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15 (수)

[설화 탐사대] 속진번뇌 씻어 만물 소생(蘇生)케 하는 도량

15. 전북 부안 내소사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소생(蘇生)하게 하소서
전북 부안 내소사는 우리나라 8대 명승지 가운데 하나인 변산반도 남쪽에 자리한다. 예전에는 내소사, 선계사, 청림사, 실상사는 변산의 4대 명찰이었다. 그런데 전란을 거치면서 나머지 절은 사라지고 지금은 내소사만 남아 명찰임을 증명하고 있다.

내소사는 633년(백제 무왕 34) 혜구 두타 스님이 소래사(蘇來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당시에는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다. 지금의 내소사는 예전의 소소래사다. 소래사라는 절 이름이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내소사로 바뀌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1532년에 증보하여 간행한 〈동국여지승람〉, 18세기에 편찬한 신경준의 〈가람고〉 등에는 소래사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다. 그런데 1700년에 제작된 괘불, 내소사 동종에 새겨진 1856년의 글에는 내소사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한동안 두 사찰 이름이 혼용되다가 이후 언제인가 내소사로 정착되었으리라.

내소사는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이후 조선 인조 때 청민 선사가 중창하였으며, 인조 11년(1633년)에는 대웅보전을 중건하였다. 그 후 1902년 중수가 있었으며, 특히 1983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전각을 복원, 건립해 현재의 대가람을 이루었다.

내소사는 어느 계절에 가도 정겨운 사찰이다. 사찰 앞 상가가 즐비한 도로 끝부분, 역기억자로 꺾인 지점에 일주문이 있다. 일주문에는 “楞伽山 來蘇寺”(능가산 내소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능가산은 부처님이 설법하던 장소다. 능가는 ‘가기 어렵다’는 뜻으로 능가산을 난왕산(難往山), 불가왕산(不可往山) 등으로 번역한다. 내소는 사찰 측에서 발원을 담아 ‘이곳에 들어오는 이의 모든 일이 소생(蘇生)하게 하소서’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전나무 숲길.
전나무 숲길.

전나무 숲길을 지나서
사람들이 내소사를 찾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전나무 숲길 때문이리라. 700여 그루로 된 전나무 숲길은 일주문에서 사천왕문까지 600m가량 이어진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제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함께 나누고픈 숲길’로 선정될 정도다. 평지의 흙길로 전나무 숲이 터널처럼 하늘을 덮고 있어 계절에 상관없이 걷기 좋다. 이곳에서 인생 사진을 남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리고 곧 카메라 앞에 자세를 잡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2003년 태풍 매미에 의해 몇 그루의 나무가 훼손되었다는 것. 이 또한 소생하여 돌아오리라.

전나무 숲이 끝나는 순간 단풍나무 숲이 잠깐 이어진다. 그리고 〈대장금〉 촬영지였던 작은 연못이 나타난다. 바로 벚나무 숲길이 100m가량 이어지고, 그 끝에 천왕문이 있다. 늘 푸른 전나무 숲길도 좋지만, 가을에 단풍나무와 벚나무가 울긋불긋 물든 모습도 좋다. 물론 봄날 벚꽃이 화려하게 펴 부처님 뵈려 가는 길을 장엄하는 순간도 아름답다. 그리고 눈이 내려 눈길과 조화를 이루는 전나무 숲길도 멋지다.

천왕문을 지나면, 눈앞에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내소사 경내가 펼쳐진다. 1000년이 된 느티나무다. 당산(堂山)은 마을의 수호신이 머무는 곳을 말한다. 매년 정월 보름이 되면 이 당산나무 앞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내소사 스님들이 석포리 주민과 공동으로 당산제를 지내는 까닭에 ‘내소사·석포리 당산제’라 한다. 불교의례와 민간신앙이 함께하는 독특한 사례다. 경내에 있는 당산나무를 할머니 당산이라 한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당산은 어디에 있을까? 지나온 일주문 앞에 있다. 지나쳤다면 나가는 길에 살펴보시길.

