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조계종, 사회를 품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존엄”

조계종 사회노동위, 6월 22일 사회적 약자 초청 법회
진우 스님 법사로 성소수자·참사 유족 등 40명 동참
“불교는 교훈 아닌 실천…평등사회위해 등불 들겠다”
간담회 경청 진우 스님 “소수자 목소리 대변” 약속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지몽 스님)는 6월 22일 서울 봉은사 법왕루에서 ‘평등세상을 위한 사회적 약자 초청 특별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법회에는 사회적 약자 40명을 포함해 사부대중 1000여 명이 함께했다.

“빵 한 조각 생산이 사람 목숨보다 중요해진 현실…열악한 조건에 내몰린 새로운 시대 필수 노동자, 장애 짊어진 가족, 성소수자 이들은 ‘사회적 문제’가 아닌 지금 여기 함께 숨쉬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말없이 고통받는 이들의 삶에 작은 위로와 연대 불빛을 밝히기 위한 법석이 마련됐다. 법사로 나선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현실이 나아질 수 있도록 사회 각계와 함께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지몽 스님)는 6월 22일 서울 봉은사 법왕루에서 ‘평등세상을 위한 사회적 약자 초청 특별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법회에는 전세 사기 피해자, 청소노동자, 콜센터노동자, 요양보호사, 세월호·제주항공 참사 유족, 아리셀 전지공장 화재 사망자 유족, 태안화력발전소 사망 노동자 유가족, 쪽방촌 활동가, 이주 노동자, 고공 농성 노동자, 성소수자 및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활동가 등 사회적 약자나 이들을 위해 일하는 활동가 40명이 초청됐다. 총무원 부실장 스님들과 봉은사 신도 등 1000여 명이 자리를 함께하며 소리없는 응원을 보냈다.

진우 스님은 이날 함께한 자리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등불 하나 돼 고요한 위로가 돼주길 서원했다.
진우 스님은 이날 함께한 자리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등불 하나 돼 고요한 위로가 돼주길 서원했다.

법상에 오른 진우 스님은 먼저 “보이지 않는 고통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돌봄과 성찰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오늘 우리가 이 법당에 모인 진정한 이유”라며 법회의 의미를 설명했다.

진우 스님은 부처님이 오래전 이 땅에 와서 설한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을 언급하며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부처와 같은 존엄한 가치를 지니며 그 어떤 생명도 결코 하찬지 않다”고 했다며 “이는 교리나 철학에 머무는 철학에 머무는 것이 아닌 지금 여기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의 뿌리와 미래를 지켜주는 진리”라고 강조했다.

기술과 속도,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숱한 생명들이 배제·무시·희생되고 있는 시대에 안타까움을 표한 스님은 “문명의 그림자 속에서 더 이상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 불교는 그들에게 등불이 돼야 한다”면서 “불교는 교훈이 아니라 실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통 받는 이를 향한 자비심, 그들을 대신해 외치는 용기가 바로 보살행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진우 스님은 “부처님께서 설한 팔만사천 법문은 결국 누구도 버려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위대한 마음공부의 실천”이라면서 “곁에 있는 이웃을 위해 등불을 들어야 한다”고 설했다.

이날 법문에서 진우 스님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불교계 입장을 표하기도 했다.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을 언급한 스님은 “불교는 생명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종교”라면서 “불교는 누구보다 먼저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쳐왔고, 그것은 정치적 행동이 아니라 수행의 실천이자 부처님 자비의 시대적 응답”이라면서 제정에 더욱 힘을 싣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진우 스님은 또 바깥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마음’이라는 작은 우주를 다스리는 수행을 할 것을 조언했다. 밖으로는 정의롭고 따듯한 공동체를 만들고 안으로는 평화롭고 자비로운 마음을 지닌다면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강조한 스님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지금 여기를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비로소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마음 하나를 바꾸면 세상 풍경이 달라지고 이것이 불교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곁에, 그 누구의 삶에도 부처님은 항상 함께한다”면서 “오늘 우리가 함께한 이 자리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등불 하나 돼 고요한 위로가 돼주길 바란다”고 서원했다.

