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소리를 듣는 자, 관세음보살

부쩍 청력이 떨어진 어머니께 
보청기를 해드리니 하는 말씀
“이 소릴 어떻게 다 듣고 사니”
‘관세음’ 세상 소리 관한다 의미

그림=최주현
그림=최주현

도와달라 내미는 손
태국 북부에 자리한 아름다운 도시 치앙마이를 며칠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 들른 여행객들이 반드시 다녀오는 도시가 또 있습니다. 치앙라이입니다. 그곳에는 왓롱쿤(백색사원)이라는 꽤 인상적인 절이 있는데 이름 그대로 이 절은 온통 하얀색입니다. 태국의 한 건축가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지은 절입니다. 눈부시게 화창한 날 이 절에 가면 그야말로 온통 새하얀 사원에 눈이 부시고, 아름답고 또 기괴하기도 한 장식물들이 가득 있어서 시종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대웅전으로 가려면 작은 연못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연못에 충격적인 조각물들이 한 가득입니다. 바로, 연못 바닥에서부터 위로 향해 치켜 올린 사람의 손들입니다. 더러 발우를 치켜들고 있는 손도 있는데, 빼곡하게 연못을 채운 새하얀 손들이 서로 뒤엉켜서 할 수 있는 한 높이 치켜들고 있습니다. 부처님을 뵈러 가는 사람들에게 자기들을 살려달라고, 내 손 좀 잡아서 위로 끌어올려달라고 간절하게 비는 것 같아서 대웅전으로 향하는 발길이 무거워집니다. 이 손들은 생각건대 지옥 중생들의 것입니다. 그 손들을 지나쳐 법당으로 들어가면서 내가 저 손을 잡아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지옥 중생을 구해줄 수 있나요? 불가능합니다. 지장보살마하살이나 관세음보살마하살 같은 분들이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저 ‘아이고, 난 나중에 저런 지경에까지 떨어지지는 말아야겠다’하는 생각만 했을 뿐입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말이지요.

건축가는 이 연못을 조성하면서 “악업 짓지 마십시오. 악업 지으면 죽어서 지옥에 갑니다. 지옥에 떨어진 뒤에 후회하면서 살려 달라고 손을 내밀지 말고 살아 있을 때 선업을 많이, 아주 많이, 그리고 부지런히 지으십시오”라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해주려는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살면서 악업 짓고 싶은 사람 있나요? 없습니다. 이왕이면 좋은 일 하고 싶은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야 내 마음도 즐거워지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거든요. 하지만 세상이 참 그렇습니다. 나쁜 짓 하면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악업을 짓고 맙니다. 

“먹고 살자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 사정 좀 봐주세요.”
일단 저지른 뒤 이렇게 비는 것이 사람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하는데, 정말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하소연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지옥 옥졸은 다그칩니다.
“시끄럽소. 그 누구 탓도 아니오. 어찌됐거나 당신이 악업을 지었으니 그 괴로운 과보는 고스란히 당신 몫이오.”
그러면서 또 말합니다. “부모 때문에, 자식 때문에 악업을 지었노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들 때문에 악업을 멈추고 선업을 지어야 하오.”-〈맛지마 니까야〉 천사경

 
그 오래된 경전에 이렇게 까지 나오는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똑같은 게 분명합니다. 지옥 옥졸 앞에서야 어쩔 수 없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라면 ‘내가 아무리 무거운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일단 살려주고 나서 야단치든지 내치든지 하라’고 애원합니다. 

살면서 이렇게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나마 평탄하게 참 잘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놓을 수 없습니다. 내 인생에 어느 순간 이렇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면서 살려 달라고 외칠 때가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복보다 절박한 S.O.S
불교는 스스로 마음공부 열심히 해서 이렇게 울고 불며 두 손 모아 살려 달라 빌 일이 없게 안내하는 종교입니다. 깨달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며 제 마음 그릇이 커지고 지혜의 눈이 밝아지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향상(向上)하는 자신을 보며 흐뭇해지고, 그 흐뭇함이 또 스스로를 수행으로 나아가게 책려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은 너무 멀고, 현실적인 어려움과 괴로움은 너무 가깝습니다. 깨달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하지만 ‘그건 팔자 좋은 사람들이 수행 열심히 하는 경우나 그렇고, 지금 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이 불부터 꺼야 하지 않냐 말이다’라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절에 다니는 사람 중에 이런 처지에 놓인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기복불교를 멀리하라는 따끔한 경책도 있지만, 나는 지금 복을 비는 ‘기복’이 아니라 재난을 피하고 불행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고 싶은 ‘재난 소멸, 액운 방지’가 절실하다는데 어쩌겠습니까? 그 조차도 종교 영역인데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도 문을 활짝 열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에게 부탁하라는 것입니다. 자연재해나 액난과 같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마음속에 욕심이나 성냄이 지글지글 끓어 넘칠 때, 또는 너무나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는데 도저히 자기 힘으로 이룰 수 없을 때 무조건 “관세음보살!”하고 외쳐보거나 그분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면 됩니다. 그럼 바라는 대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보문품〉이라는 경전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 경전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볼까요?

