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의 그릇이 온전해야 선정의 물이 고이고 선정의 물이 온전히 고이면 지혜의 달이 뜬다.
살아서 마음 도리 알아야 한다는데질문 스님께서는 살아서 이 도리를 알아야 한다고 하시는데 이 마음 도리를 모르고 몸을 벗으면 어떻게 되는지요.답변 항상 여러분한테 생활이 공부라고 했습니다. 생활이 교재라고 했습니다. ‘불(佛)’이라는 것은 생명의 근본을 말하고 ‘교(敎)’라는 것은 생활, 삶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항상 공부하는 이유가 어딨느냐. 사람이 살면서 내 주인공의 줄을…, 이건 근본이기 때문에 움죽거리진 않습니다. 움죽거리지 않는 근본의 줄을 잡고 그 언덕을 넘어서야 된다는 얘기죠. 즉 말하자면, 천야만야한 산을
정차(精茶)는 잘 만들어진 좋은 차를 말하며, 이를 명차(名茶)라고 부른다. 명산(名山)에는 명차가 난다고 하였으니 이는 차를 영초(靈草)라 인식했던 것과 상통되는 맥락이다. 차를 신령한 물질로 인식했던 것은 초의 선사(1786~1866)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기에 그는 에서 “더구나 너의 신령한 뿌리는 신선산에 의탁했으니 신선처럼 맑은 차는 그 품격이 다르다(爾靈根托神山 仙風玉骨自種)”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차를 신선처럼 맑은 품성을 지닌 것으로 인식한 연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차의 천진무구한 천연성, 바
사나이 가는 곳이 바로 고향인 것을(男兒到處是故鄕)나그네 인생 시름 속에 길게 헤매이네(幾人長在客愁中)깨달음의 고함 악! 하고 외치니 삼천세계 깨지고(一聲喝破三千界)눈 속에 붉은 복사꽃은 조각조각 흩날리네(雪裡桃花片片紅)이 시는 만해 한용운 스님이 39세(1917년 12월 3일 밤 10시경)에 설악산 백담사 오세암에서 좌선을 하던 중 갑자기 분 바람에 무슨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어 지은 오도송이다.칠언절구의 이 시는 전형적인 근체시의 시의 형식인 압운(押韻: 鄕, 中, 紅)과 대구(對句)가 잘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네 어머니 뱃속이 시원하더냐, 답답하더냐.”“답답하니까 나왔겠지요. 시원하면 나왔겠습니까.” 서암 스님을 뵈던 날, 이제 겨우 행자 시절을 보내던 젊은 스님은 선승의 질문에 스스럼없이 답을 던졌다. 막 걸음을 떼는 제자의 당돌한 대답에 타박 한마디 던질 법도 하건만, 노구의 선승은 환하게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또다시 이어지던 그날의 선문답은 이제는 훌쩍 나이를 먹어버린 그날의 제자에게 꺼지지 않는 등불로 남아 눈앞을 밝힌다. 그날의 인생국수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했어요.” 경상북도 상주 남
얼마 전 최초로 영남지역 대학생 연합 템플스테이와 수계법회가 통도사에서 봉행됐다. 그동안 이 아름다운 도량에서 대학생들의 동아리 연합 템플스테이나 연수를 염원하고 희망했던지라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나도 한때는 호기심과 열정,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용기로 청춘을 살았다. 배고픈 불교학도들에게 공양을 손수 챙겨주며 따뜻하게 보살펴주시는 스님들의 마음에 감화되어 그 시절에 금강경 육조단경을 접하고, 결국에는 출가도 하게 되었다.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대학생들을 데리고 통도사로 들어가니 20대로 돌아간 마냥 들뜨기도 했다.74
한겨울인데도 마트에선 진공 포장된 옥수수를 만날 수 있다. 옥수수를 보니 몇 해 전 추억이 떠오른다. 밥보다 떡이랑 옥수수를 더 좋아하시는 친정엄마께서는 집 앞에 옥수수를 아주 많이 심으셨다. 풍성한 수확물을 기대하고 열심히 관리하면서, 옥수수가 자라는 모습을 기다리셨다. 드디어 내일은 옥수수를 따는 날이라고 하셨고, 커다란 옥수수 자루를 밭에 갖다놓으셨다. 설레는 마음으로 자루를 바라보며 엄마께서는 들떠 있으셨다.그런데 다음날 새벽에 나가보니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누군가 옥수수를 다 따서 자루째 가져간 것이다. 단 한 개의 옥