진우 스님은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과 함께 이주노동자 치료 및 긴급구제 기금 500만원을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진우 스님은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과 함께 이주노동자 치료 및 긴급구제 기금 500만원을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동참자들은 발원문을 통해  빈곤과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염원했다.
동참자들은 발원문을 통해  빈곤과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염원했다.

이날 법회에서 진우 스님은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과 함께 이주노동자 치료 및 긴급구제 기금 500만원을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법회 동참자들은 불교 성소수자 모임 ‘불반’의 김재현 총무가 대표 낭독한 발원문에서 “우리 모두는 이름만 다를 뿐 서로를 위해 각자의 역할을 하는 한 몸 한 생명 같은 소중한 인연”이라며 부처님 지혜와 자비로 빈곤과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 상생과 공존으로 행복한 공동체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했다.

법회 후에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간담회가 마련,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법회 후에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간담회가 마련,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법회 후 진우 스님은 참석 사회적 약자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제주항공과 화성 아리셀 등 산재로 인한 유가족, 돌봄 감정 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 가족, 홈리스, 전세 사기 등 10여개 분야를 대표한 이들의 절절한 호소가 이어졌다.

이호림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공동대표는 먼저 불교계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과 지지에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국 사회가 충분히 관용적이고 포용적지 않음에 안타까움을 표한 이 대표는 “우리는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 하고, 숨기고 싶은 않은 것”이라면서 “(불교계가)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때까지 사회적 목소리를 계속 내주길 바란다.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함께해 달라”고 호소했다.

김태윤 화성 아리셀 유가족 대표는 참사 후 힘든 싸움 중 투쟁 현장에 유가족과 함께 해준 사회노동위 스님들에게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느끼고 위안을 받았다”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 대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명확한 진상 규명”이라며 “이는 재발방지를 넘어 여기 있는 분들의 안녕과도 관련된 일이 될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준화 제주항공 유가족 협의회 유가족은 “2024년 12월 29일 사고로 159명이 사망하며 현재 진상규명특별법이 제정됐지만 아직도 많은 유가족이 무안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문제점을 조사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으로, 이렇게 모든 것을 덮고 간다면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예비 유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일침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민 신분과 처우 개선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주민 250만, 이주노동자 150만 시대에 농어촌 및 도심에서 이주민 없이 생산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무 조건으로 강제 노동을 하고 있다”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역할을 인지하고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법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량화 동작구 아트센터 전세사기 피해자 대표는 청년인구의 80% 이상이 임대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며 청년들의 삶에 힘이 돼 줄 것을 호소했다. 전세사기 피해자 약 3만명 중 대부분이 젊은 청년층임을 밝힌 김 대표는 “피해자 지원법이 제정됐다고 하지만 실효성이 떨어져 결국 피해자들이 대출감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지고 있다”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정부가 청년들의 인간다운 삶에 외면하지 않도록 조계종에서도 힘을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다양한 이야기를 경청한 진우 스님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직업들이 새로 생겨나지만 불안정한 노동연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우리사회가 자본, 이윤의 확대보다는 공동체가 건강하게 더불어 살아가도록 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동체의 가치를 강조한 진우 스님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 사회 공동체가 발전하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하는 모습들에 감사하다”면서 “종교, 특히 불교는 공동체 가치를 더 알려 나가고 어려운 조건에 있는 사람들과 더 소통하고 함께 연대해 나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약속도 잊지 않았다. 진우 스님은 “13년 동안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참사현장을 비롯 다양하게 연대활동을 해왔다”면서 “총무원장으로서 현 위치에서 사회 각계 지도층에게 우리 사회 소수자들을 위한 목소리를 대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임은호 기자 imeunho@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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