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때는 욕실, 마음 때는 좌선당서
육신의 때는 욕실, 마음 때는 좌선당서
  • 현불뉴스
  • 승인 2018.04.28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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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선종사원의 욕실(浴室)과 지욕(知浴)

당송 때부터 대중목욕탕 운영
욕실엔 발다바라 존자상 모셔
동사, 선당과 함께 삼묵당 하나

 

(1) 욕실(浴室ㆍ목욕탕)

당송시대 선종사원에는 대중 공용 목욕탕이 있었다. 당시 선원총림은 적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천명 이상의 대중들이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목욕을 하지 않으면 ‘땀 냄새’ ‘피부병’ ‘벼룩’ ‘이’ 등이 생기고, 선당의 청결을 유지할 수 없고 대중들의 건강도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목욕탕을 장로종색의 〈선원청규〉(1103년 편찬)와 동양덕휘의 〈칙수백장청규〉(1338년 편찬)에서는 ‘욕실(浴室)’이라고 하고 있다. 천 년 전 당ㆍ송시대부터 목욕탕이 있었으니 선종사원은 문화적으로 매우 우수한 문화를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일반에서는 고위층만 집안에 목욕시설이 있었고, 일반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욕실은 칠당 가람의 하나로서 생활 문화적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당우(건물)이다. 욕실의 위치는 원래는 산문에서 보면 오른쪽 편 고원(庫院ㆍ주방, 식자재 창고, 종무소) 아래에 두었는데, 때로는 그 반대편인 승당 아래나 또는 뒤쪽에 있는 경우도 있다. 욕실의 위치가 이와 같이 일정하지 않은 것은 급수 조건 때문일 것이다. 즉 경사가 완만하여 물이 잘 흘러 들어오는 곳을 고려하여 위치를 정하다보니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는 물을 공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2) 욕실의 다른 이름

욕실을 ‘선명(宣明)’이라고도 한다. ‘선명(宣明)’이란 깨끗하고 상쾌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욕실에는 발다바라 존자상을 모신다. 우리나라 사찰 향적실(부엌ㆍ공양간)에서 조왕대신을 모시는 것과 같다. 그 까닭은 이렇다.

〈능엄경〉 5권에는 발다바라 존자가 16명의 보살들과 함께 욕실에 갔다가 나왔더니 몸과 마음이 아주 선명(宣明)해졌다는 법화(法話)가 나온다. 여기서 연유하여 욕실을 ‘선명(宣明)’이라 하게 되었고, 욕실에 발다바라 존자상을 모시게 된 것이다. 육신에 묻어 있는 때(垢)는 목욕을 통하여 선명(宣明)하게 제거했고, 마음의 때(번뇌)는 좌선당에서 제거하여 항상 내외명철(內外明徹), 안과 밖을 선명(宣明)하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 욕실을 ‘향수해(香水海)’라고도 한다. 목욕탕의 물은 ‘향수(香水)의 바다’라는 뜻인데, 너무 의미가 아름답다. 항주 경산사, 영은사, 영파 천동사 욕실 편액은 향수해이고, 지금 일본 영평사 욕실 편액도 향수해(香水海)이다. 욕실의 물은 깨끗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향수(香水)’라고 미칭했으니 명작(名作)의 대가는 모두 선승들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선승들은 항상 화엄의 ‘일체유심조’ 관점에서 사물을 대했던 것 같다.

일본 영평사 욕실. 현판이 ‘향수해(香水海)’라고 붙어 있다.
일본 영평사 욕실. 현판이 ‘향수해(香水海)’라고 붙어 있다.

 

(3) 목욕하는 날

선종사원에서 목욕은 계절에 따라 좀 다른데, 겨울에는 5일에 한번, 여름에는 ‘임한(淋汗ㆍ 샤워)’이라고 하여 매일같이 했다. 〈칙수백장청규〉 ‘지욕(知浴)’ 장(章)에는 “동절기에는 5일에 한 번(4일·9일·14일·19일·24일·29일) 목욕을 하고, 하절기에는 매일 목욕(사워)을 한다(〈칙수백장청규〉, ‘知浴’. “凡遇開浴, 齋前掛沐浴牌. 寒月五日一浴, 曙天每日淋汗.”-대정장 48권, p.1131b)라고 나온다.

