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殿’ 중요치 않은 당송시대 선종사원
‘佛殿’ 중요치 않은 당송시대 선종사원
  • 현불뉴스
  • 승인 2018.05.2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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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선종사원의 불전(佛殿)과 소임자 지전(知殿)

‘佛殿’은 석가여래 불을 모신 곳
당송 선종사원, 佛殿·불상 거의 없어
“목불·석불은 조각일 뿐”
佛殿, 남송부터 가람 핵심 당우
지전은 불전 소임, 향과 등 담당

 

(1) 불전(佛殿)

‘불전(佛殿)’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곳으로 ‘칠당(七堂, 일곱 개의 중요한 당우)’의 하나이다. 당송시대 선종사원에서는 주로 ‘불전(佛殿)’이라고 하고, 사찰에 따라서는 ‘대웅보전’이라고도 현판을 붙이기도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불전(佛殿)이라고 쓰지 않고(과거에도 쓴 경우가 없음) ‘대웅전(大雄殿)’ 또는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도 여전히 영파 천동사처럼 ‘불전’이라고 한다.

‘대웅전’, ‘대웅보전’이란 ‘위대한 분을 모신 전각(殿閣)’이라는 뜻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을 ‘대웅’이라고 하는데, ‘번뇌를 끊고 열반을 성취한 위대한 분’ 또는 ‘불교의 진리를 발견한 위대한 분’이라는 뜻이다. 불상 안치에서 ‘대웅전’이라고 하면 모셔져 있는 주(主)부처님 즉 주불(主佛)이 반드시 석가모니부처님이어야 한다. 석가모니불이 아니면 대웅전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또는 불전을 ‘금당(金堂)’이라고 한다. 대구 동화사가 그런 경우인데, 곧 ‘금색당(金色堂)’이라는 말로, 금색 부처님(불상)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흔히 본당(本堂)이라고 한다. 일본 나라에 있는 호류지(法隆寺·법륭사)는 일본 최초의 세계문화유산으로서, 특히 백제의 고승 담징 스님이 그렸다고 하는 ‘금당벽화(金堂壁畵)’로 유명한데, 아쉽게도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는 그 후에 다시 그린 것이다.

당송시대 선종사원에서는 불전이 없었다. 불전을 두지 않았는데, 적어도 당나라 말까지는 없었다. 대웅전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불상도 모시지 않았다. 이유는 목불이나 석불 등은 조각한 것일 뿐, 아무런 지혜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신앙의 대상일 뿐, 부처의 참모습, 진상(眞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최초로 율종으로부터 독립하여 선종사원을 만든 당 중기의 선승 백장회해(720~814)는 그 운영원칙인 청규(淸規)를 제정하면서 ‘불립불전(不立佛殿, 불전은 세우지 않고) 유수법당(唯樹法堂, 오직 법당만 세운다)’을 명문화하여 불변의 원칙으로 정했다.

선종사원에 다시 불전(대웅전)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당말을 지나 오대(五代) 송초 무렵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비로소 신자들을 위해 마지못해 불전이 세워지기 시작했지만, 그 위상은 우리나라 산신각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초라했고, 그 위치도 오늘날처럼 가람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모퉁이에 있었다. 말하자면 부속 건물에 지나지 않았다.

불전이 법당(법당은 설법당의 준말. 우리나라에서는 대웅전으로 혼칭하고 있으나 잘못임)과 함께 가람의 중심이 되어 크게 건축되기 시작한 것은 북송이 망한 후인 남송 때(1127~1279)이다.

북송이 금나라의 공격을 받아 수도 카이펑(開豊)이 함락되고 사실상 북송은 망했다. 황족 일부가 수도를 항주로 이전하여 금나라와 강화조약을 맺었는데, 이 때부터 남송이라고 한다. 금나라에 일격을 당하고 수모를 겪었던 송나라는 항주의 남송시대를 맞이하여 실지회복을 꿈꾸었다.

