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댄 부처님을 어떻게 만나고 싶은가요

부처님 일대기를 만나는 방법
불소행찬 등 경전을 통하거나
비판적 책읽기로 붓다 보거나
신화 걷어낸 일대기만 중할까
상징체계 안에도 가르침 있어
비판·공감적 읽기, 선택 따라
당신이 만나는 불교 정해진다

그림=최주현
그림=최주현

스님, 길을 나서다
“그동안 나는 역사적인 붓다의 모습을 추구하는 데 골몰해 왔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알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부처님,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라는 한마디입니다. 모든 것을 현장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 ‘붓다의 땅’으로 왔습니다.”
-〈성지에서 쓴 편지〉 22쪽


초기불교를 연구하는 학자 호진 스님이 인도를 여행하면서 도반이신 지안 스님에게 쓴 편지입니다. 여행이라는 말은 낭만적이고 홀가분합니다.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여행하고, 쉬려고 여행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기 위해 여행합니다. 그런데 인도를 ‘여행’하는 스님은 조금 다릅니다. 

도대체 석가모니 부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경전으로 만나는 부처님 일대기
경전 강의를 하는 자리에서 언제나 하는 말은, “모든 경전의 가장 앞자리에 부처님 일대기를 두어야 합니다. 부처님 일대기를 읽으십시오”입니다. 불전(佛傳)은 아주 많은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경전들을 소개해볼까요?

〈불소행찬〉은 인도고전문학에서도 최고라 일컬어지는 작품으로, 시로 쓰인 부처님 일대기입니다. 내 친구 한 사람이 〈불소행찬〉을 읽었는데 처음에는 찬양의 구절들이 낯설고도 살짝 거북스러웠다더군요. 그런데 나중에는 “차분히 그 내용을 따라 읽어가다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어요”라고 독후감을 들려준 기억이 납니다.

〈자타카(본생경)〉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주변 인물들의 전생이야기 모음집입니다. 단순히 전생에 어떤 존재로 태어났다는 옛날이야기만이 아니라 붓다가 되기 위해 어떤 복을 쌓고 공덕을 지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불본행집경〉은 아주 방대한 양인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어머니 마야왕비의 태에 드는 이야기(제1부), 탄생에서 깨달음을 이뤄 가르침을 처음 펼치는 이야기(제2부), 수많은 제자들을 교화한 이야기와 그 제자들의 이야기(제3부)로 이뤄져 있어서 부처님에 관한 이야기를 다 만날 수 있습니다.

또는 탄생에서 왕자 시절 이야기를 주로 다룬 〈수행본기경〉과, 성불해서 사람들을 교화한 이야기인 〈불설중본기경〉과, 생애 마지막 교화 장면과 최후 모습 이야기인 〈반니원경〉을 하나로 묶어서 일대기를 완성한 것이 〈한글아함경〉(고익진 편역) 앞부분에 실려 있습니다. 〈디가 니까야〉라는 초기경전에 담겨 있는 〈마하빠리닙바나 숫따(대반열반경)〉은 석가모니 최후의 모습을 자세하게 만날 수 있는 아주 감동적인 경입니다.

그 밖에도 〈불설보요경〉 〈방광대장엄경〉 〈과거현재인과경〉 〈불설태자서응본기경〉 등등이 있습니다. 율장 〈마하왁가〉에는 보리수 아래 깨달음을 이루신 직후부터 승가라는 수행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자세하게 담겨 있어서 적극 추천합니다. 

전설 같은 이야기는 맘에 안 들어
그런데 부처님 일대기 즉 불전(佛傳)을 보통 사람들이 무난하게 읽기는 어렵습니다. 

