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사찰국수 기행 스님이 웃는다] 4. 덕조 스님의 불일암 국수

푸성귀에 간장…법정 스님 닮은 충만한 한 그릇 

‘평범한 간장국수’라 말하지만
“먹는 것 번잡케 하지 말라”는
법정 스님 수행 원칙 고스란히

덕조 스님이 뚝딱 만들어낸 불일암 국수. 단출한 것이 불일암 국수의 특징이라지만, 푸성귀만큼은 아끼지 않고 넉넉히 더하는 것이 묘미다.

그리고 봄이 온다 

‘잘 주무셨습니까. 비가 내린 산사의 정취를 느끼며 무소유길로 살포시 걸어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천천히 올라오세요.’ 

아주 오랜만에 받아보는 정성스러운 글 인사였다. 쉬이 쓰고 지워지는 가벼움도, 끝내 무미건조한 회색 벽돌을 주고받는 기분이 되고 마는 그런 대화도 아니다. 정중함 속에 다정한 마음이 스며들어 새처럼 지저귀는 순간. 비 내린 2월의 어느 아침, 승소를 찾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 찰나였다.

불일암 국수를 찾아서

삼보종찰 순천 송광사. 서늘할 정도로 맑은 기운이 전해지는 이 천년고찰 곁에는 산속 암자를 향해 오르는 고적한 숲길이 하나 있다. ‘무소유길’이라 이름 붙여진 그 길의 끝에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어쩌면 가장 사랑받는 성지일지도 모르는 불일암이 있다.

법정 스님의 생전 거처이자, 스님의 자취가 오롯이 남겨진 정갈하고 아름다운 암자. 그리고 스승이 잠드신 그곳에 남아 불일암을 지키는 덕조 스님(불일암 암주)이 머무는 도량이다. 

덕조 스님에게 대뜸 스님과 국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청을 드린 것은 곧 법정 스님의 기일이 다가오는 이유였다. 법정 스님께서 생전 국수를 즐겨 드시고, 지금도 기일이면 화려한 제사 상차림 대신 국수 한 그릇을 올린다는 이야기. 또 어느 TV 프로그램에서였던가, 도반스님을 위해 뚝딱 한 그릇 국수를 내오던 덕조 스님의 모습을 목격한 덕분이다. 

“국수요? 아, 불일암 국수!” 

전화기 사이로 조심스레 국수 이야기를 꺼내자 대번에 ‘불일암 국수’라고 화답하는 덕조 스님. 불일암 국수라니! 이 유명한 산중 암자의 이름을 붙인 국수가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법정 스님에게서 제자로 이어지는 맛의 비법이라도 있는 걸까. 범인(凡人)의 머릿속에선 온갖 궁금증과 함께 이미 끝없는 국수 가닥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암자로 오시지요, 국수는 금방 합니다. 공양하고 가세요.” 

예상치 못한 허락이 뚝 떨어져 놀란 것은 되레 이야기를 청한 쪽이었다. 약속의 아침, 밤새 내린 비는 거대한 운무가 되어 산사를 결계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불일암에 오르기 직전, 그제야 숲 너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곳은 우리 시대의 스승이 사랑한 숲길, 불일암 가는 길이다. 

수행자의 식사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으셨던가요, 아침 공양은 하셨습니까.” 

덕조 스님은 부러 송광사를 찾아 하룻밤을 묵었다는 객의 안부를 먼저 살핀다. 덕조(德祖), 법정 스님께서 처음 받은 맏상좌에게 억새풀 같았던 자신과 달리 ‘덕 있는 할아버지’와 같은 품으로 살아가길 기원하며 내려주었다는 법명이다. 어쩌면 스승은 제자의 이런 살뜰한 면면을 먼저 알아본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글쎄요, 불일암 국수에 특별한 것은 없어요. 그냥 평범한 간장 국수지요(웃음). 보통 사람들은 해 장터국수처럼 국물을 내서 많이 드시지만, 우리는 그냥 간장만. 그래서 준비가 번거롭지 않아요. 먹고 나면 깔끔하고요.”

정말 전설의 비기(器)와 같은 레시피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던 걸까. 스님의 명료한 답변에 당황한 것은 질문을 청한 쪽이다. 조금 더 거창한 이야기를 기대하는 낯색에 스님은 너털웃음과 함께 부연설명을 잇는다. 

“불일암은 본래 자정암이라는 사찰의 폐사지였습니다. 예전부터 공양간 역할을 했던 하사당은 법정 스님께서 그 폐사지의 나무를 주워 방 한 칸을 마련하신 거지요. 방 한 칸, 나무 쌓아놓던 자리, 그리고 아궁이. 스님께서는 아궁이 자리를 부엌 삼아 지내셨습니다. 단출하게 드시는 걸 좋아하셨어요. 오관게에 나오듯 말 그대로 수행을 위한 양식으로요.” 

먹는다는 것이 가장 손쉬운 유희가 되어버린 시대, 그와 가장 양단에 선 문화가 있다면 아마도 불가의 공양의식이 아닐까. 불일암의 국수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음을 이곳의 기원에서부터 전해 듣는다. 

