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선종사원의 좌선

하루 네 번…‘四時坐禪’
정례화…북송 말~남송 초기
1103년까지 좌선, 개인 일임
좌선보다 선문답 과정서 오도
좌선은 번뇌 망념 소멸 위함
禪定보다는 반야지혜 강조

 

1. 좌선의 정례화

선원에서는 하루 네 번 좌선을 한다. 새벽·오전·오후·저녁. 하루 4회 좌선한다고 하여 ‘사시좌선(四時坐禪)’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중국·한국·일본이 똑같다.

그런데 뜻밖에도 청규에서 사시좌선이 제도화 된 것은 북송 말이나 남송 초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 즉 북송까지는 사시좌선이 정례화, 제도화하지 않았다. 당·북송시대에 좌선은 개인의 의향에 맡겼다. 즉 좌선을 하던, 하지 않던, 또는 좌선을 많이 하던 적게 하던, 그것은 개인의 자유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매우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나라 선원의 수행방법은 오로지 좌선인데, 선원에서 좌선을 정례화, 제도화하지 않고 개인의 의향에 맡기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당ㆍ북송시대까지는 적어도 장로종색 선사가 편찬한 〈선원청규〉 시대 즉 1103년까지는 좌선을 하던 하지 않던, 많이 하던 적게 하던 그것은 개인의 의향에 맡겼다.

중국 선종사에서 처음으로 선원총림의 법전인 청규는 〈백장청규〉이다. 오늘날 〈백장청규〉의 원본은 사라지고 그 대략만 양억(楊億, 974~1020)의 〈선문규식(禪門規式)〉에1) 전해오고 있는데, 거기에는 좌선에 대해서 하루에 몇 번, 몇 시간 좌선해야 한다고 규정해 놓지 않았다. 적게 하던 많이 하던, 또 횟수나 시간의 다소(多少) 여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개인의 생각에 맡겼다.

“입실(入室, 독참. 개별적인 지도)과 청익(請益, 거듭 가르침을 청하는 것)을 제외한 그 나머지(즉 좌선)는 수행자의 근태(勤怠, 부지런함과 게으름)에 맡긴다. 많이 하든(上) 적게 하든(下) 그것은 정해진 규정(常準)에 구애를 받지 말라.”(楊億), 〈禪門規式〉. “除入室請益, 任學者勤怠, 或上或下, 不拘常準.”(〈전등록〉 6권 백장회해 章 부록에 수록. 〈대정장〉 51, p.250c).

좌선에 대해서는 근태(勤怠, 부지런함과 게으름), 즉 개인의 생각 여하에 완전히 일임(一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청규인 장로종색의 〈선원청규〉 10권(북송 1103년 편찬) 〈백장규승송(百丈規繩頌)〉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는데, 여기서도 좌선 횟수나 시간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고 있지 않다. 하루에 몇 번, 또는 몇 시간 좌선하라고 규정하지 않았다. 많이 하든 적게 하든, 혹은 하지 않든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의지에 맡겼음을 알 수 있다.

그 대신 상당법문·조참(朝參, 아침법문)·만참(晩參, 저녁법문)·독참(獨參, 개인지도)·보청(울력)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고, 청익(請益, 별도 질문)에 대해서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누구든 공적인 이유 없이 빠지면 벌칙이 가해졌다. 그러나 좌선에 대해서는 그 어떤 규정도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 것인가?

당ㆍ북송시대까지 좌선이 정례화 되지 않았던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많은 울력, 고된 울력으로 인하여 좌선을 정례화 할 수 없었던 점이 있고, 하나는 반야지혜를 중시했던 조사선의 입장에서는 좌선보다는 반야지혜·정견·정법안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여러 가지 어록에서도 나타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남악마전(南嶽磨塼) 공안’이다.

남악회양(南嶽懷讓)선사가 열심히 죽어라하고 좌선하고 있는 제자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의 암자(전법원) 앞에 가서 벽돌을 갈았다고 하는 ‘남악마전(南嶽磨塼) 공안’이다. 당 현종(玄宗) 개원(開元) 연간(年間, 713-741), 마조도일은 전법원(傳法院)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날이면 날마다 부처가 되고자 좌선(坐禪)을 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스승 남악회양이 인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마조도일에게 가서 물었다.

“대덕이여! 좌선을 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大德坐禪圖什)?” 마조가 대답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입니다(圖作佛).”

남악이 벽돌 한 개를 가지고 그의 암자 앞에 가서 돌에다 갈았다. 그러자 마조가 와서 “스님, 벽돌을 갈아서 무엇에 쓰려고 하십니까?” 남악이 말했다. “이걸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고 그러네(磨作鏡).”

마조가 말했다. “스님,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磨塼豈得成鏡耶.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노장이 망령이 들었나)” 이에 남악이 말하기를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 수 없다면, 좌선을 해서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坐禪豈得成佛耶)?”

마조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세를 바로 하고 정중한 말투로 여쭈었다.

“스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남악이 말했다. “사람이 수레를 모는 것과 같아서,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때려야 하겠는가, 소를 때려야 하겠는가?” 마조도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30방을 맞은 것이다.

남악이 계속 말했다.

“그대는 앉아서 선(禪)을 배우는 것인가, 앉아서 부처를 배우는 것인가? 만일 앉아서 선을 배운다면 선은 앉고 누움에 있는 것이 아니요, 만일 앉아서 부처를 배운다면 부처는 일정한 모양이 없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무주(無住)의 법에는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다. 그대가 만일 앉아서 부처를 이룬다고 한다면 이는 부처를 죽이는 것이며, 만일 앉는 모양에 집착해 있다면 그 이치를 달성치 못하리라”

〈전등록〉등 전등사서에는 깨달은 선승들의 오도기연(悟道機緣, 오도의 계기)이 매우 많이 나온다. 약 1700여 가지나 된다. 그런데 전부 살펴보지 않았지만, 좌선을 하다가 깨달았다고 하는 선승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일대일의 선문답을 통해서 깨달았고, 혹은 영운도화(靈雲桃花)나 향엄격죽(香嚴擊竹)과 같은 기연(機緣)을 통해서 깨달았음을 알 수 있다. 좌선을 하다가 깨달았다는 선승은 하늘에 있는 별 따기 만큼이나 찾아보기 어렵다.

