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11:37 (수)

[특별인터뷰]  복지관장 20년 퇴임한 화평 스님

“복지관장 20년…재출가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화평 스님은… 월주 스님을 은사로 1988년 수계(사미계)했다. 무우사, 심곡사 주지 및 제16, 17대 중앙종회의원, 포교원 신도종책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종립학교관리위원 소임을 맡고 있다. 광진노인종합복지관 개관 당시인 2003년부터 2022년 2월까지 20년간 관장직을 수행했다. 사진=박재완 기자
화평 스님은… 월주 스님을 은사로 1988년 수계(사미계)했다. 무우사, 심곡사 주지 및 제16, 17대 중앙종회의원, 포교원 신도종책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종립학교관리위원 소임을 맡고 있다. 광진노인종합복지관 개관 당시인 2003년부터 2022년 2월까지 20년간 관장직을 수행했다. 사진=박재완 기자

서울 광진노인종합복지관장 화평 스님이 20년간의 관장 소임을 내려놓고 산중으로 돌아간다. 2003년 5월, 복지관 개관과 동시에 관장으로 취임해 불철주야 달려온 화평 스님은 2월 24일 이취임식을 앞두고 마련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보살행을 실천하는 시간으로 하나의 수행과정이었다”고 지난 20년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광진노인종합복지관은 개관 이후 꾸준히 어르신 교육과 문화생활 지원활동, 노인 일자리 사업 등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전문가들로부터 노인복지 지평 확대에 큰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르신뿐 아니라 세대통합에도 중점을 둬 청소년들에게 꾸준히 장학금을 전달했고 지역공동체를 위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치는 등 다변화 사회에 맞춰 복합적인 복지를 펼쳐왔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복지관 일일 최대 이용자가 2000여 명, 일주일 동안 운영되는 교육 프로그램은 90여 개에 달했다. 개관 당시 21명으로 시작한 직원은 현재 계약직까지 포함 79명이다. 자원봉사자만 15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내·외형이 몰라보게 성장한 광진노인종합복지관의 역사에는 관장 화평 스님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제 전주 서고사 주지로서 새로운 소임을 시작할 화평 스님은 “산중으로 돌아가 또 다른 보살행을 실천할 계획”이라며 “지역사회 불교홍포를 위해 혼신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사 월주 스님 ‘깨달음의 사회화’
큰 감명…불교사회복지 헌신 다짐
중생구제 원력으로 20년간 즐거워

전문성 둔 노인 상담 개척 큰 성과
장기근속 직원들 덕분에 무해무탈
복지부장관 표창 등 다양한 수상도

전주 서고사 주지…명상센터 불사
‘백지’ 상태지만 “새로운 판 설레”
지역사회 불교 홍포 혼신 다할 것

2003년 10월 2일 열린 광진노인복지관 개관식 모습.

Q.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복지관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을 해오셨습니다. 정든 곳을 떠나는 기분이 어떠십니까?

A. 수행자로서 이 또한 하나의 수행이라는 생각으로 관장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은사 스님(월주 대종사)께서 누누이 말씀하신 중생구제를 원력으로 삼아 관장 소임을 맡아온 것이 벌써 20년입니다. 시설 규모뿐 아니라 예산과 직원, 이용객, 각종 프로그램까지 내·외형이 몇 배 더 성장한 모습을 보니 뿌듯합니다. 로비에 놓인 나무 장식까지 손길 하나하나 닿지 않는 부분이 없기에 더욱 애틋합니다.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직원들의 업무피로도가 높아진 상태에서 떠나게 돼 미안한 마음도 큽니다.

Q. 전국 여느 복지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애로사항이 많을 것 같습니다.

A. 현장은 물에 떠있는 오리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면 위는 잔잔하지만 발을 숨 가쁘게 움직여야 떠있을 수 있죠.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중지되면서 자원봉사자의 출입이 제한됐고 그로 인해 복지사들의 업무가 가중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광진노인종합복지관은 온라인 활동 준비를 빨리 한 편입니다. 코로나19 초창기에 온라인 회의와 교육을 위한 장소를 준비했고 녹음실과 송출 시스템도 마련했습니다. 초창기 설비를 잘 했기에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었고 이는 복지관의 큰 자랑거리이기도 합니다. 현재 45개의 교육프로그램이 온라인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어르신들에게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떠나더라도 새로 오실 관장님과 직원들이 어르신들을 잘 모실 것이니 걱정은 없습니다.

Q. 20년 간 관장을 역임하면서 이것만큼은 참 잘했다 싶은 것이 있을까요?

A. 노인 전문상담 분야를 개척한 것입니다. 노인 상담을 시작한 것은 서울시에서 광진노인종합복지관이 처음입니다. 그만큼 전문성에서도 앞서나간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전문상담사가 상주하며 노년기의 정서적 안정감을 높이고 노년의 우울, 자살, 학대 등 노인문제를 예방하는 다양한 상담을 진행합니다. 전문가가 있기에 각종 문제에 대한 대처가 빠르고 어르신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습니다. 덕분에 노인복지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보건복지부장관 표창부터 조계종총무원장 표창, 서울특별시장 표창, 국회의장 공로장 등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수상도 할 수 있었습니다.

20년 동안 복지부장관 표창 등 다양한 수상을 했다.