‘먹는 것을 번잡하지 않게 하라. 반찬은 세 가지 넘지 않게 하고, 간단명료하게 먹는다’ 지금도 술술 외워질 만큼 제자에게 강조한 법정 스님의 먹을거리 원칙은 아직도 유효하다. 가짓수가 많은 식탁을 대하면 생각이 흐트러져 ‘먹이는 간단명료하게’라는 부엌훈을 걸어놓기도 했다던 법정 스님. 당신이 스스로 선택한 불편함은 그대로 수행자로의 삶을 제련하는 기치로 이어지고, 그것은 여전히 이곳에 살아 흐른다. 

‘무소유길’에 선 덕조 스님.

불일암 국수의 맛

“은사스님께서는 국수를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그 또한 번거롭지 않은데 큰 이유가 있었어요. 그냥 국수만 삶아 간장과 채소만 넣고, 반찬도 크게 필요로 하지 않으셨어요.” 

천천히 꺼내어 보는 오래전 스승의 모습도, 그 시절의 풍경도 덕조 스님의 기억 속에 여전히 생생하다. 물론 그 시간 속에 법정 스님과 함께 나눈 국수의 맛 또한. 

“여름이면 국수를 더 즐겨 드셨어요. 수도 시설이 없던 때, 삶은 국수를 냇가에서 씻어 바로 건져 먹는 맛이 정말 좋았습니다(웃음).” 

간도 되지 않은 그저 평범한 국수, 차가운 냇물에 훌훌 씻어 건져 올린 것만으로 왜 그리 다디달았을까. 그날의 맛이 떠오르는 듯 스님의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번진다. 

어느새 다가온 공양 시간, 덕조 스님의 움직임도 이내 바빠진다. 익숙하게 앞치마를 두르고, 국수 삶을 솥단지에 물이 푹푹 끓어오르는 동안 재빨리 간장양념을 준비한다. 단출한 것이 불일암 국수의 특징이라지만, 푸성귀만큼은 아끼지 않고 넉넉히 더하는 것이 묘미. 하얀 면 위에 초록을 양껏 올리고, 간장양념을 슬쩍 둘러주면 완성이다.

마침내 만나는 불일암 국수의 맛! 국수의 찰지고 상쾌한 식감, 잘 스며든 간장의 감칠맛이 놀라울 만큼 향기롭게 입안에 감돈다. 오래전 냇물에서 바로 건져낸 그날의 맛은 아닐지라도, 불일암의 국수는 여전히 맛있고 또 간단명료한 미덕의 상(像)을 지켜가는 중이었다.

봄이 오르는 길

“봄이 되면 텃밭에 늘 먹는 채소 다섯 가지 정도를 심고, 가을에는 김장배추를 심습니다. 한두 사람 먹기엔 많은 양이라 잘 지으면 나눠 먹기도 하지요. 은사스님께서는 밭을 놀리면 게으른 수행자라고 하셨어요. 다른 것 볼 것 없다, 밭만 보면 그 안에 사는 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요(웃음).” 

지금도 불일암의 밭은 열두 달 가지런하고, 겨우내 이랑은 잘 삭은 퇴비를 이불처럼 덮은 채 얌전히 잠들어 있다. 봄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 새싹을 틔우고, 불일암을 둘러싼 푸른 숲처럼 이곳을 찾는 이들을 가장 먼저 반길 것이다. 

“불일암은 법정 스님을 느끼고 싶어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도량청소도, 밭을 일구는 것도 결코 쉴 수 없어요. 책에서 만난 단정한 법정 스님을 뵙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으니까요. 그러니 불일암에 오면 말없이 눈을 감고 새소리, 바람 소리, 대나무 줄 넘는 소리를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법정 스님의 향기도, 흔적도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숲길 앞에 선 이방인에게 천천히 걷기를 당부했던 덕조 스님의 뜻은 불일암을 찾는 모두를 향한 바람과 다름없다. 

오래전 폐사지에 홀로 선 법정 스님은 그 터를 지키던 매화나무 한 그루의 아름다움에서 머무름의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지금도 그 나무는 봄이 되면 보석처럼 피어나 온 힘을 다해 불일암을 밝힌다. 이윽고 산 아래로 향하는 시간, 문득 대나무숲 너머 바람길 사이로 훈풍이 지나쳐갔다. 사람도, 바람도 내내 그날의 법정 스님처럼 희망을 찾아 오르는 이곳, 마침내 계절도 잊지 않고 불일암을 오른다. 그렇게 봄이 온다. 

▶한줄 요약 
하얀 면 위에 초록을 양껏 올리고 간장양념 슬쩍 둘러 완성된 불일암 국수에는 ‘먹이는 간단명료하게’라는 부엌훈을 걸어놓기도 했다던 법정 스님의 수행자로서 삶의 기치가 고스란히 담겼다.

덕조 스님의 불일암 국수

재료
국수, 간장, 매실청, 꿀, 참기름, 깨소금. 채소(선택)

만드는 법
1. 간장과 물을 1:0.5 비율로 섞어준다. 
2. 1에 매실청과 꿀, 참기름을 입맛에 따라 넣고 깨소금과 함께 섞어준다.
3. 삶은 국수를 찬물에 깨끗이 씻어준 후, 물기를 최대한 제거한다. 
4. 상추, 치커리, 오이 등 자연 재료를 먹기 좋게 잘라준다.
5. 국수에 간장양념, 채소를 원하는 만큼 넣고 잘 섞어주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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