물들에 대한 정보를 디지털 세상으로 보내는 일종의 대규모 ‘파이프라인(Pipeline)’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새로운 디지털 온라인 세계가 만들어지면서, 현실 세계와 연결되고 융합한다.

디지털은 어디로 가는가?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전통 선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화두다. ‘모든 존재와 현상이 마음에서 비롯되는데, 그 모든 존재와 현상이 돌아가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이다. 디지털 시대의 물음으로 표현해 보자면 ‘모든 것은 디지털로 귀착되는데, 그 디지털은 어디로 가는가” 정도 되겠다. 그렇다면 이 모든 변화를 관통하는 속성은 무엇이고, 결국 그 낙처는 어디일까? 

시내와 하천, 강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듯이 이 모든 크고 작은 변화는 디지털이라는 바다로 모여들고 있다. 현실 세계를 디지털 정보로 변환한 데이터들이 흘러들어 마치 강물이 댐에 가두어지듯이 대규모로 저장된다. 이제 온라인 디지털 세상의 정보량과 현실 세계의 정보량이 비슷해지거나 오히려 디지털 세계의 정보량이 물리 세계의 정보량을 넘어서는 세상이다. 그럼 현실 세계를 디지털 코드로 모두 변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것은 또 다른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에서도 현실 세계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방식과 동일한 토대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두 세상이 서로 경계가 없어지고, 연결되고, 융합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화엄사상에서 말하는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상태이다. 결국 물리적 현실 세계와 동등한 디지털 세계가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이고, 사람들의 활동 영역과 인식영역 또한 확장됨을 의미한다.   

디지털 대항해 시대 속 반야용선
그렇다면 불교는 이 대전환기 속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앞서 강조했듯이 변화의 본질은 물리적 현실 세계의 디지털 데이터화를 통한 새로운 디지털 세계의 창조이며 현실 세계와의 연결과 융합이다. 불교가 왜 메타버스를 비롯한 온라인 디지털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에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머물면서 친구도 사귀고 공부하고 경제활동도 영위한다. 오히려 디지털 세계에 익숙한 이른바 MZ세대는 메타버스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다고 할 정도이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곳에 사람들의 번뇌가 있고 고통이 있다면, 불교는 손을 내밀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새 시대에 맞는 전법·포교전략은 물론 교육 모델 정립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디지털 데이터에 대한 수집·저장·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이 바로 데이터 댐 구축 사업이다. 실제 대규모 토목공사가 아니라 디지털 공간에서 구축하려는 가상의 댐이라고 할 수 있다. 데이터를 가두고 저장하여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한다는 구상이다. 각 사찰의 전법 포교 교육 현장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데이터를 그냥 소실되지 않도록 수집·저장·관리·연계할 수 있는 통합 시스템을 개발·유지·관리하는 것이다. 한국불교는 종단 차원 또는 개별 본사 단위별로라도 향후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 관리, 활용할 수 있는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여 운용할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한국불교 데이터 댐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불, 법회의 진행, 신도의 교육과 관리, 동참금 보시도 디지털 공간 속에서 용이하게 진행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준비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신도들의 특정 법회 선호도나 추이를 교구본사 단위별 또는 종단별로 데이터로 수집·관리·연계될 수 있다면, 당장 종책 수립이나 다음 해의 예산안 편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선 포교나 교육, 종무행정 현장에서 휘발성으로 사라지는 다양한 경험의 총량은 막대한 손실이라고 할 것이다. 디지털화된 경험의 기록은 데이터가 되어 불교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하고, 불교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한정된 공동체의 자원 속에서 최적의 준비를 통해 누수 없이 포교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두에서 소개한 영국의 새 50파운드 지폐 뒷면에는 앨런 튜링의 초상과 그의 서명, 그리고 그가 남긴 말이 다음과 깨알 같이 적혀 있다.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일의 맛보기에 불과하며 미래의 그림자일 뿐이다.” 

앨런 튜링은 70여 년이 지난 현재의 인공지능 딥러닝 시대를 예견했던 것 같다. 한국불교의 디지털 플랫폼 구축사업도 지금은 미미한 시작일 수 있지만, 다가오는 디지털 대항해 시대를 헤져나갈 반야용선(般若龍船)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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