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같은 우리 이야기를 담다

상가세나 스님이 쓴 이야기 교리서
98가지 우화로 반면교사 교훈 전해
아이용 생각하기 쉽지만 어른 적합
해법 알아도 실수 되풀이하기 때문

그림=최주현
그림=최주현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경
꽤 오래 전 일입니다. 불교계 신문사 한 곳에서 경전 연재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때 신문사 측에서 제안하면서 특별히 내게 부탁한 것은 “제발 좀 어렵지 않게 써주세요. 쉽고 재미있게, 아셨죠? 꼭이요!”였습니다.

문득 〈백유경〉이 떠올랐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백유경〉을 그리 꼼꼼하게 읽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굳이 〈백유경〉을 선택한 이유를 찾아보자면, 아주 짧디 짧은 내용이 98가지 실려 있고, 그 내용들이 전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설명하기도 쉬우리라는 어림짐작이었지요. 이렇게 〈백유경〉과 만났고, 그 만남은 점점 사랑이 깊어져서 요즘은 불교강의를 할 때면 생각지도 않게 〈백유경〉 속 이야기들이 툭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백유경〉의 가장 큰 특징을 들자면 경전을 지은 사람 이름이 또렷하게 나온다는 점입니다. 상가세나라는 인도스님이 사람들에게 불교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지은 이야기책입니다. 그렇다면 그 심오하다는 불교교리가 담겨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런데 〈백유경〉에 실려 있는 98가지 이야기는 사람 이야기입니다. 살아가면서 염두에 두고서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 98가지 유형을 다룬 경전입니다. 말 그대로 바보들의 행진인데 대체 그런 바보가 누구일까요? 나와 당신, 우리, 바로 중생입니다.

그 바보들 이야기를 하나하나 음미해보면, 불교는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 종교인지 그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꼬집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 이 경을 아이들에게 권하지?
어처구니없는 멍청한 짓을 하는 사람들을 짧게는 두어 줄의 문장으로 보여주니 이 경 전체를 읽는 데에 긴 시간이 들지 않습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마시며 읽어도 완독했을 때 커피잔은 여전히 온기를 머금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불자들은 이 〈백유경〉을 ‘뭐 그리 꼭 읽어야 할 경은 아니군. 애들이나 읽으라 해야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실제로 〈백유경〉을 가지고 어린이를 위한 내용 정도로 파악해서 딱 그 눈높이에 맞춘 단행본도 간간이 만납니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다릅니다. 이 〈백유경〉은 어른들이 읽어야 하는 경전이기 때문입니다. 나이만 먹었지 생각은 조금도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이 읽어야 하는 경전, 이 경 속에 등장하는 98종류의 바보 중에 ‘나는 어떤 유형의 어리석은 사람일까’를 어른들이 스스로 반성하게 하려는 의도로 지어진 경전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사실 읽을 필요가 없다고 나는 강력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바보 같은 어른들 모습을 자꾸 보여줄 일이 뭐 있나요? 창피하게시리. 어른들 스스로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경에서 찾아보고 부끄러워하고 반성하고 고쳐야 하는 것이지요.

〈백유경〉을 소개할 때면 늘 생각나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저 유명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입니다. 사람들은 이 책의 주인공이 망토를 두른 노란 머리의 어린 왕자이니, 이 책을 어린이용이라 여깁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제일 앞장에는 헌사와 함께 저자인 생 텍쥐페리의 ‘사과문’이 실려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그 사과문은 이렇습니다.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데 대해 어린 독자들에게 먼저 용서를 구합니다. 내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가 그 어른이기 때문입니다.(중략) 어른도 한때는 어린이였지요.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런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아이들이 읽어야 할 책이 아니라, 한때는 어린이였던 사실을 까맣게 잊고서 몸집만 커진 어른들이 꼭 읽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헌사입니다. 나는 이 〈어린 왕자〉를 어렸을 때 읽었다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몰라 덮어버렸지요.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4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읽었는데 아! 한 문장 한 문장이 저릿하게 뇌리에 새겨지는데 전율했습니다. 이 책은 우왕좌왕하며 살아오던 어른이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 잠시 멈춰서서 살아온 인생을 통째로 되돌아볼 때 읽어야 할 책이라는 걸 알게 됐지요.

