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사찰국수 기행 스님이 웃는다] 8. 우담 스님의 시래기 국수

구수한 시래기 ‘일품’… 할머니 추억도 ‘한 스푼’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우담 스님의 시래기 국수.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우담 스님의 시래기 국수.

“할머니와의 추억이 있는 국수가 있어요. 그런 추억도, 음식도 많아요.”

전화기 너머 우담 스님(천안 제화사 주지)의 한마디에 일순 마음이 일어나 춤을 춘다. 

‘할머니, 추억, 음식’ 이 세 마디 단어가 가진 힘이란 얼마나 큰가. 이 마법의 단어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혼을 일으키게 하는 힘이 있다.  할머니와 손녀, 그 진한 연대와 사랑의 역사가 담긴 한 그릇. 우담 스님의 시래기 국수를 찾았다. 

따뜻한 그 절집
충남 천안시 문화동에 자리한 제화사. 천안역과 천안터미널 어느 곳에서나 도보로 30분 안팎의 거리에 있는 접근성이 좋은 사찰이다. 도심에 자리해 있지만 고즈넉한 주택지구로 둘러싸여 여느 산사와 다름없는 고요함을 누릴 수 있는 것도 큰 장점.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바로 제화사를 채우는 따뜻한 훈기에 있을 것이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한 학교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새처럼 담장을 날아오른다. 언젠가 한 번쯤 보았을 법한 예스러운 골목길. 나지막한 화단을 따라 도량에 가만히 들어서면 마치 오랜만에 옛집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드는 이곳. 곳곳에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손때 묻은 물건들, 또 누군가 직접 심고 내내 정성 들여 돌봄이 분명한 화단의 어여쁨 때문인지도. 아니, 그 무엇보다 제화사를 지키는 스님들의 안온한 성정 덕분일 것이다. 

“어서 오세요,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요.” 

커다란 눈에 미소가 가득 담긴 우담 스님을 만난 날, 스님은 처음 이곳을 찾은 객을 위해 앞장을 선다. 

“우리 사찰은 구조가 미로 같아요. 도심의 아주 작은 주택에서 조금씩 터를 넓히고, 고쳐가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거든요. 처음에는 함께 다니며 안내를 받아야 길을 잃지 않아요.” 

오랜 시간에 걸쳐 절터를 넓혀가며 보수를 거쳐 도량을 정비한 이곳. 쓰임에 따라 고민하여 구획을 나누고, 길을 내고, 정성껏 다듬어 온 흔적들이 마치 나이테처럼 곳곳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제화사를 돌아보는 이 여정의 백미는 우담 스님을 따라 들어선 사찰음식 교육장 문이 활짝 열린 순간이다. 이토록 진하고 진한 된장 내음이라니. 삶은 시래기의 구수한 향과 잘 끓여진 된장 냄새가 이 공간에 온통 방점을 찍는다. 

“어서 들어와요, 냄새가 구수하죠? 지금 시래기 국수를 끓일 거예요. 할머니가 많이 해주시던 그 국수요.” 

우담 스님은 시래기 국수를 소개하며 “따뜻한 도량에서 모두와 나누며 회향될 한 그릇”이라고 말했다.
우담 스님은 시래기 국수를 소개하며 “따뜻한 도량에서 모두와 나누며 회향될 한 그릇”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시래기 국수
“저는 시골에서 할머니 손에 자랐어요. 그래서 생활방식도, 입맛도 할머니 같아요. 덕분에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면 다들 어느 시대에서 살다 왔냐고 웃어요.” 

바쁘게 움직이는 우담 스님의 손끝에서 오늘의 주인공인 시래기 된장 국수가 만들어진다. 오래전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비법 그대로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어요. 어린아이 입에 시래기 된장국이 맛있을 리가 있나요. 할머니께 안 먹는다고 투정도 부리고. 그래도 시골에서 딱히 먹을 게 없으니까 참 많이 먹은 음식이에요.” 

그 시절 사시사철 떨어지지 않고 먹었던 시래기는 밥, 국, 찌개, 볶음, 여러 반찬까지 이런저런 방법으로 요긴하게 쓰였던 1등 식재료였다. 또 간간하게 잘 조린 시래기 볶음을 속에 넣은 만두도 할머니의 지혜가 담긴 잊지 못할 별식이다. 