여름에는 매일같이 샤워를 한 것은 무덥고 땀이 많이 나기 때문인데,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매일같이 목욕을 하지 않으면 피부병 등이 발생하게 되고, 또 피부병이 전 대중들로 전염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일같이 목욕을 하도록 했으니, 선종사원은 번뇌[塵埃(진애)]가 잠시라도 머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목욕 시작을 ‘개욕(開浴ㆍ욕실의 문을 열다)’이라고 한다. 목욕은 점심 공양이 끝난 직후에 시작하는데, 그에 앞서 공양하기 전에 목욕패(목욕을 알리는 패)를 승당과 중료(대중방) 앞에 내다 건다. 그리곤 공양 후 종(鐘)과 판(板)을 쳐서 곧 목욕이 시작됨을 알린다.

욕실에서의 예법은 매우 까다롭다. 욕실은 삼묵당(三默堂ㆍ욕실, 동사-화장실, 승당)의 하나로 일절 잡담을 할 수 없다. 특히 선종사원은 무언(無言)의 세계이다. 그런 곳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승의 정신이 아니다. 또 탕(湯=) 속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함부로 목욕물을 끼얹어서도 안 된다.

또 욕실에서 옷을 빨거나 이를 잡아서도 안 되고 발가벗고 욕실 안을 왔다 갔다 하지 말아야 하고, 사용한 도구는 반드시 제자리에 두고, 벗은 승복은 잘 정리해 두고, 항상 깨끗하게 사용할 것 등 지켜야 할 규칙이 매우 많다.

목욕을 하는 순서도 정해져 있다. 대중을 우선시했던 당ㆍ송ㆍ원대에는 목욕의 1순위가 선당의 수행승(즉 衆僧)들이었다. 2순위는 종두(鐘頭)ㆍ채두(菜頭)ㆍ수두(水頭) 등 하급 소임자들과 행자들이고, 3순위가 주지와 6지사 등 상급 소임자들이었다. 그런데 명대에 와서는 순서가 주지ㆍ6두수ㆍ6지사ㆍ단월거사(신도)ㆍ수행승(대중) 순으로 역전되었다.

(4) 지욕(知浴)

욕실 책임자(소임)를 당ㆍ북송시대에는 ‘욕주(浴主)’라고 했고, 남송시대 부터는 ‘지욕(知浴)’이라고 했다. ‘욕주(浴主)’나 ‘지욕(知浴)’은 6두수의 하나로서 상위 소임이다. ‘知’는 ‘담당’ 혹은 ‘맡다’라는 뜻으로 고려 조선시대에도 각 부서의 상위 담당자 관직 앞에 ‘知’자를 많이 붙였는데, 일테면 중추부 상위직을 ‘지중추원사(知中樞府事)’라고 한 것과 같다. 오늘날 각 도(道)의 최고 책임자를 ‘道知事(도지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이들(욕주, 지욕)을 흔히 ‘욕두(浴頭)’라고 부르고 있는데, 욕두는 지욕 밑에서 잡일을 돕는 소임으로 주로 행자들이 맡는다. 욕두 행자는 한 두 명이 아니고 5-6명이나 된다. 목욕탕의 잡일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전통사찰의 욕실(목욕탕)을 볼 수가 없다. 고려, 조선시대에는 당연히 있었겠지만, 지금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교토에 있는 임제종 총본산인 묘심사(妙心寺) 그리고 교토 오산 가운데 하나인 동복사(東福寺)에는 400년 된 전통 선종사원의 욕실(浴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교토시(京都市)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데, 특히 일본에 가시는 선승들은 묘심사 욕실을 꼭 보셨으면 한다. 관람료 500엔이고 욕실 내부까지 들어가 볼 수가 있다.

