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마음·숨 건강히…그럼 ‘참사람’됩니다”

몸·마음·숨, 사람의 근본 요소
참사람, 참마음으로 참말하고 
참다운 행동을 실행하는 사람

몸 밖에 더 좋은 물건은 없다
‘四大色身’인 몸은 ‘마음의 집’
잘 먹고 마시고 호흡해야 건강

암도 대종사는… 1939년 전남 고창군에서 출생해 제18교구본사 백양사로 출가해 출가본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감찰국장, 교무국장, 교무부장, 총무부장, 교육부장, 총무원 부원장, 포교원장, 교육원장 등 주요 소임을 맡아 종단 안정화에 기여했다. 스님은 서른 살이 넘은 세납에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진학해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국대와 증앙승가대 강사로서 후학을 지도한 뒤 중앙승가대 교수를 역임했다. 특히 스님은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로서 전법교화를 위해 전국을 누비면서 설법에 앞장섰다. 조계종단의 행정의 기틀을 다진 공로를 인정받아 조계종 종정의 표창을 받았고, 경찰대학교 중앙경승으로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경찰대학교 학장 표창을 받았고, 1986년 대한민국 사회의 통합에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2011년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으며, 조계종 원로의원을 역임했다. 현재 전남 담양에 창건한 마하무량사에 주석하면서 수행하고 있다.  
암도 대종사는… 1939년 전남 고창군에서 출생해 제18교구본사 백양사로 출가해 출가본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감찰국장, 교무국장, 교무부장, 총무부장, 교육부장, 총무원 부원장, 포교원장, 교육원장 등 주요 소임을 맡아 종단 안정화에 기여했다. 스님은 서른 살이 넘은 세납에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진학해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국대와 증앙승가대 강사로서 후학을 지도한 뒤 중앙승가대 교수를 역임했다. 특히 스님은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로서 전법교화를 위해 전국을 누비면서 설법에 앞장섰다. 조계종단의 행정의 기틀을 다진 공로를 인정받아 조계종 종정의 표창을 받았고, 경찰대학교 중앙경승으로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경찰대학교 학장 표창을 받았고, 1986년 대한민국 사회의 통합에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2011년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으며, 조계종 원로의원을 역임했다. 현재 전남 담양에 창건한 마하무량사에 주석하면서 수행하고 있다.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여산 암도 대종사가 주석하는 마하무량사는 전남 담양에 소재해 있다. 마하무량사 인근에는 16만㎡의 대나무 숲이 펼쳐져 있는 죽녹원이 있다. 

대나무는 사철 내내 푸르고 곧게 자라는 까닭에 사군자 중 하나로 칭송받아왔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지조를 지닌 까닭에 수행자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시경(詩經)>에 이르길, “푸른 대나무가 청초하고 무성하니 고아한 군자가 바로 거기 있다”고 했다. 암도 스님이 담양에 마하무량사를 창건한 뒤 주석하고 있는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의 부루나 존자로 칭송받고 있으니, 암도 스님의 법문은 ‘낮에는 둘이었다가 밤에는 하나로 합쳐지는 신기한 대나무’를 베어서 만들었다는 ‘만파식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2월 26일 하오에 마하무량사에서 암도 스님을 친견했다. 경칩을 앞둔 절기여서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사찰의 배경이 되고 있는 대나무 숲을 흔들었다. 큰법당(대웅전)에 가서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고 내려오니 암도 스님이 경내에 나와 계셨다. 

“법당에는 들렀습니까?”
“네.”

스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잘했소. 절의 주인은 부처님이니 부처님께 가장 먼저 인사를 드려야지요.”

암도 스님을 따라서 들어간 주석처에는 서옹 스님의 붓글씨가 걸려 있었다. 일필휘지(一筆揮之)의 글귀는 ‘수처작주(隨處作主)’였다.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의미였다. 

“서옹 큰스님의 글씨네요. 임제 선사의 가르침을 쓰셨군요.” 필자의 말에 차를 우려내시던 암도 스님의 두 눈이 밝게 빛났다. 

