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 송마나의  시절인연]  한 계단 한 계단, 부처님을 향하여 

해당 삽화는 생성형 AI를 통해 제작했습니다.
해당 삽화는 생성형 AI를 통해 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도시든 시골이든 산이 가까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산에 오르고 싶다면 반나절에도 다녀올 수 있다. 7월의 산속은 어둑하고 서늘하다. 짙푸른 잎이 우거져 터널을 이룬 숲길을 걸으면 빛은 조용히 스며든다. 산은 언제나 마음속의 앙금을 가라앉히고, 신생의 풋풋함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요즘 산봉우리 아래에는 어김없이 사다리가 놓여 있다. 수많은 등산객이 몰리면서 자연 훼손을 줄이기 위한 조처일 것이다. 이제는 사다리를 오르지 않고는 산 정상에 이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산꼭대기 아슬아슬하게 걸린 사다리를 올려다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난다. 수직으로 길게 뻗은 사다리의 끝이 허공에 걸려 있는 듯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다리를 바라보다가 두 눈을 질끈 감는다. 그만 돌아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사다리만 오르면 정상에 이를 수 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사다리의 맨 아래 단에 첫발을 디딘다. 조심스레 두 번째 단으로 발을 옮긴다. 오직 다음 단만 바라본 채 한 걸음씩 오른다. 

얼마큼 올랐을까. 살며시 뒤를 돌아본다. 발아래로 산 능선이 펼쳐지고 멀리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다. 낭떠러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듯하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심장은 쿵쾅거린다. 위를 봐도, 아래를 봐도 아찔하다.

이제 내려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단숨에 사다리의 꼭대기까지 뛰어오를 수도 없다. 삶은 그렇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종종 조급한 마음에 목표를 향해 성급히 달려가려다 넘어지고 쓰러져 낙심한다. 그러나 좌절과 시행착오는 한 걸음을 위한 준비일 수 있고, 우리 안의 성찰을 일깨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다시 몸의 균형을 잡고 한 걸음씩 사다리를 기어오른다. 떨리던 다리에 힘이 붙고, 흐느적거리던 팔에도 단단함이 생긴다. 마음을 다잡고 다음 계단을 향해 스스로를 밀어 올린다. 어느새 불안이 사라지고, 내가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는 것조차 잊은 채 산꼭대기에 가까워진다.

인간은 세상에 내던져진 흙덩어리가 아니다. 먼지를 털고 일어나 스스로를 빚어가야 하는 존재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자유의 힘으로 한 계단씩 오르다 보면 마침내 정상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 계단을 오르면 한 계단의 내가 되고, 두 계단을 오르면 두 계단의 내가 된다. 사람은 올라가는 만큼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창조해가는 존재다. 인간이 자신을 창조할 때 세상 또한 함께  창조된다.

인간이 마땅히 오를 곳은 저 높은 부처님이 머무는 자리다. 우리는 인생의 사다리를 올라야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그 길은 단번에 도달할 수 없다. 오직 한 걸음씩 성실하게 정진하며 나아가야 한다. 날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경전을 읽고 계율을 지키며 수행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오르다 보면 마침내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환희심을 느끼게 된다. 그 순간 내가 곧 부처가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도봉산(道峰山) 정상으로 향하는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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