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언제 처방받느냐에 따라 달라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엔 기본 조제료
土 오후 1시 이후, 공휴일·日 30% 가산
만 65세 이상 1만원 넘길 때 20% 부담해
처음 약국을 방문하는 손님의 조제와 복약은 언제나 적당한 긴장감을 준다. 특히 다른 약국에서 옮겨 온 고객은 더더욱 그렇다. 그날도 그러했다.
“어머니, 저희 약국엔 처음 오셨네요. 오늘 처방받으신 혈압약 잘 지어 드릴게요.”
“아. 여긴 다니던 약국보다 약값이 비싸네. 젊은 약사라 그런가?”
“어머니, 왜 그런지 같이 한 번 생각해 볼까요? 혹시 약이 추가로 들어가거나 바뀐다고 병원에서 말씀하시던가요?”
“아니, 똑같아.”
“이번엔 석 달분인데 혹시 전에는 두 달분 받으신 것 아닌가요? 일수가 달라졌나요?”
“아니, 아니라고!”
“아, 오늘은 토요일이니 주말 가산이 붙어서 그런가 봐요. 지난번에는 토요일에 약을 지으신 게 아니셨죠?”
“요일이 달라졌다고 약값이 비싸지는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런 것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똑같은 처방전으로 대한민국 어떤 약국에 가든, 같은 금액으로 약을 지을 수 있다.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약을 짓는다면 말이다.
약국에서 조제하는 약값은 약의 가격과 조제료의 합으로 구성되는데, 약의 가격은 나라에서 일률적으로 정해지므로 모든 약국에서 동일하다. 그럼에도 약값이 달라지는 경우는 조제료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가장 낮은 기본 조제료로 책정된다. 평일 오후 6시 이후부터 다음날 오전 9시 전이나 토요일 오후 1시 이후, 공휴일, 일요일에는 기본 조제료에 30% 가산이 붙는다.
평일, 주말 관계없이 밤 12시 이후부터 새벽 6시까지는 심야 가산이 적용돼 조제료의 100%가 가산된다. 다른 이들의 퇴근 시간에 업무를 보는 약사에 대한 나라의 작은 배려라고 볼 수 있겠다. 회사에도 야근 수당이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토요일 오후 약을 짓거나, 평일 오전 9시 이전이나 오후 6시가 넘어서 약을 지으면 약값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유용한 팁 하나를 드리자면, 아침에 병원 진료를 보고 오전 8시 50분쯤 약을 짓게 되면, 즐겨보는 유튜브를 10분 정도 시청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9시 이후 접수하는 것이 좋다. 몇 분 차이로 약값이 조금이나마 저렴해지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이 만 65세 이상 고객의 약값이다. 만 65세 이상이 되면 약값이 싸진다고 막연히 알고 있거나, 모든 약을 무조건 1천원만 내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간혹 계신다. 이것은 일부 사실이지만 또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
약값의 총액이 1만원 이하로 책정될 때에는 약값이 3천원이든, 8천원이든 본인 부담은 동일하게 1천원이다. 하지만 약값 총액이 1만원을 넘으면, 약값의 2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약값 총액이 1만원을 넘는지 여부가 약값이 1천원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간단한 진통제나 짧은 기간의 감기약은 1천원으로 지을 수 있지만, 처방 일수가 길어지고 고가의 약이 포함되면 약값이 확 오르는 경우가 그런 이유로 생기는 것이다.
이제는 어느 약국에서는 천원에 약을 지어 주는데 어느 약국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오해하시지는 말아 달라. 약이 달라져 총 약값이 1만원을 넘었기 때문에 본인 부담금이 다르게 책정된 것뿐이다.
이 밖에도 몇 가지 예외가 존재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약값은 나라에서 의료보험 지원을 해 주는 급여 약품 품목에 한한다.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의 약은 약국마다 가격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한 번씩 나라에서 정해 주는 약의 가격이 오르거나 내릴 때는 이전 달과 이번 달의 약값이 달라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때는 일반적이지는 않으니 여기서 따로 다루진 않겠다. 이외에도 많은 변수가 있으므로 약값이 궁금할 때에는 단골 약국에 왜 이렇게 나왔는지 물어 보자. 약사님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 줄 것이다.
혹시나 정말로 조제받은 약값이 약국에 따라 달라졌다면, 어디에선가 약값을 할인해 주고 있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약값을 할인해 준 착한 약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는 것일까? 아니다.
그 약사가 고의든 아니든 법을 위반했으니, 보건소나 해당 관할 구역에 신고해 바로 잡아야 한다. 약사법 제23조(처방의 변경, 수정 금지)와 제44조(업무의 준수) 조항에 의거, 약사는 정해진 기준대로 조제·투약을 해야 하며, 임의로 금액을 낮추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환자 유치를 목적으로 본인 부담금을 할인·면제하는 행위는 불법이며, 이는 적발 시 업무정지 15일 이상, 과징금 부과, 보험청구 제한 등의 행정처분 대상이 된다. 조제료 할인은 생각보다 큰 불법행위라는 것이다.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약사에게 내 건강과 직결된 약을 받고 싶은 고객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약값과 관련된 경험 중 가장 놀라운 점은 그 누구도 이전과 비교해 약값이 비싸졌다고 하지, 싸졌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약국 벽에 걸린 약사 면허증에 맹세컨대, 약국 생활을 하는 13년 동안 그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정말 놀랍지 아니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