2. 좌선(坐禪)의 정의

그렇다고 좌선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좌선에 대하여 보리달마는 돈황사본 〈이입사행론〉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만약 번뇌 망념[心]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좌선하는가/ 좌선할 필요가 없다(若心不起, 何用坐禪)”

좌선을 하는 것은 번뇌 망념을 억제 소멸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번뇌 망심[心]은 구체적으로는 ‘도거(掉擧)’를 말한다. 도거(掉擧)는 ‘떠오른다’는 뜻으로, 좌선한다고 앉기만 하면 번뇌 망상 등 잡념과 알음알이, 사량분별심 등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앉아 있지만 갖가지 생각, 공상·망상·회상(回想) 등 번뇌 망상의 소굴 속에 앉아 있는 것이 도거이다. 산란(散亂)한 마음, 잡념 등 마음을 흔드는 것들은 모두 번뇌 망념이다.

남종의 조사 6조 혜능은 〈돈황본 단경〉 ‘좌선(坐禪)’ 편에서 “마음이 모든 경계를 만나도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고, 본성을 직시하여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不亂]를 선(禪)이라 한다(於一切境界上 念不起爲坐, 見本性不亂爲禪).”고 정의하고 있는데, 특히 ‘견본성부란위선(見本性不亂爲禪)’은 달마의 정의에 이어 지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다르다.

실제 조사선의 비조라고 할 수 있는 남악회양과 마조도일 시대가 되면 좌선이나 선정보다는 반야지혜를 더 강조하게 된다. 좌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반야지혜(선의 안목, 정법안)였기 때문이다. 또 깨달음의 정의도 좌선이나 선정(禪定)보다는 반야지혜를 이루는 데 있었다. 상당법어·조참·만참, 그리고 선문답이나 법거량, 독참 등 모두가 그 초점은 반야지혜를 이루는데 맞추어져 있다. 똑똑하지 않으면 사선(邪禪)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이것은 〈반야심경〉에서 지혜를 강조하여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 수행에 의지했기 때문에 아뇩다라 삼먁삼보리(최상의 깨달음)를 얻게 되었다(三世諸佛, 依般若波羅密多, 故得阿?多羅三?三菩提)”고 설하고 있는 것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즉 조사선에서는 ‘선지혜 후좌선(先智慧 後坐禪)’ 방법인데, 이런 관점은 청규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좌선을 정례화, 제도화하지 않은 것이라고 거의 확신에 가까운 생각을 한다.

남송시대에 이르러 좌선이 하루 네 번으로 정례화, 제도화 되었지만, 실제 좌선시간은 아무리 많아도 5시간을 넘지 못한다.

남송시대 간화선과 쌍벽을 이루면서(실제는 묵조의 굉지정각이 더 숭앙받는 고승이었음. 그러나 간화선에서는 대혜선사라고 함), 지관타좌(只管打坐, 좌선)를 수행방법으로 삼았던, 천동사 굉지정각의 묵조선에서도 하루 좌선 시간은 아무리 많아도 다섯 시간을 절대 넘지 못했다. 맡은 바 소임, 법문, 울력, 약간의 개인적인 시간 등을 제외하면 실제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4시간 반에서 5시간 정도 외에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야좌(夜坐) 제도를 두었는데, ‘야좌(夜坐)’란 취침 시간이 지난 밤 9시 이후의 개인적인 좌선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더 좌선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취침 시간 이후에 조용히 밖에 나가서 좌선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야좌는 그다지 많지 않다.

오늘날 우리나라 선원에서는 보통 하루 10시간 이상 좌선을 한다. 이는 달마 이래 선불교 1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 선종사원이나 일본 선종사원에서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그 하나 때문에 한국 간화선을 높게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루 10시간 정도 좌선을 한다면, 깨달은 선승, 깨달은 부처가 적어도 당송시대나 남송시대 보다는 배 이상 출현해야 하는데, 천분의 일(一)도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남악회양선사는 마조도일이 하루 종일 좌선에 매진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중요하기 때문에 거듭 인용함) “그대는 앉아서 선(禪)을 배우는 것인가, 부처를 배우는 것인가? (생략) 그대가 만일 앉아서 부처를 이룬다고 한다면 이는 부처를 죽이는 것이며, 만일 앉는 모양에 집착해 있다면 그 이치를 달성치 못하리라” 그것은 자칫 부처인양 흉내를 내는데 불과할 뿐이다. 부처란 반야지혜가 작동하지 않으면 그것은 부처가 아니다. 그것은 범부 중생이다.

1) 양억(楊億, 974~1020)의 〈선문규식〉을 ‘고청규서(古淸規序)’라고도 한다. 백장화상이 만든 〈백장고청규〉의 서론 격이기 때문이다. 양억은 송초의 독실한 선종의 거사로, 수산성념(首山省念)의 제자인 광혜원련(廣慧元璉)의 제자이다. 성은 양(楊), 휘는 억(億), 자(字)는 대년(大年), 시호는 문공(文公). 양문공(楊文公). 〈대혜서장〉 왕장원(汪壯元) 1장에 나오는 양문공(楊文公) 대년(大年)이 바로 양억이다. 998년 진종(眞宗) 때 한림원의 학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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