(지난 호에 이어서)우리가 이런 공부를 많이 한다면 세계 평화가 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는 소립니다. 전부 바깥에서, 지금도 거기 싸우는 나라 어딥니까. 거기 대통령이 말하는 데도 “우리는 알라신이 이기게 한다.” 그러고는 “저렇게 악인들은 다 떨어진다.” 즉, 죽는다 이거죠. 조그마한 쿠웨이트가 기름으로 인해서 돈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삼분의 일을 주겠다고 하는데도 그것도 적다고 그냥 뺏어 버린 거 아닙니까? 그렇게 욕심이 많은데 어떻게 부처님인들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게 ‘페만’이 아니라 ‘패망’이죠. 마음 한생각에
선불장(選佛場), ‘부처를 선발하는 자리’라는 말로 사찰의 승당이나 선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충남 공주 학림사 오등선원에도 ‘선불장’ 현판이 큼직하게 걸려 있다. 부처를 선발하는 곳, 오등선원을 이끄는 선지식이 선원의 조실이자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학산 대원 대종사다.학림사 오등선원은 대원 스님이 1986년 옛 제석사의 터에 건립한 사찰이다. 10여 년 후 학림사 내에 오등선원을 세워 가람의 격을 갖추었고, 선원의 개원과 아울러 대원 스님을 조실로 추대했다. 2001년에는 오등시민선원을 건립해 일반 불자들도 정진할 수 있게 했다. 지
신라인은 불교를 믿기 시작하면서 경주 선도산(仙桃山)과 단석산 꼭대기 바위에 부처님을 조성했다. 신을 섬기던 신라인들에게 산 정상에 우뚝 솟은 바위는 신과 소통하거나 신성이 깃든 신령한 바위로 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신라인들은 불교가 들어오면서 신 또한 윤회하는 존재로 천상에 태어난 중생임을 알게 된다. 하늘과 산과 바위에 스며들어 있던 절대적 신의 권위는 불교문화에 녹아들어 육도윤회를 하는 중생이 된 것이다. 당연히 신라인들이 섬기던 하늘의 신은 윤회하는 중생이란 의미에서 인간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되고, 산과 바위의 성스러움에서
보리수서 일어선 젊은 부처님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룬 자, 이제 그 사람은 더 이상 예전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붓다라고 불릴 뿐입니다. 붓다가 되기 이전과 되고 난 후 그 위상은 너무나 다릅니다. 예전에는 한 소국가의 왕자였고, 열반의 경지를 얻을 수 있을까를 모색하던 구도자(보살)였다면, 이제 그분은 붓다가 됐습니다. 붓다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진리를 나눠준 대상은 아시다시피 5비구라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자신과 함께 고행을 하다가 자신의 고행포기에 실망해 다른 곳으로 옮겨간 다섯 수행자들입니다. 부처님이 그들을 찾아
많은 종교들은 종말을 이야기한다. 인간을 비롯한 세상 만물이 미래에는 모두 멸망하게 된다면서 그때 자기 종교만이 구원을 약속하리라는 종말론은 대중의 믿음을 이끌어내는데 아주 유효하다. 그런데 불교는 종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현세를 극복할 희망을 이야기한다.현상계는 생성과 지속, 소멸의 과정을 되풀이하고 그 안에서 우리는 윤회를 거듭하는데, 언제부터 윤회해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행을 완수해 모든 번뇌를 끊고 다시 생사의 세계에 윤회하지 않는아라한이 되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불이 있었든 미래불이 있
갑진년(甲辰年) 새해다. 2024년 새해는 2023년의 끝에서 솟아 오른 찰나, 오늘은 어제의 끄트머리에서 터져 나온 찰나다. 찰나란 무엇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어느 대학을 갈 것인지, 어느 직장을 다닐 것인지, 어떤 남자와 결혼할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이 찰나다. 이 찰나의 결정이 평생을 좌우한다. 병든 연인을 위해 자신의 귀한 장기를 떼어주고, 극한 상황에서는 자식 대신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찰나란 무서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찰나의 행동으로 인하여 한 생명이 살아날 수도, 거품처럼 사그라질 수도 있다. 한순간 잘못 생