묘심사 욕실 실내를 살펴보니 한 번에 약 20명 정도가 목욕할 수 있었고, 큰 확()을 설치하여 온수(溫水)를 데웠고, 몸을 씻을 때는 큰 통에 온수를 옮겨 바가지로 떠서 쓰도록 되어 있었다. 물은 밖에서 대나무 수로를 통하여 저절로 흘러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확탕(湯) 위에는 사우나 방이 있는데, 5~6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크기였다. 또 욕실 한 쪽에는 탈의실 겸 휴게실도 있었다.

일본에서 편찬된 〈선학대사전〉 흑백 도록 26쪽에는 남송시대 중국 영파 천동사의 욕실 평면도가 나오는데, 확인해 보니 확()의 위치 등이 묘심사 욕실 내부와 거의 같았다.

여담이지만 일본에는 1700년 초부터 대중목욕탕이 있었다. 대중목욕탕을 ‘센토(錢湯, 돈 내는 목욕탕)’라고 하는데, 일본 최초의 대중탕을 묘심사에서 운영했다. 위치는 묘심사 앞의 대로(大路)변에 있었다. 이 대중탕은 문을 열자마자 인기 폭발이어서 날마다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고위관료나 돈이 많은 사람들은 집안에 목욕탕을 두었지만, 일반인들은 여름이 아니면 목욕할 수가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보다 서민들도 목욕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복지 차원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선종사원에는 목욕하는 날은 정해져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동절기에는 5일마다 한 번씩, 하절기에는 매일 목욕을 했다(寒月五日一浴, 曙天每日淋汗). 그런데 율장 사분율에는 15일에 한 번 목욕을 하게 되어 있고, 우리나라도 해인사의 경우 동(冬)하절기에 관계없이 15일에 한 번씩 목욕을 한다. 필자가 70년대 초에 해인사에 있을 적에도 15일에 한번 씩 목욕을 했다(음력 14일과 29일에 함).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에 중국 선종사원에서 ‘겨울에는 5일에 한 번 목욕을 한다’는 것도 율장의 규정과는 너무나 상이(相異)해서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하절기에는 매일같이 목욕(淋汗, 샤워)을 했다는 사실이다. 지금과 같이 샤워 시설이나 목욕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그 시대에, 겨울에는 5일에 한 번, 여름에 매일 같이 목욕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이는 분명 청규상의 착오라고 판단했다.

그러던 차에 2008년 7월 초에 중국 영파, 항주 등에 있는 선종사원을 답사하게 되었다. 항주와 영파는 남송시대 5산인 영은사, 정자사, 경산사, 천동사, 아육왕사 등이 있는 곳이다. 7월 1일에 갔는데, 이 지역 여름은 정말 찜통이었다. 7월 초면 초여름인데도 온도는 37℃였고 습도는 80%가 되었다. 땀이 그야말로 물처럼 줄줄 흘렀다.

하루에도 러닝셔츠가 5-6번씩 젖었는데, 첫날을 답사하고 나서는 너무 더워서 답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도 비행기를 타고 항주까지 왔느니 체념하고 5일 동안 답사했는데, 그때 비로소 선종사원에서 여름에는 매일같이 목욕을 하게 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 안내자의 말은 더욱 기가 막혔다. 한 여름 8월에는 45℃까지 치솟고 1년에 약 230일 정도가 흐리거나 비가 와서 습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적어도 100명에서 많게는 천명이 수행하는 좌선당에서 매일 같이 샤워를 하지 않는다면 땀 냄새가 진동할 것이고, 또 몸이 땀으로 끈적끈적해서 앉아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화두 참구가 되겠는가? 정신과 육체가 맑고 청결해야 화두참구가 되는데, 샤워를 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욕실에서 목욕을 할 때는 많은 규칙이 있다. 여름에는 욕실에 들어가서 10~20분 이상 있을 수 없고 겨울에도 30분 이상 있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많은 대중들이 목욕을 하자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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