“내가 백양사에 출가했을 때 서옹 스님께서 주지를 맡고 계셨죠. 그런데 만암 종정스님의 49재를 마치자마자 서옹 스님이 은해사로 갔습니다. 비구승단에 합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서옹 스님께서 계속 백양사에 주석하고 계셨다면 나는 서옹 스님의 상좌가 되었을 것입니다. 유 작가의 말을 듣고서 이심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내가 참사람에 대해 얘기를 하려고 했거든요. 서옹 스님께서 역설하신 참사람은 임제 선사의 무위진인(無位眞人)과 다르지 않습니다. 참사람은 인생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말을 마친 뒤 스님은 찻잔에 차를 따랐다. 스님과 필자는 말없이 차를 마셨다. 찻잔을 행주로 닦은 뒤 스님이 입을 뗐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욕심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나옹 선사의 게송을 들으면서 필자는 암도 스님의 법호인 ‘여산(如山)’을 떠올렸다. 스님의 법호는 ‘산을 따르겠다’ 내지는 ‘산과 같다’는 의미일 것이다.

“참사람이란 무엇입니까?” 암도 스님은 필자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참사람은 참마음으로 참말을 하고 참다운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근본 요소가 몸, 마음, 숨이라면, 사람의 기본 능력은 생각과 말과 행동입니다. 사람의 심성이 선(善)과 악(惡)과 무기(無記)로 표현되지만, 실은 그 본성은 청정하고 원만하고 중묘(衆妙)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대자연인 우주와 연결된 하나의 소우주입니다. 따라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등불입니다. 여기서 길의 근원은 천지도(天地道)이고, 진리의 근본은 연기법이며, 생명의 기본은 숨의 길입니다. 마음의 등불을 밝히면 지혜의 등불이 켜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참사람이 되려면 몸이 건강하고, 숨이 건실하고, 마음이 건전해야 합니다.” 

“건강한 몸이란 무엇입니까?”

“몸 밖에 더 좋은 물건은 없습니다(身外無物). 몸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 사대색신(四大色身)이므로 마음의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큰 집은 지붕도 없고 바닥도 없으며 기둥과 벽도 없는 무주공당(無主空堂)입니다. 이 무주공당이 때로는 천당이 되고, 때로는 극락이 되기도 하니, 마음이 바로 무주공당인 것입니다. 도편수가 초석을 깔고 기둥을 심고 지붕을 올리는 순서대로 집을 짓듯이 사람의 몸도 사대의 기를 조화시켜서 차례대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 동안 만들어졌습니다. 눈, 귀, 코, 입이 생기고, 지구의 오대양 육대주를 닮은 오장육부가 생기고 난 후 세상에 나와서 21일 동안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복(本來面目)의 과정을 거쳐 완전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이 몸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잘 먹어야 합니다. 첫째는 음식을 잘 먹어야 합니다. 음식은 고루고루 제때 먹어야 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 천천히 오래 씹어야 합니다. 제철에 나는 채소를 먹어야 합니다. 고기를 너무 많이 먹으면 피가 탁해서 성질이 포악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둘째는 물을 잘 마셔야 합니다. 수질이 깨끗한 물을 마셔야 하고, 너무 차지도 않고 뜨겁지 않은 물이 좋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자정수, 즉, 밤 12시에 마시는 물이 좋습니다. 셋째는 좋은 공기를 호흡해야 합니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공기를 호흡하면서 삽니다. 지역에 따라서 동식물의 모양과 색이 다르고 사람의 인성과 습성이 다른데, 그 원인은 공기의 온도와 습도 때문입니다. 넷째는 마음을 잘 먹어야 합니다. 마음을 잘못 먹으면 욕심과 탐욕과 치심이 생깁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마음이 몸을 움직이는 주인공입니다. 비유컨대 몸이 자동차라면 마음은 운전자입니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쉼 없이 말씀을 이어갔다. 
“노령임에도 법체가 강령하십니다. 비결이 있는지요?” 

“그 비결은 바른 숨을 쉬기 때문입니다.”

“숨이요?”

“모든 생명체는 숨을 쉽니다(息外無命). 숨 탄 것의 숙명입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목숨을 거둔 것입니다. 따라서 숨은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암도 스님은 들숨과 날숨을 의식하지 않고 폐로 숨을 쉬는 자연호흡과 날숨을 길게 하는 장출식(長出息)과 숨을 마시고 멈추고 내쉬는 단전호흡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스님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 뱃속에서는 태식호흡(胎息呼吸)을 하다가 태어나서 탯줄이 잘리면 폐로 숨을 쉬는 까닭에 성태(단전)가 퇴화된다는 것이다. 

