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네 번…‘四時坐禪’정례화…북송 말~남송 초기1103년까지 좌선, 개인 일임좌선보다 선문답 과정서 오도좌선은 번뇌 망념 소멸 위함禪定보다는 반야지혜 강조 1. 좌선의 정례화선원에서는 하루 네 번 좌선을 한다. 새벽·오전·오후·저녁. 하루 4회 좌선한다고 하여 ‘사시좌선(四時坐禪)’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중국·한국·일본이 똑같다.그런데 뜻밖에도 청규에서 사시좌선이 제도화 된 것은 북송 말이나 남송 초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 즉 북송까지는 사시좌선이 정례화, 제도화하지 않았다. 당·북송시대에 좌선은 개인의 의향에 맡겼다. 즉
‘방장’은 주지의 거실, 당우명독참·청익·입도·오도의 공간청말부터 정식 직함으로 사용선종사원의 최고 어른 스님을 ‘방장(方丈)’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래 ‘방장’은 직함이 아니고 주지스님이 기거하는 당우(堂宇), 즉 거실 이름이었다. 당호(堂號)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하나의 직함이 된 것이다. 지금 중국과 한국은 직함(소임)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일본은 여전히 옛 청규제도를 고수하여 당호로만 쓸 뿐 직함으로는 쓰지 않는다.‘방장(方丈)’의 어원은 유마경에서 비롯한다. 유마경에 보면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의 법전(法戰)이 전개되는데, 무려
‘佛殿’은 석가여래 불을 모신 곳당송 선종사원, 佛殿·불상 거의 없어“목불·석불은 조각일 뿐”佛殿, 남송부터 가람 핵심 당우지전은 불전 소임, 향과 등 담당 (1) 불전(佛殿)‘불전(佛殿)’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곳으로 ‘칠당(七堂, 일곱 개의 중요한 당우)’의 하나이다. 당송시대 선종사원에서는 주로 ‘불전(佛殿)’이라고 하고, 사찰에 따라서는 ‘대웅보전’이라고도 현판을 붙이기도 한다.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불전(佛殿)이라고 쓰지 않고(과거에도 쓴 경우가 없음) ‘대웅전(大雄殿)’ 또는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
당송 때부터 대중목욕탕 운영욕실엔 발다바라 존자상 모셔동사, 선당과 함께 삼묵당 하나 (1) 욕실(浴室ㆍ목욕탕)당송시대 선종사원에는 대중 공용 목욕탕이 있었다. 당시 선원총림은 적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천명 이상의 대중들이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목욕을 하지 않으면 ‘땀 냄새’ ‘피부병’ ‘벼룩’ ‘이’ 등이 생기고, 선당의 청결을 유지할 수 없고 대중들의 건강도 위험하기 때문이었다.목욕탕을 장로종색의 〈선원청규〉(1103년 편찬)와 동양덕휘의 〈칙수백장청규〉(1338년 편찬)에서는 ‘욕실(浴室)’이라고 하고 있다. 천 년 전 당ㆍ
동사는 화장실, 정두는 소임여러 이칭 후대에 ‘동사’로 통일설두·대혜 정두소임 자청下心 공부에 정두소임이 최고〈선원청규〉 ‘대소변리’ 편 기술간시궐 - 씻어 말린 깨끗한 막대기출입시 입측오주(入厠五呪) 해야‘해우소’ 이름 경봉 스님이 붙여 선종사원에서 화장실을 ‘동사(東司)’라고 한다. 중국 발음으로는 ‘토우스’라고 한다. 동사는 7당 가람의 하나로서 일상생활 속에서 단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건물이다. 위치는 주로 납자들이 집중해 있는 승당 밑에 있는데, 한 곳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의 화장실처럼 사찰 여러 곳에 있다.
