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히 차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차 만들기는 차문화 역사의 핵심
이목 “상품의 차, 몸 상쾌하게 해”
정밀히 만들지 않고 다른 풀 섞이면
음용하면 병이 드는 나쁜 차가 된다

연고단차를 만드는 모습. 시루에 찐 차를 잘게 갈아 뭉쳐서 틀에 찍어낸다.
연고단차를 만드는 모습. 시루에 찐 차를 잘게 갈아 뭉쳐서 틀에 찍어낸다.

정차(精茶)는 잘 만들어진 좋은 차를 말하며, 이를 명차(名茶)라고 부른다. 명산(名山)에는 명차가 난다고 하였으니 이는 차를 영초(靈草)라 인식했던 것과 상통되는 맥락이다. 차를 신령한 물질로 인식했던 것은 초의 선사(1786~1866)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기에 그는 <동다송>에서 “더구나 너의 신령한 뿌리는 신선산에 의탁했으니 신선처럼 맑은 차는 그 품격이 다르다(爾靈根托神山 仙風玉骨自種)”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차를 신선처럼 맑은 품성을 지닌 것으로 인식한 연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차의 천진무구한 천연성, 바로 맑고 청량하고 온화한 품성이 시기 질투와 성냄, 불안감, 공포 등으로 찌든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풀어 주기 때문이리라. 인간의 삶이 고통스럽고 불안한 것은 지나친 욕망이 만들어낸 감정들이다. 이런 마음 상태를 조절, 통제하기 위한 공부는 수행이며, 수신(修身)이다. 그러므로 유학에서는 거경(居敬)이나 근(謹)을 수기(修己)의 요체로 삼은 것이며 이는 삶을 성숙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그러므로 이를 위한 성현의 가르침은 설득력이 있어 만고(萬古)의 진리로 인식한 것이며 가장 객관적인 삶의 형평을 유지할 수 있는 공부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옛사람의 궁극적인 수신의 목적은 본성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아울러 차는 사람의 근심과 울화, 피로감을 풀어주는 신묘한 정신음료로 인식하여 곁에 두고자 했다. 이는 오랜 경험을 통해 좋은 차를 마신 후 불편했던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차의 효능에 주목했던 것이며, 이를 차의 이로움이라 정의했다. 따라서 차란 사람의 피로에 지친 마음과 몸을 평탄하게 이완시켜 안정되고 편안한 마음 상태로 이끌어 주는 특별한 물질로 인식한 옛사람들은 수많은 시문에서 차를 칭송하였다. 특히 조선 전기 이목(李穆, 1471~1498)의 <다부(茶賦)>에도 차의 이로움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잠시 후 절로 웃으며 차를 따르니(俄自笑而自酌)
두 눈이 환하게 밝아지네(亂雙眸明滅)
이에 몸을 상쾌하게 만드는 것은(於以能輕身者)
상품의 좋은 차가 아니던가(非上品耶)
묵은 병을 쓸어버리는 건(能掃者)
중품의 차가 아닌가(非中品耶)
번민을 달랠 수 있는 것은(能慰悶者)
중품 다음 차가 아니랴(非次品耶)

이목도 노래한 바와 같이 차를 마신 후 가장 먼저 느끼는 몸의 변화는 눈이 밝아지고 시원해진다는 점이다. 근래 필자와 함께 차를 마신 인사들 중에 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이 차를 마신 후 처음 느끼는 몸의 변화는 피곤했던 눈이 갑자기 시원해지면서 환하게 밝아진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몸이 따뜻해지면서 포근하고 부드러운 천으로 몸을 감싸는 듯, 몸이 편안하고 따뜻해지는 변화를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감안해 본다면 이목의 말한 차의 이로움은 현대인도 어느 정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목은 상품의 차는 몸을 상쾌하게 만드는 효능이 있다고 하였다. 물론 그가 언급한 차품은 상품, 중품, 하품으로 구분해 각기 다른 차의 효능을 말했지만, 법제를 잘한 차는 상·중·하품으로 품질을 나누지 않더라도 차를 마시면 눈이 밝아지며 입안에 단침이 돈다든지, 시원한 청량감을 준다는 점은 동일하다. 다만 이런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차를 따는 시기가 중요하다. 알맞은 시기에 차를 따서 만든 차는 부드러운 맛과 은은한 빛, 진향(眞香), 난향(蘭香) 등이 잘 드러나 이런 차를 마시면 신비한 차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차를 따는 시기가 늦어지면, 쓰고 떫은 맛이 강하여 감윤(甘潤)한 맛과 환한 난향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일찍 딴 차(早茶)와 늦게 딴 차(晩茶)는 차품의 질적 차이가 큰 것이다.

이목은 중급 차를 마시면 묵을 병을 쓸어내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시키며 번민 또한 달래서 심신이 평온한 상태로 이완시켜 준다고 했지만, 이런 차의 효능을 모든 차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좋은 차를 얻고자 하였다. 우리의 심신을 안정시켜 주는 차는 잘 만들어진 차를 말한다. 차를 만드는 일은 차문화사의 주요한 핵심이다. 이에 못지않게 찻물도 중요한 요소이다. 아무리 차의 색향기미를 완벽하게 드러낼 물을 얻었다 할지라도 물을 잘 끓이지 않으면 차의 색향기미가 온전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물과 탕법의 중요성을 간파했던 옛사람들은 차를 논하면서 제다법과 품수(品水), 물 끓이는 방법(湯法), 숯불의 관리 등에 주목했다. 

그렇다면 좋은 차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이는 차사(茶事)의 중요한 명제이다. 제다의 시작은 차를 따는 시점과 기후에 달렸다. 11세기 이후 고려에서는 매발톱이나 낱알 같은 여리디 여린 차 싹을 따서 연고단차(硏膏團茶)를 만들었는데, 이 무렵 차는 수증기로 찻잎을 쪄서 생잎의 거친 풋 맛과 향을 중화하여 부드럽고 감윤(甘潤)한 맛과 청한(淸寒)하고 온화한 맛을 드러내고자 했다. 

육우의 <다경>에는 제다의 전반을 “차를 딸 때 알맞은 시기가 아니며 정밀하고 세밀하게 차를 만들지 않고 다른 풀이 섞이게 되면 (이렇게 만든 차를) 마시면 병이 든다(採不時 造不精 雜以卉莽 飮之成疾)”라고 하였다. 이는 제다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차를 만들 때 귀감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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