남송은 선종사원에서 황제의 수명장수와 국태민안을 기원했다. 남송시대 선종사원의 불전은 위상이 크게 바뀌어서 국가의 운명을 기원하는 중요한 원찰 즉 기원도량이 되었다. 남송시대의 불전은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황제와 그 국가의 운명을 비는 기도의 당우가 되었다. 위치도 가람의 한 모퉁이가 아니고 가람의 중앙인 법당 앞에 세워져서 그 위상적인 면에서는 법당을 능가하게 되었다. 남송의 불전은 400여 년의 설움과 홀대를 떨쳐 버리고 우뚝한 기상으로 가람의 핵심 당우가 되었다.

남송 때 항주 영은사와 만년사 편액은 ‘불전(佛殿)’이었고, 천동사는 석가불·아미타불·약사여래불을 모셨다고 하여 ‘삼세여래(三世如來)’라는 편액을 붙였다. 원대 이후에는 주로 ‘대웅전(大雄殿)’ 또는‘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는 편액을 많이 붙였는데, 우리나라도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다. 그 밖에 노사나전, 무량수전 등 주불(主佛)의 성격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불전(佛殿)보다는 ‘대웅전’ 또는 ‘대웅보전’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도 여전히 영파 천동사처럼 ‘불전’이라고 한다. 사진은 중국 영파 천동사 불전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불전(佛殿)보다는 ‘대웅전’ 또는 ‘대웅보전’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도 여전히 영파 천동사처럼 ‘불전’이라고 한다. 사진은 중국 영파 천동사 불전

 

(2) 지전(知殿)

지전은 6두수의 하나이다. 선종사원의 요직으로 불전(佛殿, 대웅전)을 담당하고 있는 소임이다. 대웅전의 향화(香火)와 기도, 의례(儀禮), 불공(佛供), 청소, 관리 등 불전에 관한 모든 것은 지전이 관장한다. 물론 청소 같은 것은 주로 지전 밑에 있는 행자들이 한다.

장로종색의 〈선원청규(禪苑?規)〉 4권(1103년) ‘전주·종두(殿主·鐘頭)’ 항목에는 그 직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전주(殿主, 지전)·각주(閣主)·탑주(塔主)·나한당주(羅漢堂主)·수륙당주(水陸堂主)·종두(鐘頭)는 전각 안의 먼지를 털어서 깨끗하게 해야 하며, 사용하고 있는 도구는 바르게 정돈해야 한다. 또 일(행사나 예불)이 있을 때에는 청소하고 향과 등불을 잘 정돈해야 하며, 그 후에는 방석 등 자리를 펴고 대중들이 들어와서 예배하기를 기다린다(殿主,塔主, 羅漢堂主, 水陸堂主, 眞堂主, 鐘頭, 拂拭塵埃, 列正供具, 以時?掃, 莊飾香燈. 參後展蓆, 以待人瞻禮(禪苑?規 4권 知殿)

또 〈칙수백장청규(?修百丈?規)〉 지전 항목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지전은 모든 전당(殿堂)의 향(香)과 등(燈)을 담당한다. 수시로 먼지를 털어서 탁자가 단정하고 깨끗해야 한다. 혹 바람이 불게 되면 반드시 향로 안의 향불을 꺼야 한다. 그리고 번각(幡脚, 번의 끝자락)을 묶어 올려 등촉(燈燭, 등불)에 가까이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주의 향전(香錢, 시주가 향을 올려 달라고 낸 돈, 즉 우리나라 불전과 같다)을 호용(互用)하지 말라. 불탄일(佛誕日)에는 부처님 목욕할 물을 끓여서 대중에게 공급해야 한다. 4재일(齋日, 초하루, 보름, 8일, 23일. 8일, 23일은 천자를 위한 축성일)에는 전각의 문을 항상 열어서 왕래하는 사람들이 우러러 보게 하라(知殿. 掌諸殿堂香燈. 時時拂拭塵埃, 嚴潔案. 或遇風起, 須息爐內香火, 及結起幡脚, 防顧使勿近燈燭. 施主香錢, 不得互用. 佛誕日, 浴佛煎湯供大. 四齋日開殿門, 以便往來瞻禮).”