어려운 이유는 가장 먼저, 아무리 한글로 번역했다고 해도 현대인들이 편안하게 읽기에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고어체의 문투 때문입니다. 둘째는, 불전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웬만큼 인내심이 없으면 다 읽지를 못합니다. 셋째는, 부처님 일대기에는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기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신화적인 이야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 세 번째 이유입니다. 끈질긴 인내로 불전들을 차례로 읽어나가는 사람들도 다 읽고 나서는 “도대체 이런 신화 같은 이야기를 믿어야 하는가? 이런 이야기 읽어서 내가 깨달음을 얻거나 번뇌가 없어지기나 할 것인가”라는 회의가 엄습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로마 신화라면 그러려니 하고 읽으면 됩니다. 하지만 불교는 믿음과 수행을 두 개의 축으로 하여 진지한 자기성찰과 자기변혁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고 싶은데, 어머니 마야왕비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거나, 태어나자마자 갓난아기가 일곱 걸음을 걷고, 그것도 모자라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을 했다거나 하는 등등의 이야기 때문에 불교에 실망감을 품었다는 사람을 자주 만납니다. 부처님 일대기 만나려고 경전을 펼쳤다가 탄생이야기에서부터 거부감이 일어 더 이상 불전(佛傳)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앞에서의 호진 스님처럼 직접 내 두 발로 인도 땅을 밟아보면서 인간 부처님의 모습을 찾아보겠다는 구도자들도 불교 안에서는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자세는 불전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짚어가는 것이요, ‘비판적 책읽기’의 자세입니다. 

고(故) 이기영 교수님의 〈석가〉는 근대 학문의 원전비판 방법을 채택하고 고고학적 자료에 의거하여 확실한 증거를 찾아가면서 부처님 일대기를 추적해보겠다고 서문에도 밝히고 있으며, 영국의 비교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책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는 설화적, 신화적 이야기를 걷어내고 한 인간이 어떻게 지고한 정신적 수준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는가를 진지하게 담고 있습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자주 권합니다. 

공감하며 읽기
반면 종교적 삶을 완성한 교주의 일대기를 그렇게 자기 눈높이에서만, 확인되는 것만, 사실적이고 타당한 것만, 과학적인 것만 믿겠다는 자세가 전적으로 옳은 독서법인가 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을 넘어선 비범하고 울림이 큰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다 간 인물의 삶을 범부(독자)의 수준에서 파악한다면 딱 자기 그릇만큼 밖에는 보지 못하니, 마음을 열고 공감하는 자세로 만나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공감의 독서법’이라고 해야 할까요?

공감의 독서법이라고 해서 덮어놓고 믿고 보자는 건 아닙니다. 왜 이 종교에서는 그들의 교주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말하면서 상식을 넘어서는 이런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는지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오래전 일본 학자 와타나베 쇼코 박사는 〈불타 석가모니〉라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불타(붓다)의 경우만은 아니지만 종교가의 전기는 초자연적으로 기록하게 마련이다. 19세기 말경 합리주의가 한창이던 시대에는 그 전 것을 모두 떼어내 버리고,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만을 뜯어 맞추어 ‘인간 예수’, ‘인간 석가’ 등의 전기를 쓰는 일이 유행했다. 그러나 그 뒤 종교학의 방법론이 발달한 결과, 얼핏 보아 초자연적인 일처럼 여겨지는 기술은 현대의 우리들이 표현하는 것과는 다른 독자적인 방법으로 종교적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겉모습에 상관없이 그 본래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허구적이고 비상식적이기까지 한 사건들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지요. 불전읽기는 바로 그 메시지를 제대로 잘 읽어내는 작업입니다. 그럴 때 독자들은 보통의 지루하고 고단하고 불안한 삶에서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거듭날 수가 있습니다. 

불교라는 하나의 종교체계가 품고 있는 어마어마한 세계가 열리고, 그 내밀한 통로로 발을 딛는 순간 전혀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것이 가능하고, 절대로 내게는 용납될 수 없었던 것들이 전혀 걸림 없이 나의 내면에서 확립됩니다. 미얀마의 고승 밍군 사야도의 저서인 〈대불전경〉은 이런 점에서 역작 중에 역작입니다. 부처님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다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맴돌지 말고 나아가세요
물론 비판적 책읽기 방식으로 불전을 읽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마치면 언제나 “딱 거기까지”입니다. 독자는 맴맴 자기 자리에서 맴을 돌다가 다른 인물의 일대기로 관심이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어떻게 하실래요? 수많은 사상가와 철학자들과 같은 선상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라는 한 존재의 치열한 구도적 삶을 만나실래요? 아니면 보통의 삶 그 너머의 경지를 차분하게 살피며 존재의 바닥을 샅샅이 훑어보고 현실적 삶의 괴로움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난 뒤 세상 사람들에게도 눈을 뜨도록 안내한 부처님의 삶을 만나실래요? 어떤 방식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만나느냐가 당신의 불교와의 만남을 방향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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