사람들은 자주 잊어버리곤 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사람들은 자주 착각하곤 합니다. 자신은 이미 인생에서 알아야 할 것을 알만큼은 다 알고 있다고 말입니다.

〈백유경〉은 바로 이런 어른들에게 “아니거든요? 제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자신을 바로 보세
요. 방금도 바보같이 굴지 않았나요”라며 꼬집는 경입니다. “그런 건 세 살짜리도 다 아는 이야기야”라고 말하지만 여든 살이 되도록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어른들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니 이제 〈백유경〉을 아이들에게 권하는 것은 그만 멈추고, 긴 문장은 절대로 읽지 못하는 어른들을 위해 친절하게 짧게 써준 이 〈백유경〉을 진지하게 펼쳐 읽어보시고, 그리고 길게 생각해보시기를 권합니다.

〈백유경〉 이야기 몇 편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요? 간단하게 이런 이야기부터 들려 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뜨거운 불이 필요하고 또 찬물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불 위에 두었지요. 한참 지나서 가보니 불은 꺼졌고 찬물은 따뜻해졌습니다. 그는 뜨거운 불과 찬물 둘 다를 잃고 말았습니다. (〈백유경〉 25번째 이야기) 

사람들은 늘 양손에 떡을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놓지 못하고 있지요. 한 손의 떡은 욕심과 집착을 줄이고 자주 조용한 곳에서 마음공부에 힘쓰라는 부처님 가르침이고, 다른 한 손의 떡은 이왕 세상에 태어났으니 즐길 만큼 즐기다 가련다는 세속적인 마음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함께 갈 수가 없습니다. 무언가 하나는 내려놓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절에 오면서 이 두 가지를 다 챙기려 합니다. 결국은 어느 것 하나도 얻지 못하고 둘 다를 잃고 말지요. 인생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느 쪽 손의 떡을 챙기시렵니까?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흉가가 한 채 있습니다. 모두들 애써 그 집을 피하는데 스스로 용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섰습니다. 
“내가 그 집에 들어가서 하룻밤 자고 나오겠소.”
그가 성큼성큼 흉가로 걸어가서 안채에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또 다른 한 사람이 나섰습니다.
“귀신은 무슨! 내가 그 집에 들어가서 편안하게 잠을 자고 나오겠소.”
뒤늦게 흉가를 찾은 남자가 문을 밀고 들어가려 하자, 먼저 와서 잠을 청하던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귀신이다!’
남자는 문이 열리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서 문고리를 잡아당겼습니다. 뒤늦게 찾아온 남자는 귀신이 안에서 자신을 막아선다고 생각하고서 더 세게 문을 밀었습니다. 밤늦도록 문 한짝을 사이에 두고서 두 사람이 서로 밀고 당기며 보냈지요. 마침내 훤히 날이 밝아오자 자신이 힘을 겨루었던 상대가 귀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64번째 이야기)


귀신이 진짜로 있었던가요? 아니지요. 그런데 ‘그렇다더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속에 귀신을 세워둔 두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은 진짜로 귀신이 있다고 믿어버렸고, 밤새 귀신과 온힘을 다해 싸웠지만 밝은 태양 아래에서 확인한 것은 자신들의 착각뿐입니다. 혹시 지금 내 마음속에 자리한 어떤 관념도 이와 같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원숭이 이야기도 있습니다. 콩 한 줌을 손에 움켜쥐고 있다가 그만 콩알 하나를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원숭이는 그 콩 한 알을 집으려고 주먹을 펼쳤고 그 바람에 콩 전부를 잃고 말았습니다. (88번째 이야기) 

살면서 실수 하나쯤 하지 않는 사람 없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질 일은 책임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실수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깊은 후회와 자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미 저질러진 일은 잊어야 합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지요.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지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잠재성입니다. ‘잠을 자다 이불킥’은 이제 멈춰야 합니다. 푹 자고 일어나서 내일을 살아야 하니까요.

〈백유경〉에 담긴 98가지 바보 이야기 끝에는 반드시 이 비유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유 자체는 싱겁기 짝이 없을지 몰라도 그 끝에 간단하게 실린 해설은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야 할 화두가 됩니다.

음미하다 보면 때로는 거울을 보는 것 같아서 불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나를 더 잘 살게 해주겠지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가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경, 바로 〈백유경〉입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