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법인 스님의 문자 반야] 17. 이무소득 무유공포(以無所得 無有恐布)

구하지 않으니 마음이 평온하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오스만 제국치하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여러 나라를여행하며굴종과 지배에맞서 인간의자유를 추구했다.그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는인간이 온전한 주체로서 자유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생생히 보여 준다.

그리스 정교 문화권에서 자랐지만,그는 붓다·니체·베르그송 등의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이러한 탐구는인간이만든관념과 문화의굴레를벗어나‘자유로운 존재’로 서고자 한 그의 지향을 잘 드러낸다.

그의묘비명은 불자들에게도 낯설지 않다.그 말속에는〈반야심경〉을 비롯한대승불교의핵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반야심경〉 전반부는오온·십이처·십팔계·십이연기 등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존재가 ‘본래 있지 않음[空]’을 통찰하라고 말한다.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이렇게 이어진다.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간다.”

여기서 ‘얻을 것이 없다’는 말은‘부질없이 갈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경전에는이를‘무소득(無所得)·무소구(無所求)’라 한다.삶의 모든 현상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므로,그것의 실상은 공(空)이다.이 사실을 통찰할 때 우리는집착하거나갈구하지 않는다.구하지 않기에마음에 걸림이 없고,걸림이없기에 두려움도 없다.이 점에서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은 〈반야심경〉의 사상과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이나 권력의 욕망을 버린다는 뜻에 그치지 않는다.〈대품반야경〉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 열반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미 보살이 아니다.”

아무리선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도 그것에 대한 집착이 생기는 순간 자유와 평온에서 멀어진다는 뜻이다.

‘하되 함이 없이 하라(爲而無爲)’.

속도와 효율에매여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내려놓고,해야 할 일은 관념과 집착을 벗어나서 하는 것이다. 밝은 가을볕에 마음이 한가롭다.더 구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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