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강소연의 수행 다이어리] ‘숨을 본다’는 것은? 

15. 아나빠나 삿띠 1

몸이라는 껍데기는 버리고, 공기의 흐름을 본다. ⓒ강소연
몸이라는 껍데기는 버리고, 공기의 흐름을 본다. ⓒ강소연

숨을 본다는 것은? 현실로 돌아오는 작업이다. 우리는 몸이라는 현실을 무시하고, 평생을 개념 속에 산다. 병이라도 들어야 그제야 몸이 있는 줄 알고 주의를 기울인다. ‘숨쉬기’는 깨어 있을 때나 잠잘 때나,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실하게 운영된다. 하지만 우리는 숨을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 왔고 또 살고 있다. 숨 관찰은 몸 관찰의 시작이다. 개념에서 벗어나 ‘법(法: 담마)’을 자각하는 시작이다. ‘법’이란 붓다의 가르침·진리·실상(實相: 만물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등 다양한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실상(또는 실재實在)으로서의 법’을 말한다. 개념(빤야띠)과 실재(빠라마타)의 구분은 무아(無我)라는 진리를 터득해 가는 데 있어 기본이자 필수이다. 

벌거벗은 숨, 체험하기
수행 초보자에게 호흡을 보라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평생을 개념(나와 너, 사회와 세상, 가족과 직장, 실패와 성공 등)으로 살았기 때문에 갑자기 실재(호흡)를 보라고 하면 무엇을 봐야 하는지 헤맨다. 그래서 ‘개념’을 ‘개념’으로 타파하는, ‘무(無)의 개념’을 ‘공(空)의 개념’으로 타파하는 사마타 수행을 먼저 해야 한다. 사마타 수행을 통해 ‘의식’으로부터의 분리가 일어나야, 그 분리가 일어난 ‘고요한 자리’에서 관조(觀照: 통찰지로 사물의 실상을 꿰뚫어 봄)가 가능하다. 스스로를 ‘덩어리’로 의식하고 살았기에, 덩어리인 채로의 ‘의식의 분리’가 우선 필요하다. 에고(자아)를 동반하는 의식은 ‘식(識)’, 에고로부터 분리된 아는 마음을 ‘지(智)’라고 우선 지칭하고 이 글을 전개한다. 세분화된 수준과 성품에 따른 다양한 전문 용어들이 있지만, ‘무명의 마음(식)’과 ‘반야의 마음(지)’, 먼저 이 두 가지만 구분하여 언급한다.

수행 초보였을 때 헤매며 고군분투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선은 덩어리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내가 숨 쉰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나’라는 주체와 ‘호흡’이라는 객체로 있고, 그것을 ‘이미지[상相]’로 인식하며 수행을 했다. 그러니까 눈을 감아도 이미지로서의 내 몸체와 호흡 기관, 그리고 투명한 숨이 들락날락하는 식으로 인식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한동안의 노력과 답답함 속에 급기야 “호흡을 상으로 인식하고 있는데요?”라고 법사님께 호소했다. 지나고 보니 이것 자체가 큰 발전이었다. ‘상’으로서, 즉 ‘개념’으로서 호흡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실재’로서의 호흡을 볼 준비가 된 것이다. 먼저 ‘호흡’이라는 ‘용어’부터 버릴 필요가 있다. 

‘개념’을 넘어 ‘실재’로
‘들락날락하는 공기의 흐름’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석가모니 붓다께서도 “들숨 날숨에 대한 알아차림 경(아나빠나 삿띠 경: Anpnasati sutta)”이라고 이름 붙이셨다. [‘아나빠나’란 ‘들임(아나 na: 받아들임)과 버림(빠나 pna: 내보냄)’이란 뜻이다.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오고 나간다는 것이다. ‘호흡’이라는 개념적 용어 자체가 수행의 큰 방해가 되기에, 공기의 ‘들어옴과 나감’이라는 ‘있는 그대로의 무상하게 움직이는 현상’으로 보는 것이 좋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눈으로 “나는 호흡이니 숨이니 그런 단어 몰라. 태어나 보니 서걱서걱 몸뚱이가 코를 통해 공기를 풀무질하네”라며, 숨을 생전 처음 보듯이 보자.

‘실재하는 숨의 증거’를 찾자! 오염된 인식의 작용인 ‘내가 숨을 본다’고 착각하고 수행하면 백전백패. 이미지(개념)로 호흡을 본다는 착각을 넘어서면, 소리로 숨을 인식하는 단계가 온다. 거칠게 들어오고 나가는 숨소리를 한동안 알아차리다 보면, 의식에서 놓여난 무의식의 호흡(자연 호흡)으로 전환된다. 그러면 부교감 신경의 영역인 폐의 자동 펌프질이 신기하게 느껴지고, 이것이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동물이 잠잘 때 서걱서걱 풀무질하듯 공기가 빨려 들어갔다 내뿜어지기를 반복하고, 이에 따라 가죽 부대는 팽창했다 꺼지기를 연이어 반복한다. 

공기가 코·기관지·횡경막·아랫배 등을 순차적으로 통과할 때, (보통 한쪽 콧구멍으로만 숨이 통과하는 듯 느껴지는데) 어깨부터 부풀어 올랐다가 그 부풂으로 인한 단단한 느낌이 흉부를 경유해 아랫배를 거치며 밀물과 썰물로 도미노 현상을 일으킨다. 들어오는 공기는 서늘하고 나가는 공기는 따듯하다. 그저 관조할 뿐, 관여할 수 없다. 공기의 흐름(들숨과 날숨)과 몸은 서로 기대어 존재하고, 그 어느 것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둘 다 있지만 둘 다 없다. 둘이 만났을 때 일어나고 꺼지는 느낌의 생멸은 무상하다. 그리고 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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