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이 숨가쁘게 달려오다 잠시 걸음을 멈춘 곳이 운수산이다. 골이 깊고 높아 운수산의 봄은 더디게 온다. 온몸으로 봄을 꽃피우는 산에도 겨울의 생채기는 남아있다. 여기 저기 가로로 길게 누운 설해목이 보인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쓰러진 설해목을 보면서 눈처럼 작고 가벼운 허물도 켜켜이 쌓이면 해를 입힌다는 가르침을 온몸으로 말해준다.한산사를 품고 있는 운수산은 오랜 세월 운수납자가 깃들기를 기다렸다. 어쩌면 용성선원이 세워지기를, 월암 스님을 기다렸는지 모른다.문경 한산사의 용성선원장 불이 월암 스님을 찾아뵈었다. 먼저 한
국회의원 선거를 하루 앞둔 4월 9일 거조사(居祖寺)에는 꽃비가 내렸다. 부는 바람에 꽃잎들이 난분분 흩날리다가 마당에 내려앉았고, 마당에 쌓인 꽃잎들이 다시 바람에 몸을 맡기고 뒹굴었다. 거조사 마당에는 꽃잎으로 수놓은 만다라 문양(文樣)이 만들어졌다. 693년(효소왕 2) 원참조사가 창건한 거조사는 불조님(祖)이 주석하시는(居) 가람(寺)이어서 팔공산의 초목들도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리라. 필자는 국보 14호로 지정된 정면 7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柱心包式) 맞배지붕으로 지어진 영산전(靈山殿)에 들어가 부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서울을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과 들에는 햇살과 바람을 먹은 생명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피어나는 생명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도착한 전남 나주. 사실 이런저런 일로 여러 번 나주를 ‘스치듯’ 오가기는 했지만 길게 머물러 본 적은 드물다. 나주에 가면 꼭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심향사(尋香寺)다. 나주를 대표하는 사찰로 나주의 역사와 함께해 온 여러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두 번째는 심향사 주변의 학교들이다. 나주지역 고등학교 불교학생회의 ‘전설’을 너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가 노란 꽃을 무겁게 달고 있다. 경기도 양주 연화사는 초입에서 일주문까지 깔끔하게 잘 가꿔져 있어 마치 화원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양주 연화사 극락보전 앞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다보탑이 있다.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키고 있는 다보탑 위의 네 마리 사자상에는 널리 전법을 펴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있다.양주 불국산 연화사는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송암 혜승 대종사가 회주로 주석하고 있는 도량이다. 주석처에서 친견한 혜승 스님에게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올 겨울을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을 여쭸다. “아직 코로나 후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春分)에 불암산 불암사(佛巖寺)를 찾았다. 봄기운이 완연해서 불암사 경내의 수목(樹木)들에는 새싹이 돋고 있었다. 이제 머지않아 새싹은 자라서 꽃을 피울 것이다. 신록(新綠)이 돋아서 녹음(綠陰)이 우거지고, 단풍이 들어서 조락(凋落) 끝에 나목(裸木)이 되는 사계의 법칙을 관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해님의 얼굴(日面)이리라. 약속 시간에 맞춰 종무소를 찾으니 두산 일면 대종사가 필자를 반겼다. 일면 스님은 자신의 주석처로 필자를 안내했다. 주석처 앞에서 왼쪽을 올려다보니 기암(奇巖)이 서 있다. 아마
서울 성북의 강소(强小)사찰 전등사가 아침부터 분주하다. 약 넉 달 만에 열리는 법회에 불자들은 법당과 공양간 등에서 분주하게 손을 보태고 마음을 모았다. 동안거 시작 이후 기도법사스님과 동지, 정초기도 등 예정했던 정진을 빠뜨리지 않았지만 불자들에게 이날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바로 전등사 회주이자 조계종 원로의원 원산 동명 스님을 친견하는 날이기 때문이다.설악산 백담사 무문관(無門關)에서의 정진을 마치고 법상에 오른 동명 스님은 전과 다름없는 천진난만한 미소로 불자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췄다. “사방이 막힌 독방에서 ‘폐
