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활짝 피었다. 벚나무는 몸속의 꽃을 밀어내 마른 가지마다 봄을 꽃피운다. 벚꽃이 만개한 길은 봄빛으로 들끓는다. 넘쳐흐른 봄빛은 겨우내 얼었던 땅의 껍질을 벗겨내고 숨구멍을 열었다. 생명이 약동하는 길을 걷는다. 끝없이 이어진 길이 하얀 웃음꽃을 터뜨린다.
벚꽃 길 너머로 바둑판처럼 구획을 나눈 시민 농장에 목련꽃도 피었다. 농장 입구에 서 있는 목련 한 그루가 수많은 등불을 켜고 환하게 불을 밝혔다. 봄빛을 가득 머금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꽃봉오리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 땅 위로 푸릇푸릇 머리를 겨우 내민 푸성귀들이 목련꽃을 쳐다보며 희망의 웃음을 짓는다. 봄바람에 까르륵 까르륵 웃음소리가 농장에 가득하다.
개는 꼬리를 흔들고 고양이는 가르랑거릴 뿐 웃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웃는다. 웃음은 기쁨과 유머, 농담과 장난기로 인해 일어나는 신체적 반응이다. 보들레르는 웃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웃음이라 했다. 인간은 TV에서 바보연기를 하는 코미디언을 보고 웃고, 타인이 빙판길에서 엉덩방아를 찧는 것을 보고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서 베르그송은 웃음을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세상에 활력과 여유를 불어넣는 사회적 제스처로 보았나 보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늙은 수도사 호르헤는 웃음을 싫어한다. 웃음은 자유로움과 쾌락을 상징하므로 경건해야 하는 신앙생활과 위배된다고 믿었다. 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가운데 ‘희극’이 나오는 책장에 독을 발라, 그 곳을 읽는 수도사들을 죽게 한다. 웃음은 순수한 인간적 반응이면서도 심리적, 종교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아닌가.
당나라 때, 약산(751~834) 화상은 깜깜한 밤에 언덕을 걷다가 갑자기 나타난 보름달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가 산 밑 마을까지 들렸다고 한다. 약산은 왜 웃었을까?
봄기운이 가득 차 꽃이 피어나고, 나비가 날아들고, 새가 노래를 부른다. 봄이 오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웃음이 얼어붙었는지. 일체가 차가운 땅속에 들러붙어 고통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세상의 허무와 내 자신의 허무가 함께 얼어붙었다. 눈을 뜨지 못하고 어둠에 매달려 나의 고유한 얼굴을 보지 못했다.
나는 왜 태어나서 이런 고통을 맞이해야 하는가? 왜 나는 죽어야 하는가? 인간은 ‘왜’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느라 살을 저미고 뼈를 깎는 찬바람과 흰 눈을 견디며 긴 긴 겨울밤을 지새운다. 이런 깊은 밤을 지새워야만 밝은 보름달을 보고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름달이 떠올랐다는 것은 어두운 겨울을 뚫고 웃음꽃이 피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고뇌와 속박에서 벗어나 진리의 빛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마음의 눈을 뜨면 보름달이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약산의 웃음소리는 깨달음의 표현이다. 법(法)을 깨달으면 웃음은 그냥 터져 나온다. 나의 웃음소리가 신생의 설렘으로 봄바람에 흩날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