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처라면 어디나 僧堂
수행처라면 어디나 僧堂
  • 현불뉴스
  • 승인 2018.03.1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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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승당(僧堂=禪堂)의 기능과 역할, 내부구조
남송 오산십찰도(五山十刹圖)에 수록되어 있는 항주 경산사(山寺) 승당(僧堂) 장련상(長連床). 안 쪽에 천자문 순서로 천(天)·지(地)·현(玄)·황(黃)·우(宇)·주(宙)·홍(洪)·황(荒) 8자가 적혀 있는데, 한 칸 씩으로, 가로 폭은 약 90-100센티 된다. 이것이 한 납자가 생활하는 공간으로, 장련상 하나에 모두 8명이 생활한다. 안쪽 벽면 맨 위쪽은 창문이고, 아래는 개인 사물함이다. 윗 단에는 개인 용품을 보관하고, 하단에는 이불과 베개를 넣는다.
남송 오산십찰도(五山十刹圖)에 수록되어 있는 항주 경산사(山寺) 승당(僧堂) 장련상(長連床). 안 쪽에 천자문 순서로 천(天)·지(地)·현(玄)·황(黃)·우(宇)·주(宙)·홍(洪)·황(荒) 8자가 적혀 있는데, 한 칸 씩으로, 가로 폭은 약 90-100센티 된다. 이것이 한 납자가 생활하는 공간으로, 장련상 하나에 모두 8명이 생활한다. 안쪽 벽면 맨 위쪽은 창문이고, 아래는 개인 사물함이다. 윗 단에는 개인 용품을 보관하고, 하단에는 이불과 베개를 넣는다.

 

정혜쌍수 아니면 반쪽짜리 수행
당송 시대 승당 구조 우리와 달라
중국 선당은 온돌 없어
사상적 영향권, 다른 문화


승당(僧堂)을 ‘선불장(選佛場)’이라고도 한다. ‘부처를 선발하는 곳’이라는 뜻인데, 깨달은 이, 부처가 이 승당=선불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행처라면 어디나 다 선불장이라고 할 수 있다.
붓다는 좌선을 중시했다. 물론 인도에서 좌선(명상)은 승당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무 아래, 석굴 등 어디서든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다 좌선당이고 선불장이다.
깨달은 부처, 납자, 수행자는 승당=좌선당을 가까이 해야 한다. 특히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번뇌망상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승당과 친해야 한다. 지혜는 칼날처럼 번득거려도 좌선(선정)을 하지 않으면 간혜(乾慧, 지능만 반짝반짝)가 되어 구두선을 면치 못한다. 말로만 깨달았다고 큰소리칠 뿐, 행동은 중생이나 마찬가지이다.
선승으로서 인격을 갖추고 번뇌 망상을 극복하자면 좌선, 선정 공부는 필수적이다. 선정수행을 하지 않으면 행위를 무시하는 이른바 막행막식의 무애선으로 빠질 확률이 99%다. 우리나라 선승들이 걸핏하면 ‘음주식육이 무방반야’라고 하면서 계행을 무시하는 것은 이 때문인데, 큰 착각이다. 부처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또 앉아만 있고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관조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무용지물이다. 도거(棹擧, 망상)를 잠재우지 않는다면 그런 좌선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반야지혜를 무시하면 안 된다. 지혜를 공부하지 않으면 어두워진다. 그것을 ‘맹선(盲禪)’ ‘맹선자(盲禪者)’라고 하고, 또 ‘암선(暗禪)’ ‘암증선사(暗證禪師)’라고 하는데, 그냥 앉아만 있을 뿐, 지혜(智慧)와 안목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맹선은 아무리 좌선을 하고 노력해 봐야 점잖은 수행자는 되어도 정법안을 갖춘 안목 있는 선승은 되지 못한다. 법문도 할 줄 모른다. 해도 한두 가지 외에는 불가능하다. 지혜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조사선의 맹주인 마조도일, 임제의현, 조주선사, 운문선사 같은 이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선승들이다. 두 개의 날개를 모두 갖추면 날 수 있고 하나는 날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육조단경〉과 〈대승기신론〉, 보조국사 지눌의 〈보조법어〉 등에서는 정혜쌍수를 강조했다. 선정과 지혜를 같이 수행하지 않으면 반쪽 기능을 갖춘 선승에 불과할 수박에 없다는 것이다.

