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강소연의 수행다이어리] ‘내가 있다’는 착각의 이유

21. 의식이란 무엇인가 2

‘생멸의 연속’이 만드는 ‘있다’라는 착각.ⓒ강소연 
‘생멸의 연속’이 만드는 ‘있다’라는 착각.ⓒ강소연 

생각이 확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걸으면서 바뀌는 주변 풍경과 기온, 바람의 세기, 공기의 느낌, 소리와 냄새 등 다양한 환경적 요소의 변화에 따라 마음도 계속해서 변화하며 이어진다. 느낌[수온受蘊]이 일어나며 ‘좋다 또는 싫다’라는 반응이 생기고, 이는 기억[상온想蘊] 속 연계 데이터를 건드려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르게 한다. 이와 동시에 심장 부위에 울체되는 어두운 에너지가 확 몰려왔다 사라진다. 단순한 풍경에서 받은 느낌과 기억에 ‘갈애(또는 집착)’가 따라붙으면서 ‘감정을 동반한 반응 또는 생각[행온行蘊]’으로 이어져, 어느덧 번뇌 속을 잠시 헤매는 나를 발견한다.  

‘생멸의 연속’이 초래하는 ‘있다’라는 착각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오온(五蘊)의 전개가 파도처럼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이다. 바통 터치를 하듯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하나가 사라지면 또 하나가 생겨난다. 대상이 바뀌는 것에 따라 마음도 바뀐다. 예를 들면 약 5분 거리를 걷는 구간 사이에도 수십 건의 느낌과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진다. 순간적으로 그때그때(의 조건에 따라) 만들어지고, 또 순간적으로 그때그때(의 조건에 따라) 사라지는 현상이 ‘계속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아! 마음은 멈춘 적이 없구나! 참으로 고단하구나!’ 

무상하게 ‘변화하고 있는 선상’이라는 진리이다. 그런데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몸과 마음의 현상들이 ‘나’ 또는 ‘내 것’이라는 ‘동일시(同一視)’ 또는 ‘소유화(所有化)’는 어떻게 일어난 걸까? 그저 ‘조건들의 부단한 만남과 그것의 생멸(生滅: 일어나고 사라짐)’일 뿐인데, 거기에 ‘있다’라는 착각(무명)이 생기면서 ‘나’라는 주체가 생겨난다. 

주체(나)가 만들어지면서 동시에 객체(너, 그들, 세상 등)가 생겨난다. 특히 갈애(또는 취착取着)가 따라붙을 때 조심해야 한다. 갈애 또는 집착의 에너지는 대상을 분별 또는 파악하는 즉시 확 일어나서 대상에 끈끈이처럼 들러붙는다. 

‘있다’라는 착각은 왜 일어나는 걸까?

그렇다면 ‘있다’란 착각은 왜 일어나는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定: 사마타)+혜(慧: 위빠사나)’의 수행력을 키워 나가다 보면, 앗!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해체’되기 시작한다. 갑자기 확대경을 (대상에) 갖다 댄 것처럼 대상이 크게 확대되어 보이고, 또 대상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현상이 슬로 모션으로 전개된다. 그러니 낱낱이 볼 수 있다. 관찰이 예리할수록 대상은 더욱더 각자의 요소들로 쪼개지고, 이들의 합쳐지는 과정이 보이면서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렇게 반야(지혜의 빛)가 발사돼 그 실체를 비추는 순간, 대상은 박살이 나고 ‘무상·고·무아’이다. 그렇다면 여태껏 관찰력이 계발이 안 돼서, 또는 관찰력이 둔해서 ‘있는 줄’만 알고 매번 속았다는 것이다.

조건들의 이합집산 또는 조건들의 생멸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있다’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다음 것을 밀어주면서 생겨나게 하고 사라지기에, 마치 계속해서(또는 항구적으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파도처럼. 그러면 여기에서 ‘있다’라는 착각(무명)이 계속 따라붙게 된다.

신기루의 비밀, 너무나 빠른 생멸의 연속! 

쥐불놀이에 비유해서 예를 들어 보자. 짚에 불을 피워 구멍이 난 깡통에 넣고 돌리면 빛의 원이 형성된다. 멀리서 보면 마치 빛의 원이 고정적으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매번 다른 불꽃이 생겨나며 이어지고 있다. 즉 불꽃이 그때그때 생겨날 때의 조건은 매 찰나 변하고 있다.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농도, 연소 또는 불연소 때의 불꽃의 색깔과 크기는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불꽃의 생멸이 가열차게 ‘이어지는’ 현상을 통해 우리는 빛의 원이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강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만물유전(萬物流轉)이라는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는 진리를 밝힌 바 있다. 멀리서 보면 ‘항상 있는 강물’ 같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방금 흘렀던 물은 지금 흐르는 물과 다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보다 석가모니 붓다는 한 번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까 담갔던 발과 지금 담갔던 발은 같은 발이 아니다”라고.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진리는 주객(主客) 없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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