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당은 범부가 부처 되는 곳
승당은 범부가 부처 되는 곳
  • 현불뉴스
  • 승인 2018.03.03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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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좌와 승당(僧堂=禪堂)

수좌는 승당(선당)의 최고 책임자로서 납자들의 참선 수행지도 등 교육을 총괄하는 소임이다. 방장(주지)이 선종사원(총림)의 1인자, 최고 어른이라면, 수좌는 감원(행정 경제 및 운영 총괄)과 함께 2인자이다.

‘수좌(首座)’란 ‘승당 내에서 앉는 자리(座)가 가장 첫 번 째(首, 으뜸)’라는 뜻이다. 그래서 ‘제일좌(第一座)’ 또는 ‘좌원(座元, 자리가 으뜸)’이라고도 하고, 선당의 우두머리라는 뜻에서 선두(禪頭), 대중 가운데 상수(上首)이므로 수중(首衆), 또 판수(板首, 장련상 판의 첫째 자리)라고도 한다.

수좌는 선원의 수석 선승으로서 매우 중요한 자리이며, 동시에 매우 명예스러운 자리이기도 하다.

수좌는 방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때도 많다. 예컨대 주지(방장)가 공무(公務)로 총림을 비우거나 입적으로 궐석일 때는 수좌가 주지를 대신하여 소참·조참·만참 등 모든 법문을 한다. 그 밖에 독참도 한다. 그만치 법력(法力) 면에서 존경받고 있는 위치이다. 다만 수좌가 법문을 할 때는 정식 설법 장소인 법당에서는 할 수가 없고 ‘조당(照堂)’이라는 건물에서 이루어진다. 법당에서는 주지(방장) 외에는 법문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참고: 방장은 주지의 堂號 명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직함으로 쓰지만 당송시대, 청대까지도 당호로만 쓰였다. 대웅전과 법당은 다르다. 대웅전은 부처님을 모신 곳이고, 법당은 설법당이다).

僧堂=禪堂 좌선하는 곳
우리나라로 치면 선방
수행·생활 겸용
법당-법문, 승당-선정
공동체생활 익히는 시험장

조동종 총지사 승당 내부.

승당(僧堂, 禪堂)

승당(僧堂)은 곧 선당(禪堂)으로서 좌선하는 곳이다. 선당의 책임자는 수좌이다. 선당은 우리나라로 치면 총림이나 선원 내에 있는 선방이다. 선당은 납자들의 수행 공간인 동시에 생활공간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당송시대에는 단순히 좌선만 하는 곳이 아니고 이곳에서 공양과 침식을 하는 등 숙식을 함께 한다.

승당은 불전(대웅전)·법당과 함께 칠당가람(七堂伽藍) 가운데 하나이다. ‘칠당’이란 선종사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일곱 개의 중요한 건물로서 산문(山門)·불전(佛殿, 대웅전)·법당(法堂)·승당(僧堂, 선당)·고원(庫院·주방, 부엌)·동사(東司, 화장실)·욕실(浴室)이다.

법당의 기능이 주지의 법문을 통하여 반야지혜를 갖추는 곳이라면, 승당의 기능은 좌선당으로서 선정(禪定)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지혜가 과도하면 관념적인 깨달음, 개념적인 깨달음, 말뿐인 구두선에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고, 선정이 과도하면 무사(無事) 안일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승당은 범부가 들어가서 부처가 되어 나오는 곳이다. 그러나 승당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모두가 다 깨달은 부처가 되어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나오기도 한다. 깨달은 부처가 되는 조건은 반야지혜와 좌선을 겸비해야만 되는데, 하나도 갖추지 못하는 수행자도 부지기수(不知其數)다.

수좌나 감원 등 중요한 소임자인 6지나 6두수를 제외한 모든 납자들은 기본적으로 승당에서 생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6지사와 6두수도 좌선과 공양은 반드시 승당에서 대중들과 함께 해야 한다. 승당은 좁은 공간에서 많은 대중들이 기거한다. 굉지정각이 방장으로 있을 당시 천동사 대승당에는 약 900명이나 기거했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따라서 승당은 대중 공동체생활을 익히는 시험장이기도 하다.

