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채우는 선물 같은 한 그릇 

한 그릇에 속 든든한 단골 보양식
국수 먹고 ‘살아야겠다’ 마음 먹어
몸·마음 허허로운 날 더 좋은 위안

“네 어머니 뱃속이 시원하더냐, 답답하더냐.”

“답답하니까 나왔겠지요. 시원하면 나왔겠습니까.” 

서암 스님을 뵈던 날, 이제 겨우 행자 시절을 보내던 젊은 스님은 선승의 질문에 스스럼없이 답을 던졌다. 막 걸음을 떼는 제자의 당돌한 대답에 타박 한마디 던질 법도 하건만, 노구의 선승은 환하게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또다시 이어지던 그날의 선문답은 이제는 훌쩍 나이를 먹어버린 그날의 제자에게 꺼지지 않는 등불로 남아 눈앞을 밝힌다. 

그날의 인생국수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했어요.” 

경상북도 상주 남산 자락에 자리한 묘견암(妙見庵). 상주 터미널에서 김천 방향으로 십 여 분을 달리면 나타나는 정갈하고 어여쁜 도량에서 동화 스님(묘견암 주지)을 만난 날. 마치 오래전 그날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붉게 물든 동화 스님의 얼굴에 부끄러운 표정이 스쳐 지난다. 

해방 이후 척박한 이 땅의 불교계와 동포를 위해 헌신한 선승. 어떤 자리에도 매이지 않고 온 생으로 법을 펼치고 떠난 자유의 수행자. 근대 한국불교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서암 큰스님을 만난 날의 이야기다. 

“그때 저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도 않고, 행자 시절에 하도 일이 많으니 스님 노릇이 이런 건가 싶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어른스님들께서 크게 깨우친 스님이 계시니 뵈러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뵌 서암 스님께서 그날 국수 한 그릇을 직접 내어 주셨습니다.” 

그곳은 경북 봉화 태백산 기슭, 작은 조립식 건물에서 동화 스님 일행을 반겨준 이는 인자한 모습의 노승. 바로 서암 큰스님이었다. 

“노스님께서 국수를 끓여 고추 한두 개 떠 있는 간장과 김치만 턱 놓고서 먹자고 하시는데, 그 국수가 얼마나 맛있던지. 신기할 만큼 지금도 그 맛이 잊히질 않아요.” 국수 한 그릇을 다디달게 해치운 행자는 큰스님을 만난 기대감에 궁금한 것을 덜컥 내밀고 만다. 

“구십 평생 스님으로 계시며 얻은 것이 무엇이냐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스님께서 ‘나 얻은 게 하나도 없다’ 하시는 거예요. 순간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웃음). 아니 저리 큰스님이라고 소문이 자자하신 어른도 얻은 게 없다면 나는 어쩌나 하구요. 하지만 바로 다음 말씀이 두고두고 제 가슴을 쳤습니다.” 

난 얻은 것이 하나도 없다. 
난 버리고만 살았다.

큰스님의 그 한 줄기 대답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지 깨달은 것은 그 후 십 년,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간장 한 점 얹은 소박한 국수, 그 위에 더해진 선승의 법어.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날의 맛과 어린 행자의 당돌한 질문도 어느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던 자상한 큰스님의 모습은 남아있는 자의 시간 속에 오늘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어쩌면 누군가의 인생국수
삶이란 무엇인지 어렵고 막막했던 어린 날. 우연히 만난 한 스님의 “너 머리 깎고 중이나 되어라!” 한 마디에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싶어 바로 다음 날 집을 나섰다는 동화 스님.

어른스님들 말씀에 공양간은 복 짓는 곳이라 하여 마음이 답답할 땐 일부러 찾아 나섰다. 공양간 소임을 맡아 한철, 또 한철 지내고 보니 이만한 공부방이 있을까 싶었다고. 이제는 사찰음식 강사가 되어 더 많은 공양간을 찾으니 이 또한 나날이 수행의 연속인 셈이다.

“음식을 하는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자기를 낮춰야만 누군가를 위해서 음식을 할 수 있어요. 구정물에 빠지고 부엌데기 취급도 받으면서요(웃음). 하지만 이 음식을 드시는 스님들이 부디 확철대오(廓徹大悟) 하시길, 배고픔이 달래지기를, 편안하기를 바라면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아요.” 

그런 동화 스님에게는 때때로 비장의 무기처럼 쓰이는 레시피가 있다. 바로 사계절 어디서나 환영받는 들깨 칼국수! 

절집의 부엌에서 국수란 노상 함께 하는 친구와 같은 것. 국수하는 날이면 공양간 멀리서부터 웃으며 들어오시던 스님들 덕분에 안 해본 국수가 없지만, 들깨 칼국수는 그보다 요긴하게 쓰이는 특별한 메뉴다. 