Q. 스님께서는 처음부터 노인복지에 원력을 두셨나요?

A. 사실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복지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출가 전 전신마비 등으로 몸이 많이 아팠고, 그런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기에 막연하게 “더불어 사는 게 좋은 것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어렴풋이 복지에 뜻을 두게 됐습니다. 금산사에서 어린이법회나 여름불교학교를 운영하다보니 어린이집과 유치원까지 맡게 됐고 이후 전주불교회관에서 어르신 무료급식과 노인 일자리센터를 담당하게 되면서 복지 전반을 아우를 수 있었습니다. 그 인연 따라 광진노인종합복지관까지 오게 됐고 그게 벌써 20년입니다. 

Q. 화평 스님하면 은사인 월주 스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관장 소임을 맡게 됐을 때 월주 스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을까요?

A. 큰스님께서 개관 후 일주일쯤 됐을 때 처음 복지관에 들르셨습니다. 이후 1년간을 매주 복지관에 들러 보고를 받으셨어요. 그리고 1년간은 한 달에 한 번씩, 또 1년간은 분기에 한 번씩 오셔서 장부 검사까지 꼼꼼히 하셨죠. 5년이 됐을 때, 그때부터는 저를 믿고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큰스님은 어르신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마음껏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20년을 즐겁게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큰스님의 적극적인 지지 덕분이었습니다.

Q. 월주 스님 원적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큰스님은 작은 거인 같았다”고 회상하며 울먹이시던 스님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월주 스님은 어떤 분이었을까요?

A. 큰스님은 자신에게는 엄하면서도 주변 분들, 특히 삶이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는 넉넉한 분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항상 챙겼고 복지현장이 하나의 수행 과정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큰스님이 총무원장으로 계실 적, 사서실 소임을 보며 지근거리에서 큰스님을 모시게 되면서 사회활동에 눈을 뗬습니다. 당시 큰스님께서 ‘깨달음의 사회화’를 주창하셨을 때 그 명칭 자체가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출가자가 되면서 수행하는 것을 먼저 생각했지 사회 환원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을 때입니다. ‘깨달음의 사회화’에 감명해 사회복지를 전공하면서 불교사회복지에 헌신하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죠. 월주 스님을 모시면서 복지에 대한 원력을 세우게 됐습니다. 금산사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스님도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Q. 인터뷰 전 만난 한 직원이 스님에 대해 ‘직원을 먼저 생각해 주는 관장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년간 관장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직원이 있을까요?

A. 초창기 일을 같이 시작했던 직원들이 지금은 복지관장뿐 아니라 부장 등 책임자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오로지 광진노인종합복지관에서 함께했다는 이유 하나로 각 기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공유하고 현장에서의 고민들을 나누며 탁마하는 자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됐습니다. 광진에는 장기근속자 역시 타 기관에 비해 많습니다. 초창기 멤버 몇몇이 여전히 책임관리자로 근무 중이며 차기 관장도 광진에서 17년을 근무했습니다. 20년간 사건사고도 있었지만 이 자리까지 무해무탈하게 올 수 있게 해준 직원들에게 감사합니다. 

화평 스님은 자주 재가 어르신을 방문해 김치 등을 전달하고 안부를 물었다.

Q. 복지관과 같이 사찰 역시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전주 서고사에서의 생활은 어떻게 계획하고 계시나요?

A. 지역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의 공간을 만들어 지역 모임 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소장한 책이 2000여 권인데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지역주민들이 편하게 와 책 읽고 차도 마실 수 있는 공간을 구상 중입니다. 이미 조성돼 있는 등산로와도 연계해 시민들의 휴식문화공간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쉼과 채워짐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공간을 기대합니다. 세계평화명상센터도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올봄에 완공하면, 바로 예비템플스테이를 신청할 계획입니다. 인력도 충원해야 하고 앞으로 쉼 없이 달려야 할 일만 남았습니다.

Q. 20년 전 광진노인복종합복지관 개관 때처럼 이제 또 다른 개관을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A. 처음 금산사에서 행자 면접을 보는데 도법 스님께서 “왜 출가를 하려고 하냐”고 물으셨습니다. 인생무상이니 뭐니 그런 것 그때 저는 몰랐습니다. 그냥 “제가 몸이 건강하면 부처님 일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죠. 그래서인지 가는 곳마다 일입니다. 그렇지만 출가할 때 그런 마음을 냈기 때문에 일을 즐기게 됩니다. 몸이 힘들 때도 “내가 그런 마음으로 출가했지…”라고 생각하면 잊고 빨리 내려놓게 됩니다. 복지관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서고사는 하얀 도화지 상태입니다. 이 도화지에 어떻게 스케치를 하고 색을 입히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지겠지요. 큰스님께서 저를 믿고 서고사와 세계평화명상센터 불사를 맡기신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불자들에게 한 말씀해 주세요.

A. 20년간 복지관에서의 생활은 마치 직장인의 느낌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쉼 없이 복지관 곳곳을 뛰어다녔습니다. 이제는 수행자로 돌아갑니다. 재출가하는 느낌이에요. 마치 행자 때로 돌아가 새벽예불과 사시불공, 저녁예불까지 혼자 해보려 합니다. 대중스님도, 공양주 보살님도 한 분 계시지 않은 곳에 홀로 시작합니다. 운영 자체가 아주 어려운 상황이지만 새로운 판을 짠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합니다. 변화되는 서고사와 세계평화명상센터, 많이 기대해 주십시오. 

임은호 기자 imeunho@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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