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최원섭의 불교, K-드라마로 만나다] 서로 이해하는 세상이 된다면

22. ‘신사장 프로젝트’(2025)

약자 편에서 현실 어려움 해결 
히어로 존재 꿈꾸는 희망 담아 
서로를 부처로 보는 세상 불국토 

사진 출처=tvN 공식 홈페이지
사진 출처=tvN 공식 홈페이지

경찰대를 수석 졸업하고 법관 임용시험도 수석으로 합격해 이제 막 판사 발령을 받은 조필립(배우 배현성). 법의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결의로 법원에 첫 출근을 하지만, 평소 존경하던 부장판사 김상근(배우 김상호)은 동네 닭집으로 필립을 데리고 가 당분간 닭집에서 일하라는 황당한 지시를 한다. 그리고 그 닭집에는 정체가 모호한 신 사장(배우 한석규)이 있다.

신 사장은 상근이 데리고 온 필립을 낙하산이라고 부르며 필립과 함께 상근이 부탁한 일을 하러 나서는데, 그 일은 소송 당사자들 사이를 중재하고 합의하는 것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법과 원칙을 무시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신 사장. 이런 신 사장을 필립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처럼 드라마 ‘신사장 프로젝트’는 법과 원칙이 최고의 가치인 판사 조필립과 바로 그 법과 원칙이 문제라는 닭집 사장 신 사장이 의기투합해 주변 사람들의 억울한 일을 해결하는 이야기다. 

사실 신 사장은 하버드 네고시에이션 마스터클래스 최연소 교수 출신으로 FBI와 인터폴 위기 협상 자문을 의뢰하던 세계적인 협상 전문가였다. 그런데 15년 전 인질범과 협상을 하느라 정작 자신의 아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세상을 피해 숨어 버린 것. 그런 신 사장에게 억지로 민사소송 중재를 떠넘겨서 세상으로 다시 나오게 한 사람이 판사 김상근이다. 

판사인 상근이 소송 사건을 재판 전 합의하게 하려는 이유는 재판은 시간도 많이 소요될 뿐 아니라 재판을 시작하면 서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 사장 곁에 필립을 둔 것은 필립이 시민 눈높이에서 사건을 볼 줄 아는 진정한 판사가 되기를 바라서였다.

상근이 이렇게까지 신 사장을 신뢰하는 데에는 신 사장의 협상 방식이 한몫한다. 신 사장은 적당히 이해 당사자 양쪽의 의견을 절충해서 타협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건 너머에 있는 진실까지 밝혀낸다. 그 결과 약자에게는 힘이 돼 주고 악인에게는 응당한 처분을 받게 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신 사장이 편법과 준법을 넘나들며 사건을 해결하고 정의를 구현해 내는 분쟁 해결 히어로 드라마”라고 정의된다. 

드라마에서는 반복적으로 “협상은 원하는 것 하나씩 주고받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협상 방법에 대해 신 사장의 후배 장영수(배우 최덕문)의 입을 통해 “협상을 할 땐 상대를 적으로 돌리는 것보다 이용하는 게 더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생각일 뿐, 현재의 신 사장은 “상대방을 적으로 이용하는 것보다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고 보람 있다”고 말한다. 

말로써 상대를 설득하는 협상 전문가 신 사장을 보고 있으면 평생을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며 교화를 펼친 부처님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부처님은 만나는 사람의 나이·지위·계급·빈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법을 전하는 일로 평생을 보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설법을 했기 때문에 부처님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표현을 사용했다. 그리고 설법을 들은 상대와의 교감 속에서 다양한 대화 방식을 사용했다. 

상대의 질문이 설법 의도와 상응하면 그렇다고 긍정도 하고, 질문을 자세하게 따져 물어 그렇다 아니다를 밝히기도 하며, 질문자에게 반문해 스스로 답을 생각하게 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또한 질문이 잘못된 경우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기도 했다. 심지어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행동으로만 교화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는 부처님의 교화에서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부처님은 상대가 처한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하여 상대에게 필요한 처방을 정확하게 내려 준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당신의 설법을 듣고 갖가지 청정행을 실천함으로써 누구나 고통에서 벗어나 안락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부처님의 자비심이 깃들어 있다.

드라마 ‘신사장 프로젝트’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이다. 불자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부분인데, 신 사장의 닭집에서 일하는 판사 ‘필립’이라는 이름은 ‘빌립’으로 표기되는 기독교 사도의 이름이고 배달을 맡은 이시온(배우 이레)의 이름은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중요한 단어다. 시온의 동생 이름인 ‘예온’도 예수님을 떠오르게 한다. 

이런 눈으로 보면 신 사장의 이름 ‘신재이’가 예사롭지 않다. ‘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로 읽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신은 거창하고 거룩한 모습이 아니라, 동네에서 흔히 만나는 닭집 아저씨의 모습을 하고 우리 삶에 녹아 있는 존재이다. 이쯤 되면 ‘신 사장이 사건을 해결하고 정의를 구현해 내는 분쟁 해결 히어로 드라마’란 소개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닥친 힘든 일을 해결해 주고 정의 구현을 실현하는 히어로가 바로 ‘신’이란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1500년대에 지어진 중국의 고전 소설 〈서유기〉는 현장 스님의 인도 구법을 소재로 오공(悟空), 팔계(八戒), 오능(悟能, 저팔계의 원래 이름), 오정(悟淨)이라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통해 불교의 가치를 전한다. 그뿐만 아니라 구법의 길을 방해하는 무수한 요괴들을 만나지만 그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음을 일깨우고 천도하여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함으로써 불교의 지향점을 훌륭하게 구현하고 있다. 이렇게 고전의 실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신사장 프로젝트’와 어깨를 견줄 만한 불교식 작명을 보기 힘들다는 아쉬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드라마 ‘신사장 프로젝트’에서 협상의 달인인 신 사장이 신을 의미하든 안 하든,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이 드라마가 약자의 편에서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히어로의 존재를 꿈꾸는 서민들의 희망을 담고 있다는 점인데, 여기에서 생각의 폭을 조금만 더 넓혀 보자. 히어로 대신 신 사장의 협상 방식처럼 모든 사람이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세상이 된다면 어떨까? 그런 세상에는 갈등과 반목이 없을 테니 문제를 해결할 히어로 또한 필요 없을 것이다. 히어로가 필요 없는 세상, 그저 서로를 부처로 보는 세상, 그것이 바로 불국토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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