“아는 분에게 급히 연락이 온 적이 있어요. 자신의 지인이 심적으로 불안한 상태이니 도와줄 수 있겠냐면서요. 만나보니 마음에 화가 가득 찬 분이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8시간 동안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 드리고, 들깨 칼국수를 정성껏 만들어 드렸어요. 저는 듣기만 하지만 그 사람은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일단 드시고 힘내서 더 말씀하시라고 했지요.” 

그러자 신기한 일이 생겼다. 한 입, 두 입 먹을수록 잔뜩 올라갔던 매서운 눈초리가 내려가더니 이내 눈물을 흘렸다. 혼자 생을 마감할 계획을 세우던 이가 스님이 해주신 음식을 먹으며 자신도 모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오랜 시간 감사를 전하던 그는 지금도 종종 동화 스님에게 반가운 인사와 함께 그날의 들깨 칼국수를 이야기한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
한 그릇 먹으면 속이 뜨끈하고, 든든해지는 들깨 칼국수는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단골 보양식이기도 하다. 동네 이웃과 어른들에게 ‘몇 월 며칠은 들깨 칼국수 먹는 날’이라고 언질을 주면, 그날은 약속도 잡지 않고 삼삼오오 스님의 거처를 향해 모이는 것이다. 시내 마실 한번 나가기도 쉽지 않은 연로한 어르신들의 무료한 일상에도, 작은 절집에도 그렇게 훈기가 돈다.     

“들깨 칼국수에는 버섯을 풍성하게 넣습니다. 그래야 쫄깃한 식감이 더해지고 보양이 되지요. 그리고 미나리를 꼭 넣어줘야 해요. 미나리가 들깨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속도 편안합니다.” 

자극은 적고, 영양소는 풍부한 들깨 칼국수는 되직한 가루의 성질 덕분에 잘 식지 않아 오래 뜨끈하고, 묵직함이 오래간다. 동의보감에 설명된 들깨는 본래 독소가 없고, 더운 성질로 속을 보하며 골수를 채우는 힘이 있다. 또 과하게 오른 기는 내려주고, 마른 이는 살을 찌워 오래전부터 환자의 회복식으로 많이 쓰였다고 하니, 몸도 마음도 허허로운 날 이보다 더 좋은 위안이 또 있을까. 

“오래전 서암 스님께서 국수를 내주시던 날, 처음 하신 말씀이 너는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것이었어요.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해 그저 서울입니다, 했지요. 그렇게 뒤로, 뒤로 가다 보니 어머니 뱃속까지 돌아갔습니다. 그때 스님께서 화두 아닌 화두를 주셨어요.”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기 전 너는 어디에 있었는가. 생각해 보라. 너는 어디에 있었는지 생각하라’ 자상한 노스님의 선문답은 그렇게 끝을 맺었다. 그렇게 던져진 화두는 지금껏 닿지 않는 별처럼 아득하지만, 아직도 변함없이 동화 스님의 시간 속에 함께 머문다. 

“공부가 안 되어 답답할 땐 혼자서 울기도 했습니다. 큰스님 되기에 내 그릇이 부족하단 것도 깨닫고요(웃음). 하지만 그냥 지금 이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합니다. 누군가 저를 필요로 할 때 최선을 다해 저를 내려놓고 필요한 일을 합니다. 그러면 상대가 참 기뻐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저도 행복해집니다. 참 간단하지요(웃음).”

스승들의 전설 같은 깨달음은 아직 멀고 먼 이야기.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잘 머무름이 겹겹이 쌓인 화두의 문을 여는 시작임을 알기에 오늘도 가만히 발아래를 살핀다. 그런 어느 날 구수하고 따스한 들깨 향기 코끝을 스치는 어떤 곳에서, 오랜 별과 같은 나를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한줄 요약 
자극은 적고, 영양소는 풍부한 들깨 칼국수는 되직한 가루의 성질 덕분에 잘 식지 않아 오래 뜨끈하고, 묵직함이 오래간다.

 

동화 스님의 들깨 칼국수

재료  
칼국수면, 채수, 각종 버섯, 들깨가루, 찹쌀가루, 집간장, 굵은 소금

만드는 법
1. 채수는 무와 다시마로 국물을 깔끔하게 내준다. 집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2. 버섯과 미나리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3. 들깨가루 1컵에 찹쌀가루 1큰술 반을 미리 섞어 둔다.
4. 채수에 무와 다시마를 건진 후, 칼국수면을 넣고 거의 익으면 버섯과 3을 넣어 끓인다.
5. 마지막에 미나리를 넣고 불을 끈 후 그릇에 담아낸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