눈이라도 한바탕 내릴 것 같은 날씨에 서울 자곡동에 위치한 탄허기념불교박물관을 찾았다. 탄허기념불교박물관은 도심에 있지만, 큰길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니 산중 사찰처럼 고요하다. 서울 금강선원장 혜거 대종사의 인터뷰는 탄허기념불교박물관에서 진행했다. 혜거 스님은 삼척 영은사에서 탄허 스님을 은사로 득도, 탄허 스님 회상에서 사교와 사집을 공부했다. 요즘 근황이 어떠신지 여쭈었더니, “건강이 좋지 않아 작년 12월 이후 외부 사람을 처음 만난다”고 하셨다. 현대불교신문 독자들을 위해 시간을 허락해주신 혜거 스님께 감사한 마음과 함께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여산 암도 대종사가 주석하는 마하무량사는 전남 담양에 소재해 있다. 마하무량사 인근에는 16만㎡의 대나무 숲이 펼쳐져 있는 죽녹원이 있다. 대나무는 사철 내내 푸르고 곧게 자라는 까닭에 사군자 중 하나로 칭송받아왔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지조를 지닌 까닭에 수행자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에 이르길, “푸른 대나무가 청초하고 무성하니 고아한 군자가 바로 거기 있다”고 했다. 암도 스님이 담양에 마하무량사를 창건한 뒤 주석하고 있는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의 부루나 존자로 칭송받고 있
해인총림 해인사가 한국불교의 종찰(宗刹)로 불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국난극복의 염원이 담긴 팔만대장경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엄정한 가풍이 살아 있는 선원(禪院)이 있어서이기도 하며 치열한 공부가 이어지는 강원(講院)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율원(律院)이다. 당당하게 총림(叢林)을 지키는 하나의 기둥으로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해인율원이다. 해인율원(海印律院)은 성철 스님과 함께 ‘봉암사 결사’를 주도했던 자운 스님의 원력으로 출발했다. 스님이 해인사에 ‘천화율원’을
폭설이다. 차창 밖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하얀 풍경만이 펼쳐진다. 월정사를 품은 오대산이 그려내는 설경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깊이 침잠하게 한다. 신라 자장 스님이 문수보살 성지를 찾아 7년이란 긴 세월을 주유한 끝에 낙점한 오대산. 오대산은 문수보살이 있어 1만 보살을 거느리고 항상 설법하는 성산(聖山)이다. 속진의 세계에서 성(聖)의 세계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천왕문을 들어서자 적광전과 동별당 서별당을 비롯한 전각들이 설법을 들려주는 듯하다. 한암 스님과 탄허 스님이 주석하며 1600년의 역사를 가진
경기도 남양주에 소재한 조계종 제25교구본사 봉선사는 교종(敎宗)의 종풍(宗風)과 선종(禪宗)의 선맥(禪脈)이 계승되고 있는 본사이다. 월초 화상(和尙)이 교종판사가 되고 나서 줄곧 주석하시면서 가람을 중수하고 후학 양성에 힘썼던 까닭에 봉선사에는 한국의 구마라집이라고 칭송 받는 운허 스님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강백들이 몰려들었다. 이러한 교종본찰의 전통은 한글대장경 318권을 완간한 역경보살 월운 대강백에게 계승돼 내려왔다. 그렇다고 해서 봉선사 대중이 선종의 청정한 수행가풍을 등한시한 것도 아니었다. 입산한 이래 여러 해 동안 줄
남도를 대표하는 두륜산은 영축산과 흡사하다. 두륜산 정상에 누워 계신 부처님과 영축산을 지키는 적멸보궁이 다르지 않다. 그 앞에만 서면 얼었던 마음이 풀리고 만다. 넓은 품으로 중생들의 마음을 쉬게 하는 것도 똑같다.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 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 될 것이다.”서산 대사의 말씀과 같이 두륜산과 대흥사는 한국불교의 법맥을 올곧게 이어가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서산 대사의 의발이 전수된 뒤 수많은 수행자를 배출한 명찰인 대흥사는 선교양종(禪敎兩宗)의 선해교림(禪海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