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무엇을 빌까?우리나라 사람들 참 빠릅니다. ‘빨리빨리’가 입에 붙었고, 몸에도 붙었고, 생각에도 붙어 있습니다. 뭘 해도 빨리 해야 하고, 빨리 하지 않으면 내 차례가 오지 않기 때문에 남보다 빨라야 합니다. 친구가 말하더군요. 국제전화에 국가번호가 있는데, 우리나라 국가번호도 ‘82’라고요. 국제적으로도 빠른 대한민국을 인정받은 건가 싶습니다.빨라서 좋은 점도 있지만 빨라서 힘든 점도 많습니다. 많이 지치고, 빨리 지칩니다. 그런데 빨리 지친 친구에게 우리는 또 이렇게 격려합니다. “어서 힘내, 빨리 기운 차려”라
하루키 씨, 제목 좀 빌릴게요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고 그 제목을 흉내 내고 싶어서 제목을 이렇게 달아보았습니다. 이제 막 그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거든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 에세이는 참 솔직하고 담담하게 독자들을 상대로 말을 건네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과장하지 않고 억지 부리지 않고 자신의 느낌을 느낌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으니 전세계 모든 독자들이 그의 이 책을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천수경〉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습니다. 〈천수경〉! 내가 이 경
이름값을 한다는 것절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름 하나씩 더 가지고 있습니다. 입문자를 위한 기초교육을 마치면 스님에게서 법명을 받거나 오래 전에 스님에게 법명을 받은 사람도 많습니다. 대체로 이름이란 내가 “이 이름으로 해주세요”라고 콕 집어서 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 마음인 경우가 많지요. 태어나면서 부모에게서 받은 이름도 그렇고 절에서 받은 이름도 그렇습니다. 또 법명은 하나만 지니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불자들은 여러 스님에게서 법명을 받아서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쓰기도 합니다.
도와달라 내미는 손태국 북부에 자리한 아름다운 도시 치앙마이를 며칠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 들른 여행객들이 반드시 다녀오는 도시가 또 있습니다. 치앙라이입니다. 그곳에는 왓롱쿤(백색사원)이라는 꽤 인상적인 절이 있는데 이름 그대로 이 절은 온통 하얀색입니다. 태국의 한 건축가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지은 절입니다. 눈부시게 화창한 날 이 절에 가면 그야말로 온통 새하얀 사원에 눈이 부시고, 아름답고 또 기괴하기도 한 장식물들이 가득 있어서 시종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대웅전으로 가려면 작은 연못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경꽤 오래 전 일입니다. 불교계 신문사 한 곳에서 경전 연재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때 신문사 측에서 제안하면서 특별히 내게 부탁한 것은 “제발 좀 어렵지 않게 써주세요. 쉽고 재미있게, 아셨죠? 꼭이요!”였습니다.문득 〈백유경〉이 떠올랐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백유경〉을 그리 꼼꼼하게 읽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굳이 〈백유경〉을 선택한 이유를 찾아보자면, 아주 짧디 짧은 내용이 98가지 실려 있고, 그 내용들이 전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설명하기도 쉬우리라는 어림짐작이었지요.
스님, 길을 나서다“그동안 나는 역사적인 붓다의 모습을 추구하는 데 골몰해 왔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알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부처님,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라는 한마디입니다. 모든 것을 현장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 ‘붓다의 땅’으로 왔습니다.”-〈성지에서 쓴 편지〉 22쪽초기불교를 연구하는 학자 호진 스님이 인도를 여행하면서 도반이신 지안 스님에게 쓴 편지입니다. 여행이라는 말은 낭만적이고 홀가분합니다.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여행하고, 쉬려고 여행하고, 새로운
보리수서 일어선 젊은 부처님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룬 자, 이제 그 사람은 더 이상 예전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붓다라고 불릴 뿐입니다. 붓다가 되기 이전과 되고 난 후 그 위상은 너무나 다릅니다. 예전에는 한 소국가의 왕자였고, 열반의 경지를 얻을 수 있을까를 모색하던 구도자(보살)였다면, 이제 그분은 붓다가 됐습니다. 붓다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진리를 나눠준 대상은 아시다시피 5비구라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자신과 함께 고행을 하다가 자신의 고행포기에 실망해 다른 곳으로 옮겨간 다섯 수행자들입니다. 부처님이 그들을 찾아
몹시 추운 겨울 밤, 중국의 어느 사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유랑하다가 얼마 전부터 이 절에 머물던 스님 한 사람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주지스님이 넉넉하게 땔감을 마련해주지 않았나 봅니다. 스님은 달달 떨면서 군불을 좀 땔까 하며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봤지만 땔감은 눈에 띄지 않았지요.하긴 수행하겠다는 사람이 추위를 이기지 못해 온기를 찾아 군불을 지필 생각만 한다면 너무 나약한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주지스님도 이런 마음에서 방에 불을 넣어주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지요.그런데 너무 추웠던 스님은 결국 일을 저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고 하나의 길만 가야 하는 것이 아쉬워깊은 숲속으로 굽어 사라지는 길 하나를오랫동안 서서 멀리 바라보았지.(후략)”미국 시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서는 두 갈래 길을 동시에 갈 수 없어서 마음속으로 길 하나를 선택한 뒤 가지 못하게 된 길을 아쉽게 바라보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그려집니다.인생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선택의 연속입니다. 두 길을 동시에 걸어가는 일을 내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걸 할까, 저걸 할까. 할까, 하지 말까. 이걸 살까, 저걸 살까.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