당송시대 선방의 내부 구조
중국 당송시대 선원총림의 승당(선당) 내부 구조는 어떤 모양일까? 그리고 선당에서 생활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시대는 이른바 선의 황금시대로 남전, 마조, 황벽, 백장, 위산, 조주, 임제, 운문, 원오극근, 대혜, 천동정각 등 탁월한 선승들이 무수하게 배출되었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들도 모두 선당에서 나온 선지식이다.
승당(僧堂)은 납자들의 생활공간인 동시에 좌선하는 곳이다. 중국 당송시대 승당 즉 선방의 내부 구조는 우리나라 선방 구조와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나라 선방은 평면의 온돌 구조로서 바닥은 장판이다. 그 위에서 좌복을 깔고 벽을 보고 좌선을 한다.
그러나 당송시대 선종사원의 선방은 온돌구조가 아니다. 가운데는 벽돌이 깔려 있는 복도이고 사방 벽 쪽은 여러 개의 평상(平床)으로 연결되어 있다. 납자들은 모두 여기서 공양과 좌선, 취침을 하는데, 이 평상을 ‘장련상(長連床)’이라고 한다. 여러 개의 긴 평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언듯 보면 목조 마루 같지만 실제는 여러 개의 평상이 연결되어 있다. 또 이것을 ‘연상(連床)’, ‘장상(長牀)’, ‘장련탑(長連榻)’, ‘장련단(長連單)’ ‘좌상(坐床)’ 등이라고도 한다.
도판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장련상 하나의 크기는 가로 폭은 약 7, 5미터-8미터 가량 되고, 세로 길이는 약 2미터 가량 된다. 그리고 벽 쪽에는 도판과 같이 천자문 순서로 천(天)·지(地)·현(玄)·황(黃)·우(宇)·주(宙)·홍(洪)·황(荒) 8자가 적혀 있는데, 오늘날 1, 2, 3, 4, 5, 6, 7, 8과 같다. 이것이 한 칸 즉 한 납자가 생활하는 공간으로서 약 90-100센티가 된다.

 