소리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제목부터 짚어보면 네 개의 단어로 나눌 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보문-품.

①‘관세음’은 세상의 소리를 관찰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참 많은 소리가 나는 곳입니다. 각양각색의 소리들이 대기에 가득 차 있지요. 엄마가 7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부쩍 청력이 떨어졌습니다. 보청기라도 하시자고 권했지만 “나이 들면 원래 안 들리는 법”이라며 애써 싫다 하셨는데, 자식 입장에서는 안타까웠지요. 세상 소리를 듣지 못하면 위험하기도 했고, 엄마에게 말을 건넬 때 일상대화조차도 소리를 질러대니 엄마는 늘 딸의 고함치는 험상궂은 표정을 보시며 노년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서둘러 보청기를 장만해 드렸습니다. 

그날의 일이 생각납니다. 보청기를 양쪽 귀에 꽂고 아파트 공원을 산책하시던 중에 몸서리치시듯 놀라며 내게 물었지요.
“왜 이리 세상이 시끄럽니?” 
특별히 소음이 일어난 것도 아니라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멀뚱멀뚱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딸에게 엄마는 다시 묻습니다.
“넌 지금까지 이 소리를 다 듣고 살았니? 시끄러워서 어떻게 견뎠니?”
엄마도 늘 듣던 소리였을 텐데 노화로 인해 차츰 듣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지요. 하지만 이날 엄마가 내게 던진 물음은 화두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세상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이 소리가 기쁘고 즐거워서 외치는 환호성이고, 다른 이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축하하는 소리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그런 소리도 아주 많이 들려오지만 그 소리 이면에 들리는 또 다른 소리, 너무 작고 낮아서 웬만큼 집중하고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소리는 바로 “너무 힘들어요. 나 좀 살려주세요”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런 소리를 듣는 분이 관세음입니다. 이런 소리가 들리면 그 즉시 소리 나는 곳으로 얼굴과 온몸을 돌려 살펴봅니다. 얼마나 힘든지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생각하려면 잘 살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세음이란 세상의 소리를 보는 분입니다. 

‘보살’이란 말은 앞으로도 자주 말씀드릴 테니 여기서는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보살은 보리살타 즉 보리(깨달음)와 살타(중생)이라는 단어 두 개가 합친 말입니다. 관세음은 깨달음이 확정된 중생입니다. 깨달음은 부처님의 깨달음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입니다. 그래서 나는 강의 시간에 용감하게 말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부처님 급(級)이라고요. 그러니 부처님에게 의지하고픈 마음을 그대로 관세음보살에게 쏟아부어도 괜찮다고 말입니다.

‘보문’이란 말을 들을 때면 늘 서울의 보문동이 떠오릅니다. 이 지역 이름도 보문사에서 가져왔다고 하니 보문품에서 보문동을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뿐인가요? 경주에도 보문단지가 있지요. 보(普)는 보편적, 보통, 어느 곳 어느 때 누구에게나 다 적용된다는 뜻이요, 문(門)은 한문으로는 들고날 때 통과하는 출입구의 뜻이고 얼굴, 입의 뜻도 있습니다. 누군가 또는 어딘가를 향할 때 우리는 보통 얼굴을 그쪽으로 향합니다. 그래서 보문이란 말에는 모두에게 차별 없이 활짝 열린 문이란 뜻, 관세음보살은 도와달라고 외치는 존재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달려가 그들을 구원하는 분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④‘품’이란 말은 챕터(chapter), 장(章)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보문품이 독립된 한 권의 경전이 아닌, 어떤 책에 들어 있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맞습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묘법연화경입니다. 묘법연화경은 28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고, 그 중에 25번째 장이 관세음보살보문품입니다. 아예 관음경이라는 독립경전으로 널리 퍼지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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