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뿌리 깊은 나무’(2011)
세종 대왕의 한글 창제를 다룬 드라마
불교 영향 분명, 일부선 스님 창제 주장
훈민정음의 실질적 주인 백성임을 선언
한글날을 앞두고 세종 대왕님을 한 번 모셔야겠다. 요즘에야 신사임당께 1위를 내주셨지만, 한때는 가장 고액지폐의 모델을 하실 만큼 세종 대왕은 한국을 대표하는 위인이다. 세종 대왕을 우리 역사 최고의 위인으로 꼽는 이유 중 하나는 한글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다른 업적도 많이 있지만, 현대의 우리가 실감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한글은 지금 이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사용되고 있으니 세종 대왕의 업적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세종 대왕이 직접 지으셨다는, ‘나랏말미 듕귁에 달아 문와로 서르 디 아니(나라의 말씀이 중국과 달라 문자끼리 서로 맞지 아니하다)’로 시작하는 훈민정음 서문을 외우고 있다면 자랑스러워도 해도 될 일이다. 10월의 한글날뿐만 아니라 5월의 스승의 날까지 세종 대왕의 생신에 맞출 만큼 우리가 세종 대왕을 생각하는 마음은 극진하다.
이런 세종 대왕의 한글 창제를 다룬 드라마가 바로 SBS의 ‘뿌리 깊은 나무’이다. 드라마는 왕궁 호위 무관 강채윤(배우 장혁)이 집현전 학사 연쇄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형식을 빌려 훈민정음 반포 직전 7일 동안의 일을 다루고 있다. 살해된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 대왕(배우 한석규)이 주도해 비밀리에 조선의 글자를 만들고 있던 천지계의 계원들이었다. 드라마 속 가상의 조직인 천지계에는 이들 외에도 말을 하지 못하는 소이(배우 신세경)를 비롯한 몇몇 궁녀와 정인지, 성삼문, 박팽년 등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유학자들, 그리고 세종 대왕의 아들인 광평 대군까지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세종 대왕의 움직임에 맞선 또 하나의 가상의 비밀 조직 밀본(密本). 이들은 조선의 숨겨진[密] 뿌리[本]는 재상이라는 논리를 펼치며 왕권(王權)과 대립하는 신권(臣權)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는 세력을 상징한다.
드라마 제목 ‘뿌리 깊은 나무’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2장의 첫 구절 ‘불휘 기픈 남’에서 따왔다.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을 만들고 나서 이 글자가 실제로 우리 말을 잘 표현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훈민정음 반포 전 만들어진 최초의 한글 가사이다. 용이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조선 왕조의 기틀이 되는 인물들을 노래하면서 조선 왕조를 찬탄하는 노래로 이 가사에 맞춰 만들어진 궁중무용과 음악이 바로 ‘봉래의(鳳來儀)’다.
왕이 깊이 관여해서 만든 글자이니 훈민정음으로 왕조를 찬탄하는 노래를 처음 짓는 일이 일견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용비어천가〉 다음에 지은 글이 〈석보상절(釋譜詳節)〉과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다. 〈석보상절〉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족보를 자세히 해야 할 곳은 자세하게, 간략히 넘어갈 곳은 간략하게 설명한다는 뜻이다. 또 〈월인천강지곡〉은 하늘의 달빛이 천 개의 강에 비친다는, 유명한 불교 비유를 제목으로 하고 있다. 〈용비어천가〉를 제외하면 훈민정음으로 만든 최초의 글이 모두 불교와 관련된 내용이다. 조선의 정책은 숭유억불이라는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드라마에서 살해당한 집현전 학사의 집을 찾아간 채윤은 그 학사가 〈대비바사론〉이라는 범어로 된 불교 경전을 가지고 있었음을 전해 듣는다. 〈대비바사론〉은 경전이 아니고 논서인데다 이미 한역이 돼 있는 것이므로 범어로 돼 있다는 말은 잘못됐지만, 드라마에서도 불교 문헌을 언급할 만큼 훈민정음 창제에 불교의 영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훈민정음 창제의 주체가 집현전 학자가 아니라 스님이라고까지 주장한다.
‘나랏말미’로 시작해서 ‘뼌킈 고져 미니라(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로 끝나는 훈민정음 서문이 108자이고, 당시 유학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굳이 한문으로 번역해 ‘국지어음(國之語音)’으로 시작해서 ‘편어일용의(便於日用矣)’로 끝나는 훈민정음 한문본 서문이 그 절반인 54자라는 사실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세종 대왕이 훈민정음을 세상에 반포한 해가 1446년이고 조선이 세워진 해가 1392년이니 겨우 50년 남짓한 세월만에 새로운 글자가 등장했다. 고려를 망하게 한 원인이 불교라며 조선이 불교를 제한하려고 했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익숙한 문화는 여전히 불교였을 것이다. 50년이란 짧은 시간에 정신적인 면까지 바꾸기는 쉽지 않다. 또한 불교를 품고 사는 이들이 바로 한글을 실제로 사용할 ‘어린 셩(어리석은 백성)’이니 그들이 이해할 만한 내용을 담은 것이 바로 〈석보상절〉이고 〈월인천강지곡〉이었다. 세종 대왕님의 마음 씀씀이가 이런 데까지 미친다.
이처럼 훈민정음이 백성을 위한 글자임을 드라마는 끊임없이 강조한다. 일상의 욕이나 온갖 의성어까지 표기할 수 있는 문자이면서도 고작 28자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반나절만 배워도 세상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글자임을 여러 장면을 통해 보여 준다. 특히 드라마에서 훈민정음 창제에 핵심 역할을 하는 소이는 말을 하지 못하는 실어증 환자였다가 반포 무렵이 되어 말을 함으로써, 글자가 없어 의사를 표현할 수 없던 백성이 비로소 자유로운 세상을 맞이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소이가 바로 훈민정음을 해설하는 ‘해례(解例)’라고 설정함으로써 훈민정음의 실질적인 주인이 바로 백성임을 선언한다.
600여 년 전 한자를 몰라 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 백성들을 위해 세종 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고 이렇게 새로 만든 글자로 불교 문헌의 언해본을 편찬했다. 세종 대왕 이후로도 국가 기관인 간경도감(刊經都監)을 통해 다양한 경전이 우리말로 번역됐다. 그리고 이런 전통을 이어 1963년부터 2001년까지 무려 40여 년에 걸친 역경 사업 끝에 ‘한글대장경’이라는 이름으로 해인사 판전에 보관된 고려대장경 전체를 우리말로 번역했다. 21세기에서야 비로소 불교 경전의 언해본이 완성된 셈이다.
불교는 한국 전통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유행이 된 요즘, 불교도 함께 세계적인 트렌드가 됐으면 한다. 그리고 그렇게 불교가 퍼져나가는 데 우리의 한글대장경이 한몫을 했으면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