영하 7도. 혹한의 날씨였다. 1월 15일 조계종 총무원 4층 원로회의 의장실에서 의장 자광(慈光) 대종사를 친견하고 고준한 법문을 들었다. 대종사의 법명대로 자비(慈悲)의 광명(光明)이 보는 이의 가슴에 비췄다.자광 대종사는 가장 먼저 불자들에게 새해 덕담을 건넸다.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현대불교신문〉 독자들을 비롯해 불자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지으시기 바랍니다. 설날 떡국을 먹으면 나이가 한 살 더 늘게 됩니다. 철이 든다는 말의 의미는 계절감을 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봄이 오면 신록이 돋고, 여름이
걷기의 본원적 기능걷는 것 자체가 생존이던 때가 있었다. 달리 이곳에서 저곳으로 갈만한 수단이라고는 절대 다수의 사람에게 두 다리가 유일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500㎞가 넘는 길을 한 달 남짓 걸려서 걸었다.장사를 하는 보부상들은 이렇게 먼 거리를 상권으로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반경 50~60㎞ 정도로 하고, 근방에서 열리는 5일장이 그들의 활동 반경이다. 이처럼 생존을 위하여 걸을 수밖에 없었을 때는 걸어가는 그 자체에 대한 의식이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었다. 근세 이전의 문헌에서 걷는다는 행위에 대하여 특별하게 언급되는 것은
차를 만드는 공정 과정을 제다(製茶) 혹은 조다(造茶)라고 부른다. 이는 뜨거운 솥이나 수증기를 이용해 찻잎을 찌거나 덖어 말리는 과정을 아우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제다 과정에서 찻잎을 찌거나 덖는 연유는 무엇일까. 바로 뜨거운 불이나 수증기를 이용하여 생 찻잎이 지닌 독성을 중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다의 정의는 사람에게 유익함을 주는 차로 만들기 위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론 너무 쓰거나 떫은맛을 지닌 생잎을 화후(火候)로 조절하여 차의 오미(五味)를 풍성하고도 조화롭게 드러내기 위함이다. 아울러 좋은 차를 항상 보관해
동아리 학생들과 한 해 수업을 마무리하며 더 잘하자는 의미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서로 한 손뼉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는데, 의외로 합이 맞지 않는 친구들이 많아 놀랐다. 그중 한 아이는 여러 번 하이파이브를 시도해도 도무지 손뼉의 합이 맞질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런 간단한 손뼉 인사가 되지를 않는가. 퍽 당황스러웠다.다음날 수업시간에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몇몇 아이들을 불러내 다시 하이파이브를 시도했다. 마찬가지다. 그 이유가 무엇인 것 같냐고 물으니, 아이들이 대답한다. “선생님이라 어렵고 부담돼서 그런 것 같아요.”“서로
손이 꽁꽁! 발이 꽁꽁!겨울바람 때문에 몸이 추위에 떨지라도 마음은 떨지 않기를 따스한 마음을 내어 서로 온기를 나눠주세요
겨울이 깊어지면 동글동글 붉은 팥알을 모아 보글보글 끓이기 시작한다. 삶은 팥의 구수하고 달큰한 향기가 사방을 채울 때면 어느새 겨울의 냉랭한 얼굴도 조금은 유순해지기 때문이다. 시간을 들여서, 오랜 시간 뭉근히 끓여 내야 하는 팥은 온기도 그만큼 오래오래 남는 법이다. 끓는 솥단지의 열기가 공간을 데우고, 구수한 냄새에 취해 노곤해질 즈음이면 어느새 동장군마저 곁에 앉아 졸고 마는 시간. 지독한 겨울밤의 냉기도, 깊은 어두움도 어느새 그렇게 지나쳐간다. 빛과 생명력의 상징, 팥우리에게 팥은 단순한 먹을거리를 넘어 좀 더 큰 임무를
신라 자장 스님(590~658)은 643년(선덕여왕 12)에 당나라 오대산 태화지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사리와 가사를 전해 받았다. 이후 신라로 돌아와서 인연 있는 곳에 사리를 봉안하였다. 그중 다섯 곳인 양산 통도사, 오대산 중대(상원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 등을 5대 적멸보궁이라 한다.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은 상원사에서 걸어서 50분 정도 걸리는 데다 그렇게 급경사도 아니다.상원사는 문수보살이 계신 문수도량이다. 흔히 상원사는 중대 적멸보궁이 세워진 643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