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쌓아두지 말고 제때 복용해야
조제 가루약 보관 기한은 1개월
건조 시럽 경우 보관 기간 14일
시럽 약 소분은 개봉 후 28일
비가 내리던 어느 날, 한 손님이 약국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화가 잔뜩 난 듯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던진 가루약 스틱이 복약대를 맞고 사방팔방으로 튀어 올랐다. 노랑, 분홍, 파랑의 약포지가 색색이 불꽃놀이처럼 흩어지는 모습을 보니 당황스러웠다. 주섬주섬 흩어진 약포지를 주워 담으며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기분이 상하셨을까요?”
“애들 약을 지었는데, 다 굳은 약을 주면 어떡해! 약이 딱딱해서 물에 녹지도 않잖아!”
“언제 아이 약을 지으셨는데요?”
“작년 이맘때 정도?”
말문이 턱 막혔다. 아무도 이분에게 조제 받은 약의 보관 기간을 알려 주지 않았나 보다. 아니, 듣고도 잊으셨을지도 모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경 쓰지 않으면 신경 쓰기가 참 쉽지 않다.
약국에서 지은 약에도 보관 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사실 조제 받은 약을 집에서 얼마나 보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일률적으로 정해 놓은 법적인 조항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약의 보관 기한은 법 규정이 아니라 권고사항으로 안내가 되는데, 오늘은 그중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미국 FDA의 권고사항에 대해 안내해 드리고자 한다.
방금 언급한 손님이 던져 버린 가루 조제약의 적정 보관 기한은 조제 후 1개월 이내이다. 가루약은 어떤 약이 섞여 들어갔는지 알 수 없으므로 보관 기간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설정해 1개월 정도로 이야기한다. 가루약은 서너 종류의 알약이나 과립을 함께 갈아서 나눠 포장하기 때문에 잘 뭉치는 성분이 포함될 수도 있고, 조제하는 날의 온도와 습도가 약의 뭉침 정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고온 다습한 여름 장마철에 가루약을 조제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약이 굳고 뭉치기도 한다. 따라서 한 달 보관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며, 소아용 가루약은 처방 받은 기간 동안 꾸준히 남김없이 복용하는 것이 좋다. 특히 가루약은 보관 후 다시 먹이지 않는 것이 좋다. 약의 보관 기간뿐만 아니라 그때그때 불편한 증상이 달라, 다음에 약이 필요할 때 이전에 조제 받은 약이 일치할 확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조제약 중 시럽의 경우, 작은 시럽 병으로 소분한 약은 조제 후 28일 이내에 모두 사용하는 것이 좋다. 시럽 병을 개봉하지 않은 밀봉 상태로 받은 경우는 개봉일로부터 28일 이내에 약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 좋다.
가루를 물과 섞어 시럽을 만드는 건조 시럽의 경우에는 보관 기간이 일반적으로 14일 정도로 일반 시럽보다 짧으며, 항생제의 경우 종류에 따라 7일부터 14일까지 보관 기간이 다르다. 항생제는 종류에 따라 냉장 보관이나 실온 보관처럼 조건이 달라질 수 있으니 약국에서 약을 받을 때 복약 지도를 주의 깊게 듣고 보관 기간과 조건을 반드시 숙지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약국에서 시럽에 스티커 라벨을 붙여 해당 내용을 잘 알려 주고 있으니 꼭 확인하고 기억하도록 하자.
혈압약이나 고지혈증약은 플라스틱 약통째로 받거나, 여러 종류의 약을 한 포씩 비닐 포장지에 담아 받기도 한다. 플라스틱 약통을 미개봉 상태로 받는 경우 개봉 후 1년 이내 복용을 권장하며, 유효 기간이 1년 이내로 남아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유효 기간 내에 복용해야 한다.
약통에 따로 약을 덜어 받은 경우는 약을 받은 이후 6개월 안으로 보관하는 것이 좋다. PTP 형식으로 낱개 포장된 알약의 경우에는 대부분 표기된 유효 기간까지 보관과 복용이 가능하다.
비닐 포장지에 약을 모두 함께 포장해 조제 받은 경우, 일반적으로 6개월 이내 보관하며 그 안에 복용하는 것을 권장한다. 연고류를 처방 받거나 구매 시 연고 그대로 받은 경우는 개봉 후 6개월 이내, 병원에서 연고류를 처방 받아 연고곽에 담아 조제 받은 경우, 조제 후 30일 이내 사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안약, 안연고의 경우에는 개봉 후 28일 이내 사용해야 하며, 뜯어 쓰는 일회용 안약의 경우에는 뚜껑을 닫는 것이 가능할지라도, 보존제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용 후 즉시 폐기해야 한다.
지금 당장 약장으로 달려가 문을 열어 보자.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약 봉투와 시럽들이 빼꼼히 고개를 들고 당신을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위 내용을 참고해 조제 받은 지 오래된 약들은 과감하게 폐기하도록 하자. 아무리 좋은 음식도 유효 기간이 지나면 상하여 독이 되는 것처럼 약에도 정해진 유효 기간이 있다.
부처님과 관련된 일화 중 ‘독화살의 비유’라는 것이 있다. 한 사람이 독 묻은 화살에 맞았는데, 그는 “누가 쐈나, 어떤 나무로 만든 화살대인가, 깃은 무슨 새의 것인가”를 다 알아야 화살을 뽑겠다고 고집하는 이야기다. 이는 본질과 무관한 집착으로 시간을 끄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라는 메시지이다. 언제 사용할지 모르는 약에 집착해 약통에 담아 두고 보관하며 시간을 끄는 것보다 당장 받은 약을 잘 챙겨 먹고 남김없이 잘 복용하는 것이 지금 증상을 치료하는 방법이란 뜻이다. 우리 옛말에도 일맥상통하는 유명한 말이 있다. “아끼다 똥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