승당에 대한 이칭은 매우 많다. ‘선당(禪堂)’, ‘좌선당(坐禪堂)’, ‘선불장(選佛場)’, ‘운당(雲堂)’, ‘성승당(聖僧堂)’ 등.

‘선불장(選佛場)’이라는 말은 ‘부처를 뽑는 곳’이라는 말인데 승당에서 깨달은 부처가 나오기 때문이다.

운당은 운수납자가 모여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수행납자들의 모습이 구름처럼 물처럼 집착 없이 살아간다고 하여 ‘운수(雲水)’ ‘운수납자’라고 하는데, 보통 3개월이나 6개월 살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1년에 평균 두 번씩 구름처럼 집착 없이 떠돌아다닌다. 그것을 행각, 만행이라고 하는데, 사방으로 스승을 찾아 떠나는 것, 법담, 법거량을 통하여 절차탁마하는 것이 만행의 본래 의미이다.

또 승당을 ‘성승당(聖僧堂)’이라고도 한다. 승당 중앙에 사문 모습의 ‘승형 문수상(僧形文殊像)’을 모시기 때문인데 그 문수상을 ‘성승상(聖僧像)’이라고 한다. 보관(寶冠)을 쓴 여성형 문수상이 아닌, 삭발·좌선하고 있는 모습의 문수상을 모시는 것은 모범적인 수도승 모습, 문수보살의 수행 과정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사문(스님)으로서 수행하여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것을 인식시켜서 참선자로 하여금 분발심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다. 문수상을 모시는 것은 반야지혜를 상징한다. 총림에 따라서는 간혹 달마상이나 가섭존자상, 빈두루존자상, 포대화상을 모시는 곳도 있는데, 90%는 승형 문수상을 모신다.

승당의 여러 가지 이칭에서도 보았듯이 중국 사람들은 하나의 건물에 대해서도 이렇게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인다. 승당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붙이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연구자나 탐구자로서는 좀 애를 먹기는 해도 매우 재미가 있다. 이런 것을 통하여 그들의 문화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승당 가운데 가장 큰 승당은 남송시대 5산(五山) 가운데 첫째였던 항주 경산사(徑山寺) 천승각(千僧閣)이다. 지금 항주 경산사는 폐허가 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콘크리트로 거창하게 완공했다고 하는데, 간화선의 거장인 대혜선사(1089~1163)가 주지(방장)로 있을 때는 무려 1,700명이나 되는 납자들이 기거했다. 기존의 두 개의 승당 가지고도 부족해서 별도로 ‘천승각(千僧閣)’이라는 대승당을 신축했다(대혜종고가 만년에 경산사 주지로 있을 때). 이름 그대로 ‘천명이 기거할 수 있는 승당’이라는 뜻이다.

천승각은 대혜선사 입적 후 얼마 안 가서 화재로 전소되었다. 1236년에 다시 천승각을 재건했는데, 무너진 승당 건물 잿더미 속에서 854명의 좌선자 명단이 발견되었다. 그것을 계랍패(戒臘牌, 나무에 새긴 법랍패, 좌선패)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청중(淸衆, 대중)이 모두 854명이었다(淸衆, 共八百五十四員)”라고 적힌 기록이 발견되었다(張十慶, 〈중국강남선종사원건축〉, p.65, 湖北교육출판사, 2002).

나는 처음에는 ‘천승각(千僧閣)’이라는 명칭을 보고 “중국 사람들은 허풍도 너무 심해.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생각했는데, 허풍이 아니고 사실이었다. 실제 한 승당 건물에서 천명 가까이 기거하면서 수행한 것인데, 천승각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항주 영은사는 지금도 유명한 사찰인데 그곳 승당도 경산사 천승각에 버금갔다고 한다.