북송시대 1103년에 편찬된 장로종색의 〈선원청규(禪苑淸規)〉에는 ‘전주(殿主, 佛殿의 主)’라는 소임이 나오고 있는데, 이 전주가 바로 지전이다. 그러나 북송시대 전주는 6두수에 속해 있지 않았다. 북송시대 전주(즉 知殿)은 ‘전주·종두(殿主·鐘頭)’ 등과 함께 묶어서 처리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중하위직으로 그다지 중요한 소임이 아니었다. 이것은 불전(佛殿, 대웅전)의 위상이 미미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전이 상위직인 6두수에 들어간 것은 남송 때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남송시대에는 불전의 위상이 급상승하면서 법당과 동등해졌다. 국운을 기원해야 하는 시대적 역할이 컸기 때문인데, 인생사도 그렇지만 전각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조명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주의사항으로서 “시주의 향전(香錢, 시주가 향을 올려 달라고 낸 돈)을 호용(互用)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있는 것으로 봐서 적어도 〈칙수백장청규〉가 편찬되던 원나라 때(1338년)에는 이런 문제점도 있었던 것 같다.

남송시대는 불전에서 외우는 염불문이 있었을까? 남송 후기에 편찬된 청규들과 원나라 시대 염불문 등을 고찰해 보면, 북송시대에는 주로 십불명(十佛名)을 외웠고(그 외에는 밝혀지지 않았음), 남송시대에는 능엄주, 반야심경, 관세음보살 보문품, 신묘장구 대비다라니, 십소주 등을 외웠다.

우리나라에는 지전(知殿)에 대한 이칭이 많다. 그리고 한자 표기도 다양하다. 흔히 ‘가질 持’를 써서 ‘持殿’이라고 쓰고 있는데 이것은 틀렸다. 지전스님이 대웅전에서 목탁을 잡고 있으므로 ‘持殿’이라고 써야할 것 같지만, ‘知殿’이라고 써야 한다. 여기서 ‘知’는 ‘담당하다’, ‘맡다’라는 뜻이다. ‘전(殿)’은 불전(佛殿), 대웅전을 뜻한다.

6두수 가운데 장경각 담당을 ‘知藏(지장)’이라 하고, 접빈 담당을 ‘知客(지객)’이라고 하며, 욕실 담당을 ‘知浴(지욕),’ 불전 담당을 ‘知殿(지전)’이라고 한다. 모두 ‘知’자를 쓴다.

고려, 조선시대에는 일반 관직에도 ‘知’를 써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등이 있었는데, 중추부를 담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광역 단체장인 ‘도지사(道知事)’도 한 도(道)의 일을 맡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전 외에 ‘노전(爐殿)’과 ‘부전(副殿)’이 있다. ‘노전(爐殿)’이란 향로전(香爐殿, 香閣)의 준말로서, 대웅전이나 적멸보궁의 불단을 맡은 소임이다. 즉 대웅전이나 적멸보궁에는 향로(香爐)를 관리하는 소임자가 거주하는 당우가 있는데 그 당우의 이름이 향로전(香爐殿, 香閣)이다.

또 부전이 있다. 부전은 불단과 큰방(衆寮) 관리를 맡은 소임이다. 운허 스님 편 〈불교사전〉(동국역경원, 1974, 개정판)에 따르면 “대웅전이나 적멸보궁의 불단을 맡은 소임을 노전(爐殿)이라고 하고, 큰방 불단을 맡은 소임을 부전(副殿)이라고 한다.”고 되어 있다. 부전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명칭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부전(副殿)’이라는 소임은 노전이나 지전스님이 혼자서 불공, 기도, 법당 관리 등을 하다 보니, 일손이 모자라 노전이나 지전스님을 보좌한다는 뜻에서 ‘부(副)’자를 넣은 것 같다. 우리나라 큰 절에서는 대웅전을 맡고 있는 노전 밑에 지전이나 부전을 두어 지장전, 관음전 등 작은 전각을 맡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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