시래기 국수는 시래기 삶은 채수가 기본이다. 푹 우러난 채수에 된장을 연하게 타서 훌훌 마시기 좋고, 속이 편한 것이 특징. 그 위에 짭조름하게 된장에 조려낸 시래기 볶음을 고명 삼아 얹어 먹는다. 고명을 만드는 재료는 간단하지만, 조금 더 품이 들어간다. 먼저 잘 불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준 시래기를 간장과 들기름으로 밑간을 한 뒤, 살짝 볶아줄 것. 그리고 다시 된장을 넣어 폭폭 끓여 주는데, 이때 취향에 따라 고추장을 조금씩 넣어주면 칼칼함이 입맛을 돋우어준다. 또 달이듯 볶아주어야 시래기의 질깃한 것이 풀어지고 식감이 좋아지므로, 적절히 물을 부어가며 조려주어야 간이 잘 배어든다. 시원한 된장 국물에 잘 익은 국수, 그 위에 얹어진 짭조름한 고명을 슥슥 비벼 먹는 맛이란! 담백하고, 구수한 맛에 속까지 편안하니, 앉은 자리에서 몇 그릇이고 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할머니와 생일이 같은 아이
“저는 할머니와 생일이 같아요. 어릴 적엔 도시에 나가 있던 고모, 삼촌들이 할머니 생신 때 되레 할머니께 이런저런 음식을 해달라는 것이 이상했어요. ‘엄마, 나 엄마가 해준 인절미 먹고 싶어’ 하고 오면, 정작 생일을 맞은 할머니와 제가 절구에 쌀을 찧어 인절미를 만들어 주기도 했거든요.”

때로는 한 그릇의 음식이 ‘사랑’ 그 자체가 될 수 있음을 아직 몰랐던 나이. 하지만 이제는 할머니의 밥이 온 가족이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주었던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1년 365일 중 단 하루의 수를 함께 하며 태어난 두 사람. 할머니와 우담 스님이 함께 한 그 나날 동안 두 사람은 뭇 생명을 지키고, 사랑하는 과정을 오롯이 함께 한 동반자였는지도 모른다.

“할머니와의 추억이 참 많아요. 우리 집 뒤로 대규모 간척 논이 있었는데, 헬리콥터로 농사를 지을 만큼 아주 컸지요. 하지만 저희는 논밭이 없어서 그곳의 추수가 끝나면 부대 자루를 몇 개나 가지고 가서 남은 벼 이삭을 가져왔어요. 그걸로 밥도 해서 먹고, 말려서 방앗간에 가져가 떡도 해 먹고요.” 

넉넉하지 않았지만, 가난하지도 않았다. 수많은 우주를 품에 안고 키워낸 할머니의 사랑이 그날의 들판보다 크고도 큰 이유다. 

위대한 유산 
“곧 있으면 아카시아가 피는 때가 와요. 이 계절이 되면 할머니가 아카시아 꽃을 따다가 버무리를 해주셨어요. 아카시아 꽃에 쌀가루를 묻혀서 쪄내는 건데, 어린 마음에도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지난해 돌아가신 할머니의 첫 생신이자 우담 스님의 생일을 맞았던 올해. 이제는 스님에게 새겨진 그 오랜 맛의 지도를 따라 그리운 이를 만나야 할 때다. 잘 말려 질기디 질겨진 시래기를 먹기 좋게 만드는 것은 꽤 오랜 조리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한다. 할머니의 부엌에서 닦이고, 데워지며 다시 새로워지는 것은 비단 먹을거리만은 아니었을 터. 길고 긴 그 정성의 시간으로 한 사람의 수행자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오래전 할머니가 그러하셨듯, 우담 스님이 머무는 이 따뜻한 도량에서 수많은 이들이 몸과 마음의 영혼을 채워갈 터다. 그 모두와 함께 나누며 회향될 할머니의 맛있는 국수, 그 한 그릇의 위대한 유산이 있다. 

▶한줄 요약 
시래기 국수는 시래기 삶은 채수가 기본이다. 푹 우러난 채수에 된장을 연하게 타서 훌훌 마시기 좋고, 속이 편한 것이 특징. 그 위에 짭조름하게 된장에 조려낸 시래기 볶음을 고명 삼아 얹어 먹는다. 

 우담 스님의 시래기 국수

재료 시래기

양념 된장, 고추장, 간장, 소금, 들기름, 채수

만드는 법

1. 시래기는 부드럽게 삶아서 찬물에 헹군 뒤 물에 담가 30분간 우려낸다. 
2. 시래기 껍질을 벗기고 물기를 꼭 짜서 총총 썬다.
3. 시래기에 간장, 들기름을 넣고 무쳐서 밑간을 한다.
4. 밑간을 한 시래기에 볶아주는데, 이때 미리 준비한 양념을 넣고 푹 익힌다. 
5. 채수에 된장을 조금 풀어 끓여둔다.
6. 국수를 알맞게 삶아 그릇에 담은 뒤, 채수를 적당히 부어주고 시래기 고명을 얹는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현대불교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