경산사 천승각의 규모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나로서는 갖고 있지 않지만, 경산사에서 100여리 떨어진 영파 천동사에도 대승당(大僧堂)이 있었다. 천동사는 남송5산의 세 번째였는데, 묵조선의 거장인 굉지정각(1091~1157) 선사가 주지(방장)로 있을 때 납자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서 대승당을 지었는데, 규모가 전면 200척(약 60미터), 측면 160척(약 48미터)으로 약 872평이나 되었다.

다시 말하면 단일 목조 건물 1층의 건평(建坪)이 872평이라는 말인데, 서울 조계사 대웅전이 155.7평이므로 조계사 대웅전보다 약 5, 6배나 큰 승당이었다. 큰 대들보가 두 개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대들보가 두 개나 되는 그와 같이 큰 건물은 없기 때문에 도무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장자(莊子)〉 ‘소요유편’에 보면 붕새가 큰 의지를 품고 남쪽으로 날아가는데,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고 날 때는 3천리를 활주하다가 날아오른다고 한다.

 

수행자의 개인적인 공간

이렇게 큰 승당이지만 수행자 한 명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고작해도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요즘으로 말하면 다다미 1장, 혹은 합판 1장 정도인데, 이 공간을 선어록에서는 ‘삼조연하 칠척단전(三條椽下 七尺單前)’이라고 한다. 미학적인 표현으로 1인의 수행자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인데, 이것은 우리나라 선방도 마찬가지이다.

이쯤에서 ‘삼조연하 칠척단전(三條椽下 七尺單前)’에 대한 선문답을 하나 감상하고 넘어가 보고자 한다.

원오극근(1063~1135)의 〈벽암록〉 25칙(蓮花庵主不住) 평창에는 “삼조연하 칠척단전(三條椽下 七尺單前)에서 다시 한번 참구해 보라”는 말이 나온다. 무슨 말일까? 먼저 원문과 번역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諸人, 若見得, 與蓮花峰庵主, 同參, 其或未然, 三條椽下, 七尺單前, 試去參詳看.

여러분들이 만약 (이 소식을) 알았다면 연화봉 암주와 함께 동참할 수 있지만, 만약에 혹 아직 그렇지 못하다면(체득하지 못했다면) ‘서까래 세 개 아래, 일곱 자의 단(單) 앞에서 자세히 한번 참구해 보시오.

‘삼조연(三條椽, 세 개의 서까래)’은 선당 천정에 있는 서까래(椽) 3개(三條)를 가리킨다. 서까래와 서까래 사이가 약 30센티 정도이므로 3개라면 가로 넓이가 1미터 가량 된다. 그리고 칠척단전(七尺單前)은 길이 일곱 자(약 2미터 10센티) 되는 좌단(坐單, 앉는 자리)을 가리킨다. ‘단(單)’은 곧 한 사람의 수행승이 좌선·취침하는 면적의 단위이다.

즉 여러분들이 만약 그 소식을 알았다면 연화봉 암주와 함께 본분사에 참여할 수 있지만, 만일 아직 알지 못했다면(其或未然), ‘삼조연하 칠척단전(三條椽下 七尺單前)’ 즉 지금 그대가 좌선, 취침, 공양하고 있는 그 자리에 앉아서 다시 한번 자세히 참구해 보라(試去參詳看)는 뜻이다.

‘삼조연하 칠척단전’은 겨우 한 사람의 납자가 누울 수 있는 정도의 좁은 공간이다. 말하자면 군대 내무반처럼 다다미 한 장 크기가 자기에게 주어진 좌선 공간이고 수행과 생활공간이다. 그러나 이곳은 납자로서 ‘인생사,’ 곧 ‘일대사 인연’을 해결하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만일 거기서 깨닫는다면(諸人若見得) 그 공간은 우주를 다 포용하고도 남겠지만, 깨닫지 못한다면(其或未然) 한 알의 겨자씨도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오늘날 우리나라 선원도 한 수행자가 좌선하고 잠자는 공간은 삼조연하 칠척단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위대한 부처가 탄생하고 조사가 탄생한다. 그 부처와 조사는 인류 정신사에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정신세계를 계승, 발전시키고 또 창조해 가고 있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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