장련상 벽 쪽 상단에는 도판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창문(창호지 사용)이 있고 하단에는 사물함이 상하 2단으로 설치되어 있는데, 위 칸에는 잡화(雜貨)를 넣고, 아래 칸에는 이불 등 침구를 넣는다. 이것을 ‘단상(單箱, 상자, 박스)’이라고 한다.
그리고 앞 천정에는 가사(袈裟)를 걸 수 있도록 의가(衣架, 架라고 함. 횃대, 옷걸이)가 설치되어 있다. 당대(唐代) 승당에는 사물함이 없었기 때문에 개인용 도구는 모두 걸망에 넣어 벽에 걸어 두었다. 방부가 허락되면 걸망을 벽에 걸어 두었기 때문에 입방을 ‘괘탑(掛塔)’이라고 한 것이다.
사물함 밑에는 법랍에 따른 계랍패(戒臘牌, 수계 나이 즉 법랍패), 즉 명패(名牌)를 붙인다. 그 자리를 ‘명단(名單)’, ‘단(單)’, ‘발위(鉢位, 발우를 두는 자리라는 뜻)’, ‘피위(被位)’, ‘좌위(座位, 앉는 자리)’, ‘단위(單位, 명패)’라고 한다. 객승이 입방을 하면 법랍에 따라 계랍패(명패)를 붙이고, 해제하고 나가면 명패를 떼어 낸다. 그것을 ‘기단(起單, 명패를 뗀다)’이라고 한다.
그리고 선당 출입구 쪽에는 소형 장련상을 설치한다. 이곳은 6지사ㆍ6두수 등 소임자들이 좌선하는 곳이다. 소임자들은 모두 개인 거처가 있고, 승당에서는 좌선과 공양만 하기 때문이다. 또 소임자들은 수시로 공무(公務)나 사중(寺中)의 일로 출입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련상 안쪽(벽쪽)은 갈포(褐袍)를 깔아서 취침할 수 있게 했고, 앞쪽(복도 쪽)은 목판인데 공양할 때는 여기에 발우를 펴놓고 한다. 좌선할 때는 장련상 위에 포단(蒲團, 방석)을 깔고 한다. 대혜 선사 서간문인 〈서장(書狀)>에는 ‘포단상사(蒲團上事, 포단 위의 일)’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곧 좌선을 뜻한다.
중국 선원총림 가운데 가장 컸으며, 남송시대 최대 총림인 경산사·영은사·천동사 등 남송 5산(五山)의 선당 내부도를 보면, 사방 외에도 중간에도 장련상(長連床)이 여러 줄 설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데, 1,000명이나 되는 많은 납자들을 수용하자면 중간에도 설치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선방도 대중이 많으면 가운데에 한두 줄 자리(中座)를 더 만드는데, 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큰 선당의 경우는 전당(前堂)과 후당(後堂)으로 나눈다. 전당과 후당의 구분은 선당 안에 모셔져 있는 승형문수상을 중심으로(대략 반) 출입구 쪽인 앞쪽을 ‘전당’이라 하고, 뒤쪽을 ‘후당’이라고 한다. 또 선당 안쪽을 내당(內堂), 출입구 쪽을 외당(外堂)이라고 한다.
선원에 대중이 많을 경우에는 전당수좌(前堂首座)와 후당수좌(後堂首座)를 둔다. 대중이 많아서 수좌 1명으로는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간혹 선어록을 보면 전당수좌, 후당수좌라는 명칭이 있는데, 각각 전당과 후당을 관리하는 수좌이다.
선당 내에는 좌선하는 자리도 정해져 있다. 주지(방장)가 좌선하는 자리는 복도의 승형문수상 앞에 선의(禪椅, 의자)가 있는데, 그 의자에 앉아서 좌선한다. 수좌ㆍ서기ㆍ전좌 그리고 청중(淸衆, 납자들)은 선당 안쪽, 즉 내당에서 좌선한다. 지사(知事) 가운데 감원ㆍ도사(都寺)ㆍ감사(監寺)ㆍ유나(維那)ㆍ부사(副寺)ㆍ직세(直歲) 그리고 6두수(六頭首) 가운데 지객ㆍ지욕ㆍ지전ㆍ방장시자(侍者)ㆍ객승은 모두 외당(선당 출입구 쪽)에서 좌선한다.
중국 선당은 온돌이 없다. 따라서 겨울이 되면 한기(寒氣)를 막기 위하여 화로를 설치한다. 화로는 선방 중앙 좀 넒은 공간에 바닥을 조금 파고 설치한다. 연료는 숯(炭)이고, 이 숯을 담당하는 소임을 탄두(炭頭)라고 한다. 숯을 피워서 냉기를 제거하는 정도이다. 건물이 높고 커서 숯 가스로 인한 두통 같은 것은 없다. 가을에는 음력 10월 1일에 설치하여 다음 해 2월 1일에 철수한다.
승당에 화로를 설치하는 것을 ‘개로(開爐)’라고 하고 철거하는 것을 폐로(閉爐)라고 하는데, 설치하고 나서는 방장으로부터 법문을 듣는다. 화로를 설치한 후에 듣는 법문을 ‘개로상당(開爐上堂)’이라고 하고, 철거한 후에 듣는 법문을 ‘폐로상당(閉爐上堂)’이라고 한다.
현재 중국 영파 천동사와 아육왕사 선당(禪堂)은 청대에 건축되었지만, 선당 내부는 당·북송시대 선당 형식이라고 할 수 있고, 그 가운데서도 당대 선당 형식이다. 그리고 일본 후쿠이(福井)에 있는 영평사(永平寺)와 요코하마(橫浜)에 있는 총지사(摠持寺, 조동종), 임제종 향악사(向嶽寺) 등 일본 선종사원의 선당 내부는 모두 남송시대 선당 형식이다.
당ㆍ북송시대 선당 형식과 남송시대 선당 형식의 차이는 벽 쪽에 설치된 사물함의 유무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사물함이 없으면 당·북송시대 형식의 선당이고, 있으면 남송시대 형식의 선당이다.
우리나라 선원 가운데 중국 전통 승당과 같은 곳은 한 곳도 없다. 온돌 문화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선사상적으로는 중국선의 우산 권 속에 있으면서도 문화적으로는 거의 별도로 전개된 점에 대해서는 향후 더 고찰해야할 부분이다. 그래도 비슷한 곳은 칠불암 아자방(亞字房)이라고 할 수 있다. 아자(亞字)을 보면 가운데는 복도이고 벽 쪽은 복도보다 조금 높은데, 여기가 장련상이 놓여 있는 자리이다.
반면 일본 조동종 영평사, 총지사(摠持寺), 동복사, 묘심사, 남선사 등 일본 선종사원의 선당은 당송시대 승당 구조 그대로이다. 후쿠이에 있는 영평사는 겨울이면 영하 10도까지 내려가지만 여전히 선방 내부 구조는 복도와 장련상 구조의 선방이다. 온돌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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