감원·오늘날 총무 소임선원총림의 모든 일 총괄고원은 선종사원의 본부〈감원(監院)〉감원(監院)은 오늘날 총무와 같은 소임이다. 당대(唐代)에는 ‘원주(院主)’ ‘원재(院宰)’ ‘사주(寺主)’라고 불렀고, 당말 오대(850-960)와 북송시대(960-1126)에는 ‘감원’이라고 불렀으며, 남송(1127-1279)·원대에는 ‘도사(都寺)’라고 불렀고, 명대에는 다시 감원, 또는 ‘감사(監寺)’라고 불렀다.감원은 동서(東序) 4지사(감원·유나·전좌·직세) 가운데 서열 제1위이다. 남송시대에는 감원 소임이 도사·감사·부사로 3분되었으나 여전
정혜쌍수 아니면 반쪽짜리 수행당송 시대 승당 구조 우리와 달라중국 선당은 온돌 없어사상적 영향권, 다른 문화승당(僧堂)을 ‘선불장(選佛場)’이라고도 한다. ‘부처를 선발하는 곳’이라는 뜻인데, 깨달은 이, 부처가 이 승당=선불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행처라면 어디나 다 선불장이라고 할 수 있다.붓다는 좌선을 중시했다. 물론 인도에서 좌선(명상)은 승당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무 아래, 석굴 등 어디서든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다 좌선당이고 선불장이다.깨달은 부처, 납자, 수행자는 승당=좌선당을 가까이 해야 한다. 특
수좌는?승당(선당)의?최고?책임자로서?납자들의?참선?수행지도?등?교육을?총괄하는?소임이다.?방장(주지)이?선종사원(총림)의?1인자,?최고?어른이라면,?수좌는?감원(행정?경제?및?운영?총괄)과?함께?2인자이다. ‘수좌(首座)’란?‘승당?내에서?앉는?자리(座)가?가장?첫?번?째(首,?으뜸)’라는?뜻이다.?그래서?‘제일좌(第一座)’?또는?‘좌원(座元,?자리가?으뜸)’이라고도?하고,?선당의?우두머리라는?뜻에서?선두(禪頭),?대중?가운데?상수(上首)이므로?수중(首衆),?또?판수(板首,?장련상?판의?첫째?자리)라고도?한다. 수좌는?선원의?수석?선승으로서?매우?중요한?자리이며,?동시에?매우?명예스러운?자리이기도?하다. 수좌는?방장의?역할을?대신하는?때도?많다.?예컨대?주지(방장)가?공무(公務)로?총림을?
임제이어?덕산·단하?등장 덕산,?임제보다?수위?높아 단하,?불상?뗄감으로?태워 관념의?벽?부수기?위한?방편 ‘임제할’?‘덕산방‘?중국천하를?평정하다 임제의현에?이어?두?번?째로?‘반권위,?허상?타파?운동’에?팔을?걷어?부치고?나선?선승은?덕산선감(德山宣鑑,?782~865)이다.?그는?‘덕산방’으로?유명한?선승으로?‘임제할’과?함께?기봉(機鋒,?예리한?방법으로?선의?경지를?보여주는?것)의?쌍벽을?이루었다.?임제는?‘할’로?덕산은?’방‘으로?중국천하를?평정했다.?그는?상당하여?다음과?같이?법문했다. “나의?여기에는?부처도?없고?법도?없다.?달마는?늙은?누린내?나는?오랑캐고,?십지보살은?똥통을?멘?놈들이고,?등각과?묘각은?파계한?범부고,?보리와?열반은?나귀를?묶는?흔한?말뚝에?불과하고,?
당대?조사선?철저한?수행집단 형식적?존재?부정-불상?폐지?등 〈임제록〉?선어록의?정상 선(禪)은?사상적으로?당대?조사선이?가장?우뚝했다.?당대선(唐代禪),?또는?조사선은?권위와?우상을?배격했다.?오로지?공(空)과?반야지혜의?관점에서?불상이나?형상·권위?등은?허상이라고?생각했다.?수행의?목적도?공(空)의?실현과?반야지혜의?체득,?그리고?본래?청정한?불성의?발현에?두었다. 당대?조사선은?철저하게?사상적,?정신적으로?무장되어?있는?결사(結社)?집단이었다.?종교적·신앙적인?집단이?아니고,?성불작조(成佛作祖,?부처와?조사가?됨)를?위한?수행?집단이었다. 육조혜능에서?발원하여?남악회양·마조도일·조주·남전·백장·황벽·위산,?그리고?임제할·덕산방·운문?간시궐?등?이른?바?조사선의?
? 한국禪,?송말·원대?선불교?답습 선불교에서?능엄주?독송은?잘못 남송?말,?원나라?선불교는?선종오가(五家)의?말류(末流)였다.?이?시기?선불교는?주술적인?티벳?라마교?등?갖가지?이물질이?유입되어?‘밀교적인?선(禪)’으로?변색·변질되었다.?음식으로?말하면?잡탕·짬뽕·비빔밥이?된?것이다. 그로?인하여?조계?혜능에서?발원한?조원일적수(曹源一適水,?한?방울의?물)는?전례가?없이?오염되어?탁류(濁流)가?되어?있었다.?상류인?당대?조사선과?송대?공안·간화선은?만가(輓歌)를?합창해야만?했다.?그?혼탁한?말류선(末流禪)이?고려?후기?원?지배기에?대거?우리나라에?유입되었다.?조선시대는?물론,?근현대까지도?오늘날?한국의?선불교는?남송?말-원대?말류선의?모습에서?변하지?않았다.?면면을?들여다보면?사상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