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축특집] 태초의 성보, 가사
-명천 스님이 말하는 가사작법
가사,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불보살님 지나다니는 ‘通門’ 비롯해
일월광문·사천왕첩 등 특징도 뚜렷
앞서 커버스토리에 언급한 것처럼 1960년대부터 가사불사에 참여해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온 스님들은 세수로 팔순을 앞두고 있다. 가사불사 현장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어른스님들이다. 그 다음 세대로는 지난해까지 통도사 가사불사 도편수를 맡아 가사 제작에 힘을 쏟은 명천 스님을 꼽을 수 있다. 명천 스님은 고려시대 전통가사를 재현해 2009년 불교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솜씨를 갖추고 있다. 명천 스님도 환갑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사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지난 4월 26일 경남 함양 향운암을 찾아 스님에게 가사작법 이야기를 들어봤다.
“옛날에는 사찰에 부처님을 모시거나 법당을 짓는 것보다도 가사불사 규모가 더 컸어요.”
요사채 바닥에 손수 만든 첩상가사를 펼쳐 놓고 바느질 땀을 가리키며 옛 이야기를 시작한 명천 스님. 봄이면 바느질 대신 농사 하느라 손톱 밑에 흙이 박혀 손이 지저분하다고 말한 스님은 짧은 막대를 쥐고 가사의 요소들을 하나씩 짚었다.
“아주 옛날 기준으로는 천을 염색하는 것부터 시작이죠. 모든 재료가 다 준비됐다는 가정 하에 가사 제작 순서를 요약하면 가사초를 그린 뒤 재단, 바느질, 다림질 순이 됩니다. 재봉틀 안 쓰고 손바느질로 가사 만들면 가사 하나에 바느질만 한 달은 넘게 걸려요.”
가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통문(通門)’이다. 부처가 다니는 길이라는 뜻에서 ‘통문불’이라고도 한다. 가사 겉면에는 바느질 땀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통문이 보이지 않지만 뒷면에는 바느질 사이 틈이 있다. 일반적인 속세의 전통의상과 큰 차이점으로, 명천 스님은 이를 논밭에 비유했다.
“가사의 여러 명칭 가운데 하나가 ‘복전의(福田衣)’잖아요. 그래서 복밭의 옷이라고 하고 논과 밭의 형태로 본다면 스님들이 수행하는 게 농작하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논밭에는 물을 대야 하잖아요. 통문은 그런 물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콩알을 넣어서 모든 통문으로 통과되는지 확인합니다.”
25조 대가사에만 300개가 넘는 통문이 있다. 세심하게 통문을 확인하다 막힌 부분이 발견되면 고치느라 또 시간을 보내야 한다. 가사 짓는 일이 선방의 용맹정진처럼 결코 만만치 않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란 걸 눈으로 본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 가사의 특징으로는 일월광문(日月光紋)과 사천왕첩(四天王貼)이 있다. 모두 가사 본연의 역할보다는 가사에 덧대는 장식으로서 보다 불교적인 의미를 더해주는 요소다. 해와 달, 까마귀와 토끼를 그려넣는 일월광문은 불교 우주론적 관점에서 만다라를 현시하고 법계를 청정히 해 가사를 수한 스님과 신도들이 이상경계를 빨리 확보할 수 있게 하자는 열망을 내포한 것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사천왕첩은 가사의 사방 모서리에 붙이는 조그마한 덧댄 천이다. 새로운 것만을 욕심내지 말라는 의미로 첩을 붙이다가 언제부터인가 가사를 착용한 스님을 사방의 천왕이 보호해준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첩에는 천(天) 또는 왕(王) 새겨 넣기도 한다.
“일월광문은 옛날 어느 부인이 가사불사에 참여해 집을 자주 비웠을 때 마침 전장에서 돌아온 포수가 부인을 의심해 쏜 화살이 닿지 않고, 완성된 가사에 구멍이 두 개 뚫려서 붙였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수승한 가사공덕의 의미를 강조한 얘기인데 많은 분들이 아셨으면 좋겠네요.”
불교적으로 이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 성보가 또 있을까. 그럼에도 현재 조계종의 법계품서식에서 수여되는 공식 가사봉투에는 가사 편수의 법명조차 들어가지 않는다. 스님은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까.
“이제는 이런 문화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다른 데 관심을 둬야 할 게 많아져서라거나 전보다 가사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가사에 담긴 뜻이라든지 가사를 수함으로써 갖추게 되는 수행자의 마음가짐을 생각해본다면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 말이죠.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