또 쉽게 지나치는 성보(聖寶)가 있다. 보종각(寶鐘閣) 범종이다. 범종루에도 범종이 있지만, 맞은편 보종각에도 범종이 있다. 보종각 범종은 원래 1222년(고려 고종 9년) 변산 청림사에 봉안되었다. 훗날 절과 함께 범종도 사라져버렸다. 그러다가 1853년 한 농부가 야산을 개간하던 중 매몰된 범종을 발굴하였다. 발굴된 범종을 원하는 곳에 보내기 위하여 범종에게 개암사, 실상사, 부안 월명사 등을 차례로 물으며 종을 쳤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소사로 가겠느냐고 묻고 나서 종을 치니 마침내 소리가 울려 내소사로 옮겨 봉안하였다. 그 범종에는 종이 청림사에서 만들어진 후 내소사로 옮겨진 경위가 간단하게 새겨져 있다. 2023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목재 하나 부족한 채로 대웅보전을 짓다
내소사를 명찰로 만든 또 하나의 주인공은 대웅보전이다. 단청 없이 나뭇결 그대로 드러난 모습과 꽃무늬 문살로 유명하다. 1633년(인조 11년)에 건립된 이 대웅보전에는 건립 당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 목조 건물은 금속 못 하나 쓰지 않고 모두 목재를 짜 맞추어 짓는다. 먼저 이 전통기법과 관련된 이야기다.

내소사의 조실 청민 선사는 대웅전이 불타 없어지자 대웅전을 다시 세울, 인연 있는 목수를 1년 동안 기다렸다. 어느 날 밤 선사는 사미(어린 스님)에게 일주문에 누가 와 있을 것이니 가서 안내하라고 하였다. 사미가 일주문으로 나가니 스님 말씀대로 일주문 기둥에 사람이 누워있었다. 그 사람을 절로 안내하였다.

다음 날, 그 사람은 묵묵하게 대웅전의 기둥과 서까래를 만들었다. 이어서 5개월 동안 나무를 목침 크기로 토막 내었다. 그리고 3년 동안 말 한마디 없이 목침만 다듬었다. 집은 짓지 않고 목침만 다듬는 목수에게 사미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목침 하나를 감춰버렸다. 사흘 후 목침 다듬기가 끝난 목수는 목침 수를 세기 시작하였다. 목침 하나가 부족한 것을 알고 목수는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일을 포기하려 하였다.

청민 선사는 목침 하나에 마음 두지 말고 그대로 불사를 진행하라고 달래었다. 이때 사미가 감추었던 나무토막을 내놓았다. 그러나 목수는 부정 탄 목재를 쓸 수 없다 하고 그 토막을 빼놓은 채 법당을 완성하였다.

지금도 대웅보전은 불단에서 문 쪽으로 바라볼 때 오른쪽 위 공포에 해당하는 목재 하나가 빠져 있다.

관음전 풍광
관음전 풍광

새가 붓을 물고 단청을 하다
대웅보전에 전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법당을 짓거나 벽화를 그리는 불사(佛事)를 진행할 때 수행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 백일불사, 천일불사 등 불사 기간을 정하고 모든 대중이 정성을 다한다. 그런데 가끔은 어떤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것인지 끝나지 않은 불사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중 내소사 대웅보전의 미완성 단청 불사 이야기가 있다.

우여곡절 끝에 내소사 대웅보전이 완성되었다. 이후 어느 화공이 찾아와서 단청하겠다고 자청하였다. 허락을 받은 화공은 단청하는 100일 동안 아무도 법당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법당에 들어간 화공은 밖을 나오지도 않고 음식을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99일째 되는 날, 도저히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사미가 법당 안을 몰래 들여다보았다. 법당 안에는 화공은 보이지 않고 금빛 새 한 마리가 붓을 물고 날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새는 단청을 마무리하지 않은 채 그냥 날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법당 좌우에 쌍으로 그려야 할 용과 선녀 그림이 한쪽에만 그려져 있고, 한쪽에는 빈 채로 남아있게 되었다.

지금도 불단에서 볼 때 왼쪽 벽면 위쪽 중앙에는 그림이 없다. 그림을 그리던 새는 관음조(觀音鳥)로 관세음보살의 화신(化身)이라 한다. 관음조가 날아간 곳은 지금 뒷산 중턱에 있는 관음전 자리다. 새가 날아간 그곳에 관음전을 세운 것이다.

대웅보전 오른쪽 공양간을 지나 포장된 산길을 따라 15분 정도 올라가면 관음전에 이른다. 관음전 앞에서 펼쳐지는 전경을 보면 극락이 따로 없다. 모든 일이 소생하는 기분이 든다. 내소사에 가신다면 꼭 관음전을 가보시라. ‘관음전에 안 갔다면 내소사에 갔다고 하지 마라’고 말하게 되리라.

▶한줄 요약 
어느 계절에 가도 정겨운 사찰인 능가산 내소사. 700여 그루로 된 전나무 숲길,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한 내소사 경내, 보종각 범종, 목재 하나 부족한 대웅보전과 관음조가 날아간 곳에 세워졌다는 관음전까지. 내소사는 ‘이곳에 들어오는 이의 모든 일이 소생(蘇生)하게 해달라’는 뜻이 담겼다. 

당산나무와 내소사 전경
당산나무와 내소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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