태식호흡을 하려면 어머니 뱃속에서처럼 쭈그리고 앉아야 한다. 양쪽 팔꿈치로 무릎을 압박한 채 양손가락은 깍지를 끼고, 눈은 코끝 앞에 놓인 주먹손을 보고, 입을 붕어처럼 벌리고 배꼽 밑 하단전까지 숨을 마신 다음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았다가 코로 내쉬어야 한다. 이렇게 100일 동안 30분씩 정진하는 것이다. 정진할 때 부처님께서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에서 설하신 수식관(數息觀)을 해야 한다. 삼독심을 버리지 않은 채 아무 때나 복식호흡을 하면 외려 약이 아니라 독이 된다. 

100일간의 태식호흡을 끝마치면 1000일 동안 학식호흡(鶴息呼吸)으로 성태를 만들어야 한다. 학식호흡은 가부좌 자세로 배꼽 뒤중단전에 마음을 두는 것이다. 두 손으로 양쪽무릎을 짚고 숨을 마시면서 고개를 치켜들고 지식(止息)할 때는 목을 학처럼 양쪽으로 돌리고 코로 숨을 내쉬면서 수식관을 해야 한다. 학식을 하는 동안 무념(無念), 무상(無想) 무아(無我)의 경지를 체득해야만 성태(聖胎)가 된다.

성태가 되면 불성광명(佛性光明)을 각성(覺性)하여서 즉시 지혜(智慧)가 생겨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을 투득(透得)하게 된다. 1000일 과정의 학식을 마치면 1만일 동안 상단전(명치 밑)에 의식을 집중하고 구식(龜息)으로 성태장양(聖胎長養)해야 한다.

이런 수행 끝에 대종사는 몸 전체의 피부가 열려서 모공(毛孔)으로 호흡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암도 스님이 주석처에서 본지 작가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암도 스님이 주석처에서 본지 작가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성공하고 싶다면 타인 존중·배려하세요”

암도 스님이 전하는 인간답게 사는 법
첫째, 부모님과 조상님을 잘 받들고
둘째, 배우자와 자식을 사랑하고, 
셋째, 형님과 선배들을 존경하고, 
넷째, 친구들에게 의리를 지키고, 
다섯째, 동생과 후배에게 廉恥있고 
여섯째, 이웃과 동료들에게 친절하라

“앞서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스님은 헛기침을 한 뒤 말을 이었다.

“마음 밖에 있는 것은 없습니다(心外無有). 우리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나옹 선사께서 ‘인생은 한 조각의 구름이 일어난 것과 같고 죽음은 한 조각의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직 한 물건만이 삶과 죽음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 한 물건을 찾는 것이 바로 ‘시심마(是甚)’입니다. 자각(自覺)이란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공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영감(靈感)으로 깨닫는 직관을 지닐 때 실상반야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성인과 범부의 차이는 자신의 주인공을 찾는 데 달려 있습니다. 자신의 주인공을 찾으면 성인이 되고 찾지 못하면 범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을 찾는 길과 숨길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진정한 깨달음은 연기법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신의 본성인 심령으로 항상 공중(空中)을 관조해야 하고, 나아가서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우주의 숨길을 느끼면서 길게 날숨을 내뱉는 성태장양(聖胎長養)을 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 바로 숨입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인간의 생명이 어디에 달렸느냐’하고 묻자 다른 제자들은 틀린 대답을 했으나 한 제자만이 ‘숨 한 번 내쉬고 마시는 사이(呼吸之間)에 달렸다’는 옳은 대답을 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한 달도 아니고 하루도 아니고 고작 숨 한 번 내쉬고 마시는 사이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대종사는 이어서 불자들에게 휴식할 것을 강조했다. 

“휴식(休息)의 ‘식’자는 스스로 ‘자(自)’ 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즉,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라는 의미입니다. 순간마다 일어나는 오욕의 생각을 내려놓고 ‘참마음’을 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수행의 근본입니다.”
잠시 문답이 끊기자 스님은 “경내를 걷자”고 했다. 구순을 앞둔 세납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오르막길을 걸으면서도 조금도 힘에 부치지 않아 했다. 스님의 옆에 서서 걸으면서 필자가 물었다.

