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조세이탄광 수몰사고가 발생한 지 어느덧 83년이 흘렀다.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고지만, 그 존재조차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건의 실상은 1970년대 후반, 양심 있는 역사학자 야마구치 다케노부씨의 노력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1991년에는 시민단체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회’가 발족돼 지금까지 유골 발굴과 진상 규명에 힘을 쏟고 있다. 한국 불교계에서도 관음종을 중심으로 2017년부터 현장을 찾아 위령재를 올리고, 한일 양국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양심에 따라 행동해 온 이들 덕분에 더딘 걸음이지만 변화는 분명하다. 일본 정부는 오랫동안 ‘유해가 남아 있는지 불확실하고 조사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그러나 올해 4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조세이탄광 유골 발굴에 대해 “정부 입장에서 민간의 자기 책임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며 “정부가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지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일본 정부는 전문가 의견 청취와 함께 잠수·탄광·토목 등 세 분야의 전문가를 투입해 본격적인 내부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우리 정부도 응답하기 시작했다. 올해 2월 갱구 앞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보가 참석해 “유골이 하루라도 빨리 고향과 가족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4월에는 유족을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를 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오는 6월 18~19일 예정된 ‘새기는 회’의 4차 수중 조사를 앞두고 유골이 발견될 경우 신원을 확인하려는 조치다.
반가운 소식은 또 있다. 관음종이 5월 24일 일본 아마쿠치현 우베시에서 ‘일제 강점기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위령재’를 봉행한 것과 관련해 5월 27일 이재명·김문수 대선후보가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이들은 “불교계의 헌신이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 잊혀가는 아픈 기억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동시에 “유골 수습과 역사 정의 실현의 여정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도 함께 밝혔다.
더는 늦출 수 없다. 말로만 기억하는 시대는 끝내야 한다. 이제는 행동으로 억울한 죽음을 위로할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