“암도라는 법명에는 어떤 깊은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까?” 스님은 살포시 웃은 뒤 손가락으로 경내의 석축들을 가리켰다. 

“군대 전역 후 화순 용암사를 찾아가 다시 출가했는데, 은사인 천운 스님께서 암도라는 법명을 내려주셨어요. 용암사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요사채 아홉 채를 보수한 것입니다. 이어서 개울에 돌담을 쌓았는데 천운 스님이 보시기에 내 솜씨가 석수(石手) 못지않았던 모양입니다. 돌을 다루듯 중생들을 잘 제도하라는 의미일 테지요.”    

경내는 지금도 불사가 진행 중인지 곳곳에 목재와 석재들이 쌓여 있었다. 

“불자들에게 덕담 한 마디 해주십시오.”

“인간(人間)이라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 사람은 관계 속에 있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인간답게 잘 사는 방법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 하는 것입니다. 첫째, 부모님과 조상님을 잘 받들어 효도(孝道)하고, 둘째, 배우자와 자식을 사랑하고, 셋째, 형님과 선배들을 존경하고, 넷째, 친구들에게 의리를 지키고, 다섯째, 동생과 후배들에게 염치(廉恥)가 있고, 여섯째, 주위의 이웃과 직장동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예의를 지키고 정직하며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합니다.”

필자는 <숨길 따라 가는 길>에 인용돼 있는 탄허 스님과의 일화가 떠올라서 암도 스님에게 물었다.

“금년에 염라대왕 연세가 몇 살입니까?”

이 질문은 암도 스님이 동대문 청룡사를 찾아가 탄허 스님에게 물은 질문이었다. 당시 탄허 스님은 아무 말씀 없이 단주만 돌렸다고 한다. 이에 스님이 “무량수란 말입니까”라고 다시 물었고, 탄허 스님은 웃음으로 화답한 뒤 차를 한 잔 내려줬다. 

암도 스님은 살포시 웃은 뒤 입을 뗐다.

“내가 쓴 책을 읽었군요. 1971년에 나는 동국대 불교학과에 재학 중이었어요. 당시 백상원 기숙사 종비생 42명이 수원 용주사 중앙선원에 수련을 갔습니다. 당시 선원 조실이 전강 선사였습니다. 전강 선사가 법문 중에 판소리의 대가인 임방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노래를 마친 뒤 ‘임방울이 죽은 마누라의 시체를 앞에 놓고서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한데 마누라는 어디로 갔느냐고 했다. 어디 아는 사람이 있으면 말해봐라’라고 물었습니다. 내가 손을 높이 든 뒤 말하길 ‘무거무래역무주(無去無來亦無住)’라고 했어요. 탄허 스님과의 선문답 후 인천 용화사를 찾아갔으나, 전강 선사께서 입적한 뒤였습니다. 만약 전강 선사를 뵈었으면 ‘임방울의 마누라가 어디서 왔습니까? 그곳을 가르쳐주시면 간 곳을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자연(自然)은 글자대로 스스로 그러한 것입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 오면 잎이 무성하고 가을이 오면 잎이 떨어지고 겨울이 오면 나뭇가지만 앙상합니다. 숨길 따라 살다가 숨길 끊어지면 가는 것입니다.”

걷다 보니 어느새 큰법당 앞이었다. 큰법당에는 ‘나쁜 일 하지 말고 좋은 일에 힘쓰며 청정한 마음으로 참나를 깨달아서 모든 중생 가르쳐 불국토 이룩하자’라는 글귀의 주련이 걸려 있었다. 

“대웅전에 한글 현판과 주련을 단 이유는 일종의 대기설법입니까?”

암도 스님이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부처님 가르침은 나도 좋고 너도 좋고 누구에게나 좋은 가르침입니다. 그러니까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누구나 알 수 있게 전법해야 하지 않겠어요.”

스님은 필자가 떠나는 길까지 배웅을 나오셨다. 마하무량사에서 나와서 귀가하는 길에 보니 인근에는 죽림만 있는 게 아니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도 있었다. 메타세쿼이아는 화석의 나무로 불리고 있다. 중생대 시기부터 생존해온 나무이기 때문이다. 수억 년 전부터 씨를 뿌려온 메타세쿼이아, 